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IST 생명공학과 교수 한분이 <연구비 횡령>으로 조사받으시던 중 대전 전민동 엑스포아파트 15층 자택에서

자살하였다는 저녁뉴스이다 (4월10일).  너무나 아깝고 불쌍하다. 사실 교수들 중 애시당초 재벌아들이 아닌 바에야 경제적으로

안정되는 시기는 한참 늙어서이다. (상대적인 얘기로 웬만해서는 재벌아드님이 창의력 만땅인 교수로 되기는 힘듦ㅎㅎ) 우리7기

동기의 부군은 재벌회장이신데 교수들이 그토록 작은 돈 때문에 카드빚을 지는지 몰랐어요.... 하면서 몇번이나 그걸 대신 갚아주고

이자없이 갚도록  하여 나를 놀래켰는데 이 회장님은 실은 한 교회에서 나랑 함께 자란  어릴적 친구로 그토록 이웃에 대한 배려가

큰지.... 몰랐었다. 하여간-

교수의 연구비 횡령.... 이게 뭔 얘긴지 모르는 분들이 있으실 터이니 조금 설명코자 한다.

 

1) 우리나라가 가난을 딛고  대학에 <연구비>라는 것이 생긴 것이 1970년대 후반, 내가 대학원생 때였는데

당시 인천도크 독특한 폐쇄 해양생태계 (wave, tide 등이 없는....)를 박사논문 테마로 정하고 매달 인천에 내려오는 나에게

인천가는 전철이.... 천원이면 되지? 하고 학과장님은 정말 천원을 주셨었다.....그만큼 연구비 규모는 아주 작았었다.

 

2) 1980년대 중반에  배재에 부임하고는당시는  배재에서 연구비 젤 큰 사람이 되었는데, 이때는 연구비 규모가 제법 커졌다.

그런데 연구비를 수혜하게되면 학교 재정에서 가불도 하였고,  대학 통장으로 입금되면  '가라영수증'을 잔뜩 만들어서 한거번에

뭉텅 꺼내기 일수였다.  즉 연구비 입금되는 날은 해피- 한턱내고 난리였다.

 

3) 그러다가 1990년대 중반부터 연구비 규모가 엄청 커지고 (지금은 너무 커져서 교수 한분이 빵~수십억-수백억)  보니

연구비 관리가 엄중하여 졌다. 이때 나는 배재대학교 초대 연구처장을 하면서 연구 관리, 연구 환경 조성 등의 기틀을

마련하게 되었다. 연구비 사용은 재단에서 감사를 받게 되고, 연구비 사용은 점점 엄격하여졌는데,  2000년대에 들어서는

연구비 카드를 주고 그것으로 사용하게 하니 옴치고 뛸 수도 없고, 게다가  연구비 수혜가 결정될 당시, 앞으로 쓸 내용을 몽땅

인터넷에 입력하고 그 상세내역을 미리 재단에서 확인, OK해주어야 그대로.... 사용할 수 있으니 정말 이런 잡일에 (=연구 그

자체가 아닌 일) 막대한 인력이 필요하여져서 인건비는 점점 더 실없이 커져만 간다.

 

3) 이러니 교수가 자유롭게 쓸 수 있는 돈은 자기 연구비 중 한푼도 없는 셈.

(연구비 수혜하려면 정말 고생과 수고가 참말 크다, 지겨워서도 시도하고프지 않을 정도로 날밤을 새고 그 엄청난 경쟁을

통과하여 연구비를 수혜했는데.....내가 임의로 쓸 수 있는 부분은 정말 없음.) 

그런데 이 세상에는 영수증 처리가 안되는 일들이 너무나 많다, 특히 연구실에서는. 그러다보니, 교수들은 학생들 인건비 통장

(매달 꼬박꼬박 학생들 구좌로 들어감)을 자기가 가지고 그 도장도 가지고 사용하면서, 학생에겐 통장 하나 기증한 셈 치도록

이해를 구하게 되는데 , 학생 개중에는 자신이 그 연구에 월 30-150만원 등 기여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돈은 내돈이려니...하고

교수를 소위 <연구비 횡령>으로 비난하고 고발하는 사태가 벌어지게 된다. 

 

또 이렇게도 한다.

연구기자재 및 시약상사들과 짜고 600만원어치 시약을 너희에게 사줄게 980만원어치 산 것으로 해달라...하고는 리베이트를 하는

것이다. (시약상을 비롯... 대학연구실에 기대어 사업을 하는 분들은 묵계처럼.... 교수들의 어려움을 잘 알고 도와주고자 함) 물론 원래

집안이 경제력이 풍부한 집 자손들은 이런 일 하는 경우가 거의 없겠으나  집안까지 먹여살려야 하는 교수 경우

아, 난 왜 재벌사위가 아닐까.... 하면서 이런 일들을 하게 되는 것이, 월급은 사모님 손에 꼬박꼬박 들어가고,  연구실 운영은

연구비풍년 중에 항상 적자이다보니.... 이걸 면해보려고 어쩔 수 없이 저런 실수를 하게되는 것이다.

