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들 하슈? 죽지 않고 잘들 있지? 허허허"

 

너무도 생생한  전화 목소리에 잠이 깨었다.

한번 깬 잠은 아무리 청해도 다시 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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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부부는 결혼하고 서로 같이 있었던 세월보다 떨어져 살았던 세월이 더  길었었다.

 

그는 갑짜기 쓰러져 코마에 머물다가 

아무 말도 남기지 못하고 떠나 갔다.

나는 두고 두고  그가 우리에게 말하고 싶었던 것을 유추 할 뿐이다.

 

한참 전,

남편을 12월 추운 겨울  한국 땅 속에 묻고

비엔나 집으로 돌아와서 부터 그 다음 봄에 비석을 세울때 까지

그가 수도 없이 꿈에 나타났었다.

 

그 때 측근에 있는 사람들이

어서 내 맘에서 그를 떠나 보내야 한다고 했다.

 

한집에서 내내 같이 살다가 헤어진 부부가 아니므로

그가 죽었다는 실감이 전혀 들지 않았다.

평소처럼

" 죽지않고  잘들 있슈? 허허허" 라고 전화해주던 것이 새삼 떠 올랐었다.

그는 유달리  기분좋은 듯이 들리는 유쾌한 음성으로

왜 죽음이란  언어를  더불어 인사를 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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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애가 성년이 되기전에 아빠를 잃은 것이 애처로와

아주 조심스럽게 가끔씩

" 얘야, 아빠보고싶니?'' 물어보면

 

" 그냥 아빠랑 전화하고 싶어..."라는 대답을 했다.

 

너무 어려서 부터 아빠와 떨어져 살다  일년에 몇번씩 서로 오가며 만났다.

자연히 전화로 아빠하고  얘기하던 시간이 많았던 습관에  젖어

아빠와 전화하고 싶다는 것이 항상 내 맘을 아프게 했다.

 

세월이 지나면서

우리는  차차로 그의 전화를 잊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작년부터 내가 딸애와 얼마동안 떨어져 출장 다녀 온 다음,

딸애를 만나 우리 나름 재미있게 산책을 하면서

우리가족의 추억을 얘기나눈 다음에는 꿈속에 나타났다.

 

작년 여름에 나의 출장을 마친 다음날 우리 모녀가 휴가를 갔었을 때,

꿈 속에서 아무 말 없이  나를 뚜렷이 보는 그의 모습에

어? 저사람이 하늘에 있는데... 라고  놀라 생각 하다 깨어났다.

 

그가 무엇을 원하는가?

아무 말도 없는 그에게서 나는 스스로 이렇게 물어 볼 수 밖에 없었다.

혹, 에미가 딸애를 혼자두고 너무 긴 출장을 갔었다고  딸애 걱정을 하는 것인가?

 

그리고 가을, 겨울이 지나고

봄이 시작하는 지금  꿈속에서 전화를 받은 것이다.

 

모습이 안 보이기에

그의 목소리는 더욱 더 생생했다.

 

꿈얘기를 딸애에게 하니,

"아빠는 이상하다. 전화를 기다렸던 나에게는 안하고

엄마한테 하고서리..."

아빠가 살아 있듯이 말하는 딸애로부터

나는  여러 상념에 머무른다.

 

아마도

내 잠재의식속에

딸애와  유달리 즐겁거나 슬프게 지내면, 그가 우리를 보고 있다는 의식이 있는가 보다.

 

얼마전 부다페스트 출장을 다녀올때

딸애가 역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집으로 오면서 조잘 대는 모습에서 애아빠의 모습이 언뜻 보였다.

 

다음날 우리는

비엔나거리 곳곳을 산책하며 다니다

애 아빠 얘기를 저절로 나누었다.

 

" 엄마? 기억나?

그때 내가 초딩 1학년 때 있잖아,,우리가 여기 지날 때

아빠가 이탤리에서  수학여행온 오빠같은 나이 많은 남학생들이랑   

내가 싫다는데도 강제로  같이 사진 찍어 준것?"

 

"그럼!. 그 때 정말 니 아빠  못 말리게  재미 있었어.

그 때 그 학생들이 이젠 다들 애아빠들 되었겠다..ㅎㅎ"

 

이렇게 딸애와 즐겁게 지낸 날 밤에 그가 전화를 해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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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며칠을 그의 전화 목소리가 귀를 감돌았다

"ㅁㅁ 아빠!  딸에게도 전화해요.

그애가 더 기다리는데.."

 

언제 다시 전화가 또 올까...

 

 

 (2012년 3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