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럼
아래의 음악회글은 2010년 2월 12일에 적은 것인데,
3월1일 맞이하는 쇼팽 탄생200주년 즈음하여 옮겨봅니다.
크라카우에 도착하자마자 호텔로비에 있는 연주회 일정표에서
이날 12일 저녁과 일주일후 19일 두번 쇼팽피아노 독주회가 있는 것을 보고 기쁘다.
오기전 부터 꼭 보리라고 작정은 했었으나 체류기간에 공연이 있을 지는 미지수였었기 때문에 더욱 반가웁다.
거리에 나오니 곳곳에 쇼팽의 얼굴들이 포스터 여기저기 보인다.
서점안에도 쇼팽에 관한책들이 즐비한 것을 보고 그의 고국에서의 느낌이 사뭇 새롭다.
낮에 많이 걸어다녀서 피곤하지만 호텔에서 한시간정도 쉬었더니 한층 가쁜하다.
쇼팽음악회가 열리는 BONEROWSKI PALACE 에
시작하기 30분전쯤 동행친구 두명과 같이 도착했다.
르네상스양식의 귀족궁전이다. 현재는 호텔과 각종연회장 바등등으로 이용된다.
안으로 들어가니 달팽이 계단 중심에 눈부신 샹데리아가 우리를 반긴다.
2층 연주홀 안으로 들어가니 아직 몇사람 밖에 없어서 두리번 거리기에 좋다^^
천정이 르네상스 시대의 목조로 보존이 좋은상태다.
오늘의 프로그램은
Barcarolle F scharp Major Op. 60
Ballade No. 1 Op. 23,g minor
Polonaise-fantasy Op 61
Intermission
Sonata No.2 Op.35, b flat minor
Polonaise "Heroic" Op. 53,A flat major 이다.
정각 8시에 연주자 PIOTR SZCZEPANIK가 피아노 앞으로 온다.
1983년생 젊은 그는 이미 폴란드에서 유명하며 세계곳곳 뉴욕,파리,샹하이,이탈리,스페인 등등에서
쇼팽, 바흐와 라벨등등을 연주한것을 비롯하여 폴란드 국내 페스티발에서는 거히 고정 연주자라고 프로그램에 기재되어있다.
연주가 시작되니 장내가 엄숙할정도로 조용하다.
첫번째의 곡인 Barcarolle 가 나를 이미 쇼팽과 만나기에 충분하게 감동 시킨다.
많은 작곡가들이 Barcarolle(뱃노래)를 작곡했는데,
이처럼 피아노곡으로 완벽성을 이룬것은 역시 쇼팽이라는 생각이 든다.
올림바장조의 음색이 스타인바하 피아노자체의 음색과 더할나위 없는 만남이다.
두번째 곡인 Ballade 치는 중간에 한음의 진동이 머물러서 안타깝기가 그지없다.
연주자가 연주중에 그 음줄을 한 손으로 진정시키면서 연주를 중단안하고 계속 쳐나간다.
내 심장이 거히 200년전의 젊은 쇼팽을 만난 듯이 뛰기 시작한다.
연주를 눈을 감고 주제의 선률에 온 신경을 집중하니 울려펴지는 방해음이 사라진다.
드디어 이곡이 끝났다. 청중들은 감격에 박수소리가 끝임이 없다.
계속해서 세번째곡이 이어지는데
Polonaise-fantasy (폴로네이즈 환상곡)이 나를 저 하늘나라로 인도한다.
중간 휴식시간이다. 동행해간 비엔나 친구들이
"조율사가 와서 손볼까?"라고 자문들을 한다.
안타까움으로 궁금한 나는 연주회장 밖으로 나가 연주회장 관리인을 만나서 묻는다.
"조율사를 불렀나요?"
"지금 늦은시각이라 아무도 연락이 안되는데요..."
우리의 말소리에 연주자가 연주자 대기실에서 나온다.