 

 

4)  이런 모순을 탈피하는 방법이 딱 한가지 있는데, 연구비를 아무리 많이 따도, 그 돈은 나랑 관계 없음을 굳게하고

모든 관리를 연구실의 방장(대학원생 중 노땅)에게 맡기는 것이다! 내 경우 내가 관리할 동안은 너무나도 부도의 연속이라

카드도 돌려막게 되고... 정말 오랜세월 고생하다가 딱! 결심하고 모든걸 방장에게 맡겼더니... 나는 가난해졌으나 (월급도 전역한

서방님 관리 하로 들어감)  이젠 카드빚도 없으며 연구실은 정말로 기름이 잘잘 돌게 되었다.  연구처에서 연구비 관계 전화가

오면 아예 각 연구비 관리대학원생을 바꿔준다. 난 무죄요....  내 연구비 난 일푼도 안씁니다....하는 백기를 들고 사는 셈.

 

내 실험실의 방장은 87학번으로 25년간 나랑 한 실험실을 사용하며 전생에 이녀석이 내 아버지였나? 아님 우리가 전생에

무어였을까 생각될 정도로 이해의 폭이 넓고 또 깊은데.... 연구비 중 내 인건비까지 몽땅 다 자기가 들고 쓰면서(즉 오히려 내

연구비 통장과 관련도장을 저들이 갖고 있음) 눈치를 보아 선생 주머니에 돈이 쪼으는거 같으면... 명절이라 봉투드려요 하면서

열마 넣어주고,  신안 가시는데 기름값넣으세요... 하고 한봉투 주고 그러면서 영수증 가져오라고 또 챙긴다 ㅎㅎ

 

 5)  백지 수표라는것도 있는 세상....  영수증 없이 쓸 수 있는 부분이 좀 있어야만 한다. 세탁소에 가서 영수증 달라고 하면 간이영수증을

주는데 이런건 연구비 관리 상으로는 횡령이요 사기다.  요즘 학생들이 실험가운을 빨아오는가? 아니다. 청소도 그렇다. 파출아주머니를 혹은 인력소개소에서 사람을 쓸 경우도 있으나.. 모두 신용카드 영수증은 거절한다.

 

사람이 죽고자 하는 사연중엔 도저히 얼굴들고 살 수 없다는 절망감이 있다.

이로서 아까운 인재들이 죽음 쪽을 택하고, 지팔자야...라 할 수 밖에 없는건지 그 죽음에 이르는 시도가 또 이상하게도 성공을 하니

안타깝고 안타깝다. 제도가....... 인재를 잃게 하고 있다.

 

 

 

재미있는 예로

내가 연구처장 시절에 화학과 교수와 연구처 직원이 싸우고 있어 보니, 연구비로 이 교수님이 의자를 하나 산 때문이었다. (직원이

.....이렇게 교수님에게 대들고 가르치려다 따귀 맞는것도 보았음....가슴아픈 일들)

학술진흥재단(지금은 한국연구재단) 연구비 관리규정 어디에도 의자를 살 수 있는 여지는 없다.

유교수, 난 디스크야, 나 연구하려면 좋은 의자가 있어야 하고 난 돈한푼 없어요...월급은 몽땅 마누라 꺼거든.

직원은 양양하게 처장님, 안돼요 감사에 걸려요! 마치 경찰이다.

그래서 감사에 걸리면 내가 책임지니 의자 사세요!하고 결론을 내렸던 추억...........ㅎㅎ 

 

그런데 세상엔 위 화학과 교수같이 순진한 경우가 아닌 경우도 많다.

<대기중의 CO2  절감>을 위해 탄소통조림이라 불리는 숲, 나무를 많이 심어 그 Biomass 속에 CO2를 저장하지만

해조류 연구자 중에는 광합성을 많이 하는 해조류를 많이 키워서 바다속에 CO2를 묶어두자.....고 하는 분이 있다

내 후배부부인데, 당시 해수부는(지금은 국토해양부) 이네들에게 매해 6,80억원씩 6년간 연구비지급을 하였다

사실 이렇게 큰돈은 정말 사용하기도 넘쳐 고민이다. 그중 인건비...

대학원생이 몇 없으니.... 할 수 없이 학부생들 100 여명의 인건비가 매달 지급되는 구조였다.

어느 대학 학부학생들이 연구조원으로 매달 그런돈을 백여명이 타는가.....ㅎㅎ

이거 크게 터지지 않은거 하늘의 도움으로 나는 생각한다.  아유 이 연구과제 평가를 하러갈 때에는 참말 이모저모로

갈등이 컸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