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포럼] `과학 대중화` 투자 확대해야

 

이혜숙 이화여대 수학과 교수

 

 지하철역에 `열림과 소Lee .jpg통의 인문학', `기억과 인문학적 상상력'을 주제로 한 9월 인문주간을 알리는 깔끔한 광고판이 바쁜 승객들의 눈길을 끈다. 한국연구재단의 인문학 대중화 사업의 일환이라 반가웠다. 또한 과학기술분야의 우수 연구성과를 일반시민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소개하는 `금요일에 과학터치'는 과학대중화의 상설무대로 자리 잡았다. 전문가의 영역으로 어렵다는 과학강연이 전국 5개 지역, 정해진 장소에서 매주 금요일마다 1년에 200회 이상 열리는 정규프로그램으로 성장한 것도 고맙다. 정부의 연구개발비 10조원 시대를 맞아서, 한국연구재단이 우수 연구성과의 대중화에 노력을 기울인 결과이다.

과학의 우수한 연구성과를 알리는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지금 우리사회는 과학기술에 대한 이해의 부족에서 오는 사회적 불신과 갈등이 매우 심각하다. 2010년 우리나라를 뒤흔들어놓은 천안함 사건의 전말에 대해서 논란이 크게 일었다. 정부가 조사의 객관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국내외 전문가로 구성한 합동조사위원회의 물증(함정을 폭파한 어뢰)과 증거에 근거해서 내린 결론을 30%나 되는 국민들이 신뢰하지 않는다고 한다. 또한 4대강 개발사업에 대해서도 수자원 관리와 환경보존이라는 정부의 발표를 신뢰하지 않고, 환경파괴가 심각할 것이라는 상반되는 주장이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과학기술에 대한 대중의 이해'를 위한 획기적인 정책 개발과 과감한 투자가 이뤄져야 할 시점임을 말해준다.

과학적 지식이 필요한 심각한 사회적 논란에 대해 객관적인 과학적 논의나 토론을 통해 결론에 도달하기보다는 오히려 어설프게 과학의 이름을 빌려 불신을 키우고 있다. 이러한 논란에 대해서 과학기술인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찬반을 뒷받침할 수 있는 과학적 사실과 증거를 제시하고 논리에 입각해서 의견을 개진해 불신에 따른 사회적 낭비를 최소화했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그러나 이 문제는 과학자들이 내놓는 전문지식과 과학적 절차, 방법으로만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대중이 과학적 조사와 결과에 대해 어떻게 인식하고 이해해야 하는지, 그리고 의사결정의 과정에서 과학의 결과를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와 관계 있다고 할 수 있다.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이 지난 6월 17일 미래전략세미나에서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해, 우리나라 국민의 과학에 대한 인식에 대해서 흥미로운 사실을 발표했다. 설문 결과 응답자의 79%가 과학기술이 국가발전에 기여했다고 답했지만, 과학기술의 가장 큰 혜택으로 난치병 극복을 통한 건강한 삶(46%)과 질 좋은 제품 생산이 주는 편리함(24%)을 꼽아서 과학기술의 효용성에 개인을 가장 우선시하는 양상을 보였다. 그러나 연구개발의 쾌거로 부가가치가 큰 원전수출엔 상대적으로 관심이 적었다. 국민들은 개인에게 희망과 기쁨을 주는 과학기술을 가장 선호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의도하지 않은 과학기술의 부작용으로는 응답자의 88%가 환경오염과 기후변화를, 77%가 소득불균형의 심각성을 들었다. 응답자는 과학과는 거리가 있는 사회격차 해소에 정책 우선순위를 두어야한다고 답했다. 앞으로 국민이 과학기술 정책과 연구개발에서 강력한 의사표시를 할 수 있다고 본다면, 과학의 대중이해는 더욱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다. 또한 항목별로 학력과 연령 그리고 성차에 따라 응답이 달라서, 과학대중화는 대상에 따른 차별화된 전략도 요구된다.

과학기술적 결론이나 결과에 대해 대중이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참여하는가에 대한 문제는 우리사회에서 이미 교육과 학문적 관심을 넘어서 정치사회적 이슈가 되었다. 연구재단의 역할이 과학기술을 지원하고 성과를 알리는 일에서 더 나아가, 과학기술과 대중사회가 정치사회적 문제를 합리적ㆍ효율적ㆍ생산적으로 해결해 가도록 지원하는 데까지 영역을 넓혀 가는 것이 필요하다. 전통적으로 과학커뮤니케이션 강국인 영국의 왕립학회를 통한 과학의 대중이해 사업과 국립과학재단(NSF)과 국립과학진흥협회(AAAS)를 중심으로 한 미국의 과학대중화 사업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과학기술에 대한 대중의 이해를 위해 첫째, 과학계ㆍ산업계ㆍ정부부처ㆍ대중매체간의 긴밀하고 보다 나은 소통과 교류, 상호이해를 통해 과학에 대한 대중의 이해를 위한 인적, 재정적, 시스템적 지원기반 마련부터 해야 한다.

둘째, 과학커뮤니케이션의 `과학화'를 이뤄내야 한다. 과학계 인사들의 직관이나 단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과학대중화 또는 과학커뮤니케이션 정책 입안이 이뤄지는 단계를 넘어서 과학과 관련해 사람들의 생각과 인지, 사회적 태도가 어떻게 조성되고 변화되는가에 대한 경험 및 과학적 이론과 자료에 바탕을 두고 정책이 추진돼야 한다.

셋째, 정부나 과학기술사회가 일방적으로 주도하는 과학의 전파와 홍보를 넘어서 과학기술인이 대중을 위해, 그리고 대중이 과학을 위한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도록 양방향이 소통하는 과학커뮤니케이션의 방법과 내용을 확대하고 활성화할 수 있도록 새로운 연구를 지원하는 일도 중요하다.

과학기술을 국가적ㆍ경제적 성장이나 개인적 삶의 건강과 편리를 제공하는 수단적 가치로서의 학문으로 강조하는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정치사회적 문제에 접근할 수 있는 의사결정과 판단의 잣대로서의 역할을 세울 수 있도록 확장하고 과학화된 과학커뮤니케이션을 만들어가는 한국연구재단의 역할을 기대한다.


출처 디지털타임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