" 아~!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날씨가 추워서 그런것 같은데, 세번째 곡부터 나아졌으니까
다음곡부터는 기대를 더 해보아야지요..."라며 귀엽게 웃기까지 한다.
내 소개를 잠깐하며 비엔나에서도 연주했었냐니까
"희망하지만 원래 비엔나 사람들이 까다로와서 ..."라며 말끝을 흐린다.
(아~! 그 옛날 이 젊은이 보다 더 나이가 적었던 쇼팽도 비엔나에서 실망과 낙망으로 지냈었는데...)
나는 내 감명받은 느낌을 솔직히 말하고 그에게 싸인을 신청하니까
" 아직 연주곡 다 안들었는데요 다 들으신 다음 해드리지요"
" 세곡만 들어도 당신을 통해 쇼팽을 만났어요 "라고 했더니
놀라는 표정으로 쾌히 싸인을 해준다.
옆에서 우리의 대화를 듣던 관리인이 내사진기를 달래더니 기념사진을 찍어준다.
원래 10분 휴식시간이 조금 지연되면서 다시 안으로 들어가니
친구들이 어디 갔다 왔냐면서 묻는다,
대답대신 싸인과 사진을 보여주니 어처구니 없는 표정을 한다. ㅎㅎㅎ
연주자의 기대대로 2부의 곡들은 방해음이 사라지고 무사히 진행된다.
쇼팽소나타 내림 나단조는 많은 연주자들의 애주곡이면서도 어려운 심도 높은 곡인데
이번처럼 가슴을 녹이는 연주는 처음 듣는다.
건너편에 앉은 젊잖은 노신사는 줄곳 눈물을 흘린다.
동행친구들의 표정도 자못 심각하다.악장을 넘어 갈때마다 어떤이는 신음소리까지 한다.
마지막곡인 폴로네이즈 "Heroic"의 내림 가장조는 피아노선이 끊어질까봐 가슴이 조일 정도로 포르테시모처리를 하고
피아니시모에서는 촛불이 꺼질 듯한 느낌이다.
모든 곡이 끝났다.
한동안 아무도 박수를 못친다. 드디어 연주자가 일어나자 우뢰같은 박수가 끝일 줄을 모른다.
연주자의 얼굴에는 송송달린 땀방울이 떨어질듯하다.
연주자가 나간다음 친구들이 나에게
" 야! 너 그싸인 잘 간수해라~ 나중에 니딸에게 가보로 주어야 될걸?"라는데
진심으로 그러는게 전해왔다.
아까 연주자가 말했던 비엔나 사람들이 까다롭다고 했던 생각이 스친다.
나랑 같이 온 친구모두 비엔나에서 온 사람들인데...
(니네들 저 젊은 폴란드 피아니스트에게 정복 당했구나)
속으로 생각만하고 말은 안한다.
아래의 바에는 안갔던 친구둘이 와서 기다리고 있다.
"어땠어?"라고 물으니,
동행했던 두친두 모두 이구동성으로
" 너희들 안 보아서 두고 두고 후회할날이 있을 정도로 좋았어"라며 우쭐한다.
거리로 나오니 어둠속 마리아성당의 모습이 안개속에 희미하게보인다.
저기 멀리 쇼팽이 걸어가는 것 같다.
쇼팽의 음악과 함께 쇼팽의 이야기를 들으니
저도 그곳으로 가 쇼팽을 만난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일요일 밤에 모처럼 클래식한 기분에 젖어봅니다.
좋은 음악 이야기 감사합니다.
하!
"저기 멀리 쇼팽이 걸어가는 것" 같은 감동을 어찌 삭이었을까?
그 돌아온 날 밤.
24살때 쇼팡 컴피티션을 이겼다는 Argerich가 치는 피아노 소나타 2번입니다.
아름다운 기억이 다시 살아나기를 바래요.
아하 내가 좋아하는 Argerich(아르게리히라고 읽는지 알게리치라고 읽는지?).
