<어른들이 읽는 동화>

누가 이 할머니 상 좀 주세요


노랑빛 메리골드가 울타리 밑에 가득 피었습니다. 빨간색 겹 백일홍도 드문드문 눈에 띕니다. 지난달까지만 해도 붉은색, 노랑색, 주황색 겹백일홍이 가득피어 알록달록했던 울타리였습니다. 그런데 어느새 백일홍은 거의 다 져서 씨앗이 맺혀지고 이젠 온통 노랑빛 메리골드가 흐드러지게 피었습니다.

10여 가구가 사는 조그만 공동주택 - 그 공동주택의 울타리에 꽃을 좋아하시는 예쁜할머니가 꽃밭을 일구셨습니다. 2년 전 예쁜할머니가 이사 오기 전에는 초록빛 철망 밑이 온통 풀밭이었던 울타리였습니다. 할머니는 이사 오시자마자 울타리에 꽃을 심기 시작하셨습니다. 풀밭이 꽃밭으로 바뀌면서 공동주택의 사람들은 할머니를 예쁜할머니라고 불렀습니다.

할머니는 올해 89세이십니다. 8남매의 자식들을 모두 훌륭히 키워 출가시키고 지금은 큰아들 내외와 함께 사십니다. 아들은 초등학교 교장선생님이십니다. 며느리는 곧 초등학교 교감선생님이 되십니다. 할머니는 그런 아들 내외가 자랑스러워 언제나 벙글벙글 웃으십니다. 90을 눈앞에 두었는데도 아주 정정하십니다. 새벽같이 일어나시어 며느리 모르게 살짝 아침밥을 지어놓으십니다. 아들 며느리가 당신이 손수 차린 밥을 맛있게 먹을 때, 그 모습만 보시고도 너무나 행복해 하십니다. 늠름하게 잘 생긴 아들이 든든하고, 방글방글 상냥한 모습의 며느리가 귀엽습니다. 그런 자식들에게 밥을 해 줄 수 있는 건강이 감사하고, 그 밥을 달게 먹어주는 것이 감사합니다. 뿌린 씨앗이 싹이 트는 것도 감사하고, 그것이 자라서 꽃을 피우는 것도 감사합니다. 아침에 자리에서 일어나 거뜬히 걸어지는 것도 감사하고, 화장실에 앉아서 똥이 쑥쑥 잘 나오는 것도 감사합니다. 베란다 창문 너머로 날아가는 새가 보이는 것도 감사하고, 이웃집 씽크대에서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도 감사합니다. 돋보기안경만 쓰면 바늘귀도 꿸 수 있는 눈이 감사하고, 윗집 할매처럼 보청기를 달지 않아도 온갖 소리가 잘 들리는 귀가 감사합니다.

“어머니, 3층에 가서 친구들과 놀다 올게요.”

어제 저녁엔 며느리가 양주 한 병을 들고 3층 친구네로 마실을 가려고 나섰습니다.

“에미야, 술 한 병을 누구 코에 붙이냐?”

그러면서 막무가내로 소주병 하나를 더 집어주셨습니다. 잠깐 놀다 오겠다고 하면 재미나게 많이 놀다오라고 하는 할머니십니다.

할머니는 아들 내외가 출근하기 바로 전 30분 정도는 늘 베란다 화분에 물을 주며 기도하십니다. 할머니의 기도는 당신의 복을 비는 기도가 절대 아닙니다. TV에서 본 여러 가지 나쁜 일들을 좋게 해달라는 기도입니다. 오늘도 할머니는 이렇게 기도를 합니다.

“ 이 추운 겨울에 어려운 사람들이 불나지 않게 도와주세요. 지하철에 떨어져서 죽는 일 하지 않게 해주세요. 우리나라 잘되게 해서 자살하는 사람 없게 해주세요. 운전수들이 졸지 말게 해서 운전 잘하게 해주세요. 엊그저께 많이 다친 그 사람들 빨랑 낫게 해주세요. 우리 애비 운전 잘하게 해주세요. 우리 메누리 …….”

어제 낮에 TV에서 흉한 뉴스를 많이 보셨나봅니다. 끝도 없이 중보의 기도를 하고 계십니다.  할머니의 기도 속에는 언제나 남을 위한 기도만 있습니다. 할머니는 당신이 가꾸신 꽃보다도 더 아름다운 꽃을 가슴 가득 안고 사시어 밝게 웃는 그 모습이 꽃보다 더 아름답습니다.***(원고9매)



* 제가 60평생을 살면서 가장 아름답게 본 할머니의 모습을 그린 동화입니다. 나는 그 할머니를 본받고 싶습니다. 내가 며느리를 맞으면 그 할머니가 며느리한테 하듯이 그러한 마음으로 며느리를 사랑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