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르신이 될 것인가? 늙은이가 될 것인가?

구경분

내가 어릴 적엔 ‘환갑잔치’ 라는 말이 귀에 설지 않았다. 환갑까지 살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은 ‘환갑잔치’라는 말을 거의 들어볼 수 가 없다. 아마 좀 더 세월이 흐르면 ‘칠순잔치’ 라는 말도 민망스러울 때가 올 것이다. 100세 시대에 70세이면 청춘이라는 말에 많은 이들이 고개를 끄덕이는 시대가 왔기 때문이다.

 

이렇게 사람의 명이 길어져, 앞으로 우리나라는 말 그대로 고령인구가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게 될 날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그렇다면 숫자적으로 가장 많은 범위를 차지하게 될 노인들의 삶이 바로 이 나라의 삶을 가늠할 수 있는 그림이 될 수도 있겠다 싶어 나는 노인들을 관심 있게 바라본다. 아니, 60을 넘긴지 몇 년이 지난 나도 노인의 문턱에 발 하나를 들여놓았기 때문에 노인 문제에 관심이 더 가지지 않나 싶다.

그런데 참으로 안타까운 일들을 종종 보게 된다.

 

얼마 전 나는 잠깐 라인댄스를 배운 적이 있었다. 신나는 음악이 팡팡 터져 나오는 대강당에서 건강을 지키고자 라인댄스를 하는 노인들의 모임에 낀 것이다. 흥겨운 가요에 맞추어 간단하고 반복되는 동작으로 추는 라인댄스는 일단 다른 사람들과 손을 잡지 않는다는 데서 부담감이 없다. 조금은 틀리더라도 줄만 잘 맞추면 그냥 넘어가는 춤이다. 그래서 노인들에게 아주 인기가 있다.

 

그 라인댄스를 할 때 강사님이 노래 한곡이 끝나면 앞에 선 줄부터 세 줄씩 뒤로 가게 하였다. 앞자리가 고루 돌아갈 수 있도록 배려차원의 지시가 되겠다. 그런데 할머니 중 그 지시를 따르지 않는 노인들이 몇 명 있었다. 남들이 모두 뒤로 가는데 뒤로 가는 척 하다가 느닷없이 불쑥 앞으로 다시 끼어들었다. 얼추 줄이 맞추어져 춤을 추려하는 찰나에 슬쩍 끼어서는 바람에 다시 줄줄이 물결치듯 줄이 흔들렸다. 다시 줄을 맞추느라 잠시 춤의 흐름이 거칠어졌다. 가만히 눈여겨보면 그런 행동을 하는 이들은 정해져있다. 그들은 사람들이 불편해 하건 말건 나만 좋으면 된다는 얌체 같은 행동을 했다. 남보다 조금 더 나이를 먹었다는 생각에서 그토록 거리낌이 없는 행동을 하나본데 나는 그런 모습을 보면 마음이 불편하다.

 

운전을 하다가도 쉽게 볼 수 있는 풍경이 있다. 노인 분들이 건널목도 아닌데서 느닷없이 무단횡단을 하는 모습, 리어카에 짐을 잔뜩 싣고 차도를 인도처럼 누비는 모습,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길가에서 돌아서서 노상방뇨 하는 모습, 줄서기를 해야 할 자리에서 노인 된 것이 무슨 특권인 양 당당하게 새치기를 하는 모습, 등등 내가 늙어가는 처지이기 때문에 노인들의 그러한 모습에 더욱 눈길이 간다. 젊은이들이, 아니, 어린이들이 그러한 할머니 할아버지를 보면 어떻게 생각할까? 고관대작을 지내지는 않았어도 작은 규칙을 당당하게 지키는 노인으로 늙어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저 늙은이 왜 저래?’ 라든가 ‘늙으면 죽어야해.’ 적어도 이런 말은 듣지 않게 살아야 하지 않을까?