남미사람답게 어느 남성도 따라올 수 없는 거침없는 열정과 박력이 아주 맘에 들어요.
콩쿨 심사위원으로서도 자기 맘에 드는 연주자가 탈락되면 그냥 박차고 나가버리는 성격의 소유자지요.
저 위사진의 홀 !
자그마하고 무엇보다 무대뒤에 창문이 있어 갑갑하지가 않군요.
전에 춘선이가 올린 노르웨이 여행기에 있는그리이그의 방과 흡사하네요.
혜경언니야!
갑자기 우리도 음악회하고싶지요?
실력은 딸려도 무엇과도 바꿀 수없는 음악에의 사랑이 있었는데..................................
그리운 옛날이여~~~~~~~~~~~~~~~~~~~~~~~~~~~~~~~~~~~~~~~~~~~~~~~~~~~~~~~~~~~~
이사람이 바로 그 세번째 라운드에서 탈락되어 마사가 문을 박차고 나갔다고 하네.
젊어서 피아노 치는 모습은 웬지 불안 한것이
너무 병약 해 보여서 인지?
그런면에서는 매우 쇼팡 스럽기도 하고.
소리가 너무 깔끔 한데 테크닉까지 좋아 너무 날카로운 느낌이야 나 한테는.
명옥인 여기 저기 잘 도 하고 있구먼 무얼 옛날 을 그리워 한다고 해?
차이콥스키 연습한다고 하드니 잘 되고 있니?
아 길게 쓴 거 날아갔다.~~~~~~~~~~~~~~~~
이 사람 소문만 들었지 한번도 연주 들은 적이 없었는데 역시 대단하군요.
콩쿨에 나온 젊은이답지않게 거침없이 개성적이네요.(참 이건 콩쿨 아니지요?)
그런 점이 아르게리히의 마음을 사로잡았나봅니다.
이름도 까먹었는데...............................
대전음악회때 연주자와 반주가 그날 만나서 연주하게되어 상당히 부담스러웠어요.
실제로 하면서 사전 준비만 철저히 하면 만나는 회수가 중요한 건 아니라고 느꼈는데요.
문제는 반주부분의 어려운 부분은 제자신이 소화가 잘 안되네요.
손가락도 잘 안돌고 난해한 화음은 도무지 기억이 안되서요.
그래도 해를 거듭하면서 스스로도 놀랄만큼 좋아졌어요.
적어도 맡은분량에 대해서는 되든 안되든 연습을 하니까요.
콘첼르토는 전주와 간주가 어려운데 사실 음대시절에는 시험때 전주 간주는 생략하쟎아요?
우린 실제 연주니까 이 부분이 솔로라고 생각하고 해야해서리.......................................
챠이코프스키도 무지 힘들어요.
강명희 후배~
후배의 글들 읽으면서 서점을 경영하는걸로 아는데요...
제가 이번에 그곳에서 서점하나를 지나치지 못하고 들어가서는 그냥 이것저것 보면서 즐겼어요.
고2때 단편을 썼었는데,
인일 교지에 실렸었지요, 지금 그 교지는 못 가지고 있고
원고지에 처음으로 썼던 것을 지니고 있어서 어쩌다 읽으면서 그시절의 나와 만나고 있지요.
명희씨는 그때 2년 후배 여중생이라 못 읽었었겠네요.
제목이 "수선화" 인데, 혹시 지금이라도 구할 수 있으려는지...
그중 한부분에,주인공이 책방에 들어가서 열심히 책을 읽는데 주인 여인이
그 모습을 찬찬히 보다가 말을 붙이며 대화하던 장면을 표현했었거든요.
이제 생각하니
주인공이 여고 2년생, 서점 여인이 30대 였었고 지금 현재의 '나'가 50대 이니까
1/3씩 등분된 나이네요.
어떻게 그때 30대여인의 맘을 그렸는지 희안하지요....
