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나리와 더불어 지난얘기를....

 

 

 

 2Forsythia 1.JPG

Aufnahme v. 2010_04_04

 

 

 

친구가 나의 생각들을 글로 적으라면서

가죽 겉장본인 갖고다니기 쉽게 조그마한 공책을 선물했다.

 

겉장이 노란색이다.

색감으로부터 나의 기억속의 개나리가 떠올랐다.

하여, 이 공책의 첫글로 개나리에 대한추억을 옮겨본다.

 

 

어렸을 적 매일 피아노치러 선생님댁으로 갔었는데

그집을 가려면  해군병원을 지나쳐야 했다.

병원은 골목에서 담을 높게 쌓은 곳에 있었는데

개나리가 필적에는 온통 노란색이 그 골목을 덮었다.

 

아~  지금 나는  여기 멀리 떨어진 비인에 살고 있다.

그 시절 거기를 지날때  정말 행복했었는데..

 

음악의 악보를 배우기 시작한 것은 6살때 교회에서

전도사님 사모님으로부터 Organ으로 건반을 만질때 부터이다.

교본은 Bayer였다.도레도레도~~ 도레미도레미도~~...

 

우리집에 아주 오래된 옛날 장농이 있었는데

제일 밑서랍을 더 밀면 안으로 들어가서

서랍 밑받침 부분의 한10Cm정도 깊이였다.

건반이 그려진 종이를 거기에 놓고서

소리 안나는 건반을 손가락으로 누르며 그날 그날 배운것을 치면서

속으로 노래를 했다.

 

아 그리운 그 시절!

 

몇달 후 부모님이 나의 갈망을 눈치채시고 배려하셨던지 

진짜로 Piano를 배우기 시작했다

 

 

Sonatine Album 1, No.9, M. Clementi

 

 

 

.....중략....

 

두번째  피아노 선생님이 다른 도시로 이사하신후

그 다음에 만난 선생님이 바로 세번째 나의 스승 부부이시다.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나의 오빠와 동갑이었다.

선생님부부 연배도 우리 부모님하고 비슷하셨던듯...

남자선생님이  월남하신 분으로 사모님의 피아노선생님이셨다는 얘기도 있었고..

아주 서구적인 외모에 곱슬거리던 머리의 남자선생님에 비해

사모님은 그냥 평범해 보여서 어린 나에게도 조금 불균형하게 느껴졌었기도.

 

그때부터  그 선생님댁으로 배우러 다녔다.

당시 우리집에 피아노가 없어 매일 가서 연습도 했다.

걸어서 아마 왕복 1시간(? 어린나이여서 기억이 가물..) 넘는 곳이었지만 나는 즐겁게 다녔었다.

 

해군병원 오른쪽 골목길을 따라가다 막바른 곳에서 다시 오른쪽으로 내려가다 보면 왼쪽 중간쯤에 그 집이 있었다.

그집은 전통적인 일본가옥이었다.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조그만 블록판으로 현관까지 깔려있었다.

그러나 문하생들은 현관 오른쪽으로 기역자 모양으로 연결된 면에 유리로 된 여닫이 문을 통해

(커다란 유리창문이 삼면? 이면?이었던)마루방으로 들어갔다.

그 방에는 건반몇개가 벗겨져 나무색갈이 보이는 낡은 피아노가 있었다.

또 다른 피아노가 안방에  아주 음색이 고우면서도 상태가 좋은걸로 있었는데,

연습용으로 문하생들에게 허용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예외로 사모님이 시장가거나 볼일 보러 나갈때

나보고 마음대로 연습하라고 하면서 안방의 피아노도 치는 것을 허락하셨다.

나는 거히 쉬지도 않고 몇시간이고 사모님이 돌아올때까지 피아노를 치고 또치며 좋은기회를 즐겼다.

 

그러다가 잠깐쉬면서 뒷정원에 나가면,

여러가지 화초가 그림처럼 자라고 있는것을 볼 수있었다.

바로 철로길 옆이었기 때문에 담장에 가서 아래를 내려다 보면

기차가 지나는 것을 볼 수도 있었다.

 

그때 우리집은 마당에 옥상식 장독대( 참조:아래는 광이고  위는 장독대로 그때는 꽤~ 인기 있었던 듯)를 만든 개량 한옥이었던터라,

그 집에 가면 어디엔가 정원넓은 아늑한 이국에 와 있는 기분이었다.

꽃이름도 모르면서 색갈의 느낌으로 어린 나는 아름다움에 도취되었었다.

조그마한 연못에서나, 음지에 놓여진 돌절구로 사용된 어항에서 헤엄치던 작은 물고기들....

여러 동경속에서 헤메는 즐거움을 누리었었다.

 

사모님이 돌아오면 언제나 아쉬움을 남기고 집으로 돌아왔다.

 

가끔 남자 선생님이  가르치며

어떤때는 " 나도 너 같은 딸 갖고 싶다"라고

어딘지 외로운 느낌이 드는 목소리로 얘기했던 것이 아직도 내기억에 생생하다.

 

나중에 기다리던 딸대신 두번째 아들을 사모님이 낳자,집에서 하는 개인지도를 그만 두었다.

큰아들과 한참 나이차이가 났었다.그시절 기억은 여기까지다.

아쉽지만 나와 그분들과의 인연도 거기에서 마쳤다.

 

그러나 그후 인천여중에 진학하며 또다시 그 동네를 지나가게 되었는데,

바로 해군병원 옆을 스쳐서 큰 도로를 통해 통학했기 때문이다.

개나리꽃 피는 철에는 피아노 선생님댁으로 가려면 통해야 했던  

그 골목입구에서 골목 끝까지 늘어진 개나리를  아련히 보았었다.

 

                                                                                                                                                      (2005년 4월 15일 적음 )

 

 

 

 Forsythia 2.JPG

 2010_04_04  in Piesting 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