 

요즘 우리나라는 노인들의 천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노인들한테 주는 혜택이 참 많다. 만 65세가 되면 전철도 공짜표가 나오고, 고궁도 무료입장이며, 용돈으로 쓸 수 있는 수당도 나온다. 전철을 타도 경로석이란 것이 있어서 언제나 앉아서 편히 다닐 수 있다. 이렇게 많은 혜택을 누리면서 사는 노인인데 작은 기초질서 하나 지키지 못하는 노인이 돼서야 되겠는가! 젊은이들이 애써 벌어 낸 세금으로 공짜 혜택을 무궁하게 누리는 우리가 젊은이들에게 본을 보이는 모범적인 노인이 되어야지, 젊은이들이 눈살 찌푸리게 하는 삶을 살아서야 되겠는가!

 

노인대학을 다니고 있는 형님한테서 엊그제 아주 좋은 의견을 하나 들었다. 주변에서 존경받지 못할 행동을 하는 노인들을 볼 적마다 부끄럽다며, 노인대학에서 노인으로서 갖추어야할 교양과 덕목을 쌓게 한 후 ‘노인증’을 발부하여 그것을 가지고 있는 이들에게만 국가적인 혜택을 받게 하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얘기를 들었다. 몸이 불편하여 노인대학에 참석 못하는 노인 분들은 가정방문 교육을 하더라도 그런 교육이 필요하다는 말씀이었다. 참으로 공감이 가는 얘기였다. 가정에서나 사회에서나 존경받는 어른으로서 젊은이들로부터 공경의 마음 가득 담긴 ‘어르신’이라는 호칭을 들을 수 있는 그런 어른으로 늙어야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앞으로 노인들한테 주어지는 모든 복지비가 젊은이들의 피땀에서 나오는 것 일진데 우리 노인들은 각자가 ‘젊은이들을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를 고민하며, 젊은이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게 살뿐더러 젊은이들이 노인들을 공경하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도록 품위 있는 삶을 살아야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나이를 먹어 늙은 상태인 사람들에게 붙여지는 말이 몇 개 있다. 일반적으로 그런 분들에게 붙여지는 호칭이 ‘노인’, ‘늙은이’, ‘어르신’, 등이 있는데 내 나름대로 정의를 내려 본다면 ‘노인’은 그저 연세가 지긋하신 모든 분께 보편적으로 붙여드리는 호칭이라고 본다. ‘어르신’은 ‘노인’을 좀 더 공경해서 칭할 때 그리 하는 것으로 본다. 그런데 ‘늙은이’ 라고 하면 노인을 폄하하는 말이 되겠다. 그래서 노인 분들께 ‘늙은이’라고 하면 몹시 화를 내신다.

 

언젠가 선거철에 어떤 정치인이 노인을 지칭할 때 ‘늙은이들’이란 표현을 써서 낭패를 본 일도 있었다. 오래전 도시에 살적에 1박 2일 일정으로 시골로 어름낚시를 간 적이 있었다. 그 때 함께 갔던 부부 중 한 여인이 민박집 노인 분께 말끝마다 ‘어르신’이란 호칭을 써 드렸다. 그 때 순박하고 인정 많던 민박집 노인은 정말로 우리에게 칙사 이상의 환대를 해 주셨다. 나는 세월이 좀 흐르고 나서야 우리가 환대를 받았던 이유가 함께 한 여인이 말끝마다 붙였던 ‘어르신’ 이란 호칭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다.

 

나도 어느덧 나이를 먹어 노인 회관에 다닐 나이가 다 되어간다. 나는 늙어 보이지 않으려고 겉모양새에 이리저리 신경을 쓸 시간에 내면을 아름답고 멋지게 가꿀 것이다. 오래 사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 살아있는 동안 건강하게 살며, 내 자리에서 뭔가 이웃에게 소용이 되는, 내가 있음으로 해서 더불어 이웃이 즐거운 그런 할머니로 늙을 것이다. 노인들한테 베푸는 이런 저런 것들이 공짜라고 무조건 좋아하지 않고, 되도록 공짜 인생을 살지 않으려고 노력할 것이다. 공짜로 받았으면 받은 만큼 사회에 환원할 줄 아는 멋진 어르신으로 늙을 것이다. 젊은이들에게 사랑받고 존경받는 어르신으로 늙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