아마도 인생에 있어서 분기점이 있다면 바로 그시절이 하나의 정점이었던거 같아요.
하여튼 어떤경우에도 책방에 가면 지금도 고향에 돌아가는 기분이에요.
명희씨 서점을 찾는 고객들중에도 그런사람들이 있겠지요.
지나다 들렸던 책방을 사진에 담았었어요.
이 서점은 중앙광장에서 가까운 Tomasza 거리 25번가에 있는데
지나면서 보니 다방면의 문화서적이 쇼윈도위에 있더라구요.
연주회 마치고 낮에 같이 동행 안했던 친구들이 내 사진을 보더니
다음날 다시 데려가달고 해서 토요일 아침 13일에 가서 한동안 있었지요.
보통서점들은 주로 폴란드어로 출간된 것이라 외국인이 사기를 주저하는데
이 집에는 영문 서적이 많아서 친구들은 서너권씩 샀지요.
미술과 사진예술에 관계된 서적은 장갑을 끼고 보라고 장갑까지 비치되었구요.
저는 딱한권만 사고, 친구들은 이것저것 사느라고 시간걸려서
기다리며 눈팅만하는데 안에 오래 있으니까 더워서 막 풀어헤친 모습이에요^^
저의 뒷 배경에 가지고 싶은 책들이 주르르~~~
김혜경 선배님,
좋은 음악을 올려주셔서 고마워요.
그날 연주회 마친후 친구들과 차거운 밤거리를 다니면서 감정을 수그리고
친구 생일 축하파티하면서 잠시 잊기도 했었지요.
전날 찾었던 서점에 다음날 다시 몇명 친구들하고 가서
전날에 찜해두었던' OPERA 전집'과 '쇼팽' 두가지를 모두 갖고 싶었으나
여행중이라 무게를 생각하고 쇼팽만 달랬더니
한정판으로 나온 것으로 마지막 남은 한권이라면서
주인이 책꽂이에 전시되었던 Chopin 책을 주더라구요(아주 다행이었지요).
Fotografia 사진에 관한 서적들을 보면서 선배님이 떠오르면서 ..옆에 계시다면 좋아하실 거라고 생각도 했고요.
호텔방에 먼저 돌아와서 친구들이 돌아올 동안 한시간정도 넘겨보며 혼자서 흥에 겨워했어요^^
그 기분을 기념하려고 방에서 서랍장에 사진기를 올려놓고 자통셔타로 스스로 찍었지요.
(친구들이 이 마지막 사진 보고 폭소를 터트리기도 ㅎㅎㅎ)
이책은 요즘 제가 정독하고 있는데 내용이 참신하고 첨부자료들도 좋아요.
특히 사진들이 무척 맘에들어요.
그동안은 독일어로 출판된 것들을 읽었었는데
자국인 폴란드에서 200주념 으로 특집을 영어판으로 해서 저 같은 외국인에게 도움이 많이 되네요.
유명옥 선배님,
김혜경 선배님의 대화를 읽으면서
저 까지 언젠가 셋이서 만나면 흥미진진 음악얘기가 넘칠듯하네요^^
김선배님이 올리신 Martha Argerich는 아직도 왕성한 활동을 하지요.
그분의 인생 또한 드라마틱하고...
지금은 부뤼셀에서 지내는데 세각각 다른 아버지를 가진 세딸이 있다네요.
여기서는 그 피아니스트를 마르타 아르게리치라고 아르헨티나어로 부르는듯...
원래 아르헨티아에서 1941년에 태어났는데, 1955년부터 비엔나에 와서 Friedrich Gulda의 제자 였어요.
제가 좋아하는 Gulda의 영향을 많이 받았는가 싶고요.
얼마전에 인터뷰하면서 지나간 얘기도 한 것이 있어서 올려볼께요.
