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가와 더불어 무희가 되어../김옥인

 

 

 요즘 처럼 햇살이 부드러운 날에는 산책을 하다  벤치에 앉아 눈을 감고 하늘을 정면으로 향해 햇볕을 받는다.

햇볕이 얼굴을 간지럽히는  듯함을 즐기게 된다.

 조금 있으면 낙엽이 떨어져 바람에 날러가는 것을 보며 생각에 잠겨 걷다가 따스한 찻집에 들어가 몸을 녹이고 책을 읽을 것이다.

 좀 더 추워지면  거리보다 미술관을 찾으며 즐겨 보았던 그림을 다시 보고 또 보고 영원한 생명을 느낄 것이고.. 

그러다가 아주 아주 추워지면 그냥 집에서 음악을 들으며 글을 읽게 될 것이다.

눈이 오면 창 밖에 내리는 것을 보다가는 애들마냥 거리로 나가 눈을 직접 만나겠지...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올것이고....

 

 나는 원래 눈오는 겨울을 계절중 유달리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모든 계절이 다 좋다.

계절마다의 특성을 알게 되어 즐기게 된 까닭일 것이다.

 

 여튼 요즘은 날씨가 덥지도 춥지도 않고 상쾌하다.

오늘은 동네를 산책하다 갑자기 내가 다시 태어나게 되면 무엇이 되고 싶을까..

이런 생각을 하며 웃음을 지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 결정이 쉽지가 않다.

그러니 다시 태아나도 내 의지대로 인생이 이어지지 않다는 것은 확실하다.

하여 그냥 무희가 되어 볼까나? ..가정 해 보니 갑짜기 즐거워진다.

 


 몇년 전 파리를 방문했을 때 오르세이 미술관에서 하루종일 지낸 적이 있다.

그 곳에서 '에드가 드가'의 그림들을  보며 그의 섬세함에 소름이 돋는 듯헸다.

그림을 보호하기 위해 빛의 극소화로 방을 조명하고 

특수한 유리 안속에  보관되어지는 작품들은 

그가 발레리나들을 관찰하며 관조의 순간을 누렸을 것을 가늠하기에 충분했다.


okin paris 3 220 Degas.jpg

 

 

 그는 사진에 조예가 있어 순간적 포착의 묘미를 그림에도 인용했다.

자연스러운 순간으로 보이나  모두가 기획된 순간으로 그림표현을 했던것이다.

 

 그림 설명서를 한손에 들고,  

오디오가이드를 귀에 꽂고 대상인 그림 하나 하나 찬찬히 보면서  

드가 시대로 돌아가 보았다.


 그림을 본 후 어느 날 저녁에 파리 국립 오페라좌( 일명 가르니에 오페라극장 )에서 공연하는 발레 한편도 보았었다.

그리고 세월이 지나 지금에 이르다가 그 때의 추억이 일어나 사진첩을 열어보았다.

몇년간 세월의  격조감이 잠시 있었지만

드가의 작품을 보던 감명에 다시 젖으며 나는 무희소녀가 되어  그림속으로 들어 갔다.


paris 3 193 Degas.jpg

 

 

 드가는 아주 지적이고 음악적 기질이 풍부한 인물이다. 

그의 그림들에서 느낄 수 있는 치밀한 구성, 구도에 대한 탐구는 때로 세잔의 정물화가 연상되기도 하는데, 

형식적 구도의 탐구와 소재의 다양한 대비를 통해 표현하고 있는 갈등과 리듬은 

드가의 예술적 기질과 재능을 여과없이 보여주는 듯하다. 

현대적인 시각예술의 관점에서 보아도 그의 그림들은 리드미컬한 세련미가 가득하다. 

마네의 그림을 보면서 느끼는 활달함 이면의 리듬감이 없는 것과는 상당히 다른 스타일의 그림들이다. 

당시 일본미술과 사진의 영향을 자신만의 스타일로 녹여 낸 드가의 그림들은 핸섬한 도회적 인상을 준다.



 드가를 살피며 프랑스어  플라뇌르(fl?neur)라는 말을 알게 되었다. 

도시를 느긋하게 산책하며 사람들을 관찰하고 도시적 일상을 관조하며 즐기는 '소요자', '산책자'라고 우리 말로 옮겨본다.  

드가를 '파리의 플라뇌르'라고 부르는 것을 보니 드가의 무심한 듯 날카로운 시선과 감흥이 플라뇌르라는 말과 어울리는 것이다.

 

 

 올 가을에는 나도 일상을 관조하며 즐기는 ?소요자가 되어 보고 싶다.

또한 머리속으로 드가의 그림을 기리며 그 속의  무희가 되어 익어가는 가을을 산책하련다.


2013년 가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