Georges Gachot, Director Nelson Freire, Friedrich Gulda, Geza Hosszu-Legocky, Edouardo Hubert, Ricardo Rossi,
Mauricio Vallina, J?rg Faerber W?rttembergisches Kammerorchester
Martha Argerich has long been hailed as one of the greatest and most uniquely imaginative pianists.
She is most admired for the pure joy of her music-making and her individual approach to each work, each situation and each audience. A wild child and a rebel at heart, this legendary Argentinean musician has often been surrounded by an aura of mystery during her long career.
The "evening talks", a film by Georges Gachot, a French film maker specialised in classical music documentaries,lifts a corner of the veil: Martha Argerich shares with us her memories, confides in us her doubts, and transmits to us her incredible appetite for music-making.
Martha Argerich has before admitted to feeling "lonely" on stage during solo performances and now focuses on concertos and duo work.
The film also shows her performing with some of her closest musical friends such as pianists Nelson Freire and
Friedrich Gulda and in various chamber music settings.
Images of Argentina, where she was born in 1941, footage of rehearsals in the concert hall or at home, excerpts of recent concerts and archival material complete this unique film portrait of one of the most consummate artists of our time.
This outstanding documentation received several awards in Europe and the US and this DVD features a highly informative booklet including international press articles in original languages and more than half an hour of the original footage for the film in an extras package. An intimate glimpse into the life of a wonderful woman and musician!
마지막 동영상을 보면서
젊은 날의 마르타의 모습과 현재의 모습이 섞이면서 감회가 깊었어요.
또한 말년의 굴다인생관과 예술에 대한 그의 집념이
마지막에 드럼과 같이 연주하는 마르타 여인에게도 그사이 어느새 전해진듯 하기도...
인터뷰한 내용에서 " 독주는 외롭다"라는 부분이 맘을 짠하게하더라구요.
근간에는 두오나 협주를 좋아 한다니 중단안하고 얼마나 다행인지요...
저는 이 연주자가 어떠한 쟝르이던 연주하며 오래도록 살기를 바래요.
김옥임 선배님!
저는 선배님에 대한 정보를 갖고 있지 않은데
선배님은 제가 서점 하던 것까지 기억하고 계시네요.(제작년에 그만 두었어요)
그곳 서점의 모습은 고풍한 것이 잘 꾸며 놓은 개인 서재같군요.
음악에 문외한이지만 이곳은 음악이야기가 가득해서 좋습니다.
고등학교 때 소설을 쓰셨다니 대단하십니다.
그때 무턱대고 문학에 심취했었어요.
국어과목 '김미순' 선생님이셨으며 많이 귀여워 해주셨는데....
제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부모님뜻대로 음악대학으로 진학하면서 소식왕래는 끊어졌지만
작년에 홈피에 가입하고 선생님소식이 보이길래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지금은 작가"김하영"님으로 개명하셨더라구요.
가끔 지나간 홈피의 글들을 읽으면서 강명희 후배의 글을 읽었었지요.
진솔한 얘기들을 보면서 감명 많이 받었어요.
제가 썼던 것이 짧은글이라 단편이라고나?, 아니면 꽁뜨라고나 할까요...
하여간 40년 가까히 지난 지금에 생각하니 많이 그리운 저의 순수한 청춘시절이네요.
종종 명희씨 글 보게되리라 기대해 봅니다.
김옥인 님,
초/중/고 때 노래 부르는 걸 좋아했어요.
하지만, 성악 전공을 한두분 권하긴 했어도 제가 감히 할 생각을 못했어요.
예술 감각이 무뎌서 였을거예요.
음악 예술을 통해 삶의 진수를 듣는 방법으로나마 찾을 수 있길 이 나이라도 늦지 않겠지 라며
열심히 듣고 또 듣는답니다.
특히 이런 동기 유발자의 한분이 후배님이란는거 이제사 고백합니다.
함선배님~안녕하세요,
이제는 미국댁으로 가셨나요? 편찮으신것은 차도가 좋아지셨는지요...
예술을 즐기는데는 나이가 별로 상관 없다고 생각되어요.
제가 지내는 이곳에는 나이드신 분들이 더욱 연주회를 자주 다니며 즐기어서 보기에 좋아요.
지난주에 비엔나 국립오페라하우스에서 발레를 보았는데,
제 옆자리 노부인( 짐작으로 80세 전후쯤..)이 손으로 장단 맞추며 심취한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워 보이더라고요.
그리고 EMI 판가게에서도 종종 연세든 분들이 오셔서 새로 나온 음반을 찾으시며 그곳에 상비된 이어폰으로 음악을 듣는 모습을 보면
나이를 괘념치 않고 여유있는 것을 느끼지요.그러면서 저도 많은 동기유발을 그 분들로부터 받고 있어요.
옥인님,
지금 미국에 있어요.
현재 물리치료 받고 있는데, 현 의사분은 수술을 권유하고,
전 거부반응이 민감하게 나오고.
다음 주에 친구 남편의 소개로 좀 더 나이 많은 의사분 찾아뵙고
마음을 결정하려구요.
만일 수술을 하지 않으면 독일에 가서 원래 계획대로 순례를 마치고
해외 주둔 6년만에 두살반과 6개월짜리 손녀딸을 데리고 귀국하는 딸을 동행해주고 싶어요.
그래서인가봐요. 수술이 자꾸 망설여져요.
딸 땜시 뉴욕 카네기 홀에서의 연주에 푸욱 빠진 적이 있어요.
뉴욕청소년 교향악단으로 있는 동안 일년에 세번 있는 concert
매번 선정되는 3곡 중 한곡은 늘 젊은 작곡자의 작품을 초연하더라구요.
그곳에 갈 때마다 예쁘게 차려입은 할머니들이 눈에 많이 띄었어요.
만하탄에 사시면서 이처럼 예술을 즐기는 노후의 삶이 참 인상적이었거던요.
전 옥인님 땜시, 눈이 새롭게 떠져서 인일 홈피 기웃거리게 되어요.
특히 해설이 깃든 음악을 들으면 문외한인 제겐 엄청난 도움이 되어요.
맞아요.
요즘 유행어처럼 되어버린 우리의 화두!
이모작운동본부가 이곳이쟎아요?
사실 이나이가 되기 전에는 우리가 의무적으로 꼭 해야될 일만으로도 하루가 모자라고
또 경제적으로도 나를 위해 투자 할 여력이 없지요.
늙어서 뭘 시작하지 못한다면 그건 영원히 할수 없는 게 된다구요.
현실적으로 늙어야만 가능한 일들이 너무나 많은데 우린 그걸 충분히 만끽하고 즐겨야 하겠지요.
ㅎㅎㅎ
유명옥선배님, 안녕하세요?
글은 많이 읽었지만 처음 인사드립니다.
'이모작운동본부' 라는 말이
너무 재미있고 웃겨서요...
많이 와 닿는 말이고
위의 함정례선배님 말씀처럼
저도 이곳에서 동기유발이 되어
더욱 관심을 갖게 되었어요.
늘 감사의 마음으로
보고 듣고 있지요.
네 반가워요.
우리 성씨가 같아서 눈에 팍 들어오더라구요.
솔직히 요새는 인사한 사람과 안한 사람이 좀 헷갈려서 조심하는 중이에요.ㅎㅎㅎㅎㅎ
여러 댓글들을 읽다보니 사람과 내용도 뒤바뀔 때도 있고요.
그래서 좀 오래된 이야기는 되도록 안하자주의랍니다.
아담한 홀 앞 중앙에 자주색 그랜드 피아노가 있다
관리인에게 허가 받고 앞으로 가서 피아노를 자세히 살펴 보았다.
상표가 Steinbach 인데, 비엔나에서 들어보던 스타인웨이, 뵈센도르프와는 음색이 다르다.
호기심과 기대감으로 연주시작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