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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푸르나 트레킹을 다녀오다

 

육십이 되어 오는데 너는 너 자신에게 해 준 것이 뭐야? 어느 날 문득 나는 나 자신에게 물었다. 나를 위한 여행 한 번 변변히 못해보고, 나 자신을 위해 변변한 옷 한 벌 입어 보지 못하고 초라하게 육십을 맞이하고 있었다. 육십이 되기 전에 나는 나에게 큰 선물 하나를 주고 싶었다. 어떤 선물을 줄까. 나는 나에게 다시 물었다. 내가 나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을 생각해 내느라 여러 날을 생각했다. 그러다가 생각해 낸 것이 히말라야였다. 그곳을 가 보자. 가서 그곳에 떠오르는 태양을 보자. 그것이 육십 평생 내가 나에게 주는 최고의 선물일 것이야. 그렇게 안나푸르나 트레킹의 계획이 시작되었다.

 

대학동창 다섯 명과 진주에 사는 동창의 지인 다섯 명과 가이드 하나를 낀 자유여행 형식이었다. 결정할 때까지가 어렵지 결정하고 나니 주위에서 많은 격려를 해 주었고 생각보다 훨씬 더 삶의 활력이 되었다. 전지훈련 차 매주 북한산을 산행을 했다. 그때마다 친구들이 나와 밥을 사 주며 격려했다. 지도를 보고 네팔의 이상한 이름의 지명들을 접했다. 수도 없이 우리가 갈 코스를 그려보았다. 갔다가 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인터넷을 통해 들었다. 대부분 이곳을 왜 왔나 다시 이곳을 오면 사람이 아니다 라고 했지만 그들 모두는 돌아와 다시 히말라야로 떠나고 싶어 했다. 힘든 길이지만 그 힘듦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가 볼만한 곳임에 틀림없다.

 

나는 오래 전부터 히말라야를 가고 싶었다. 오래된 미래에 나오는 라다크 지방을 꼭 가리라 마음먹고 있었다. 자연 그대로의 모습으로 자연의 일부분이 되어 사는 사람들을 보고 그곳에서 나도 자연의 일부분이 되고 싶었다. 인도 북부 라다크 쪽의 히말라야가 아니라도 네팔 쪽으로 가니 아무래도 괜찮다. 세계에서 8000미터 이상의 봉우리가 14개 있는데 그 중 8개가 네팔에 있다. 그렇게 카투만드를 경유해 관광도시 포카라로 그리고 산행 기점 나야풀에서 트레킹이 시작되었다.

 

네팔 사람들은 7000미터 이상의 봉우리에만 마운틴이라고 부른다. 그 이하는 모두 다 힐이다. 내가 올랐던 가장 높은 곳은 푼힐로 약 3200미터의 고지다. 그곳에는 안나푸르나 일출을 가장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전망대가 설치되어 있다.

그날 새벽 4시에 일출을 보기 위해 일어났다. 전날 가이드가 준 고산증세가 나타날 때 먹는 알약을 먹었지만 온 몸이 저릿저릿한 게 발을 옮기기 힘들었다. 트레킹 중에 만났던 사람들이 모두 다 그 시간에 푼힐을 향해 걷고 있었다. 나는 천천히 천천히 전망대로 향했다.

전망대에 도착하니 막 일출이 시작되고 있었다. 구름 속에 감추어져 있던 설산이 잠시 구름을 몰아내고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때였다. 설산 너머로 아침 해가 새벽 어스름을 몰아내고 빛을 뿌리는 광경을 보았다. 세상에 골고루 밝음을 뿌려주는 그것은 자비였다. 그 빛 속에 삼라만상이 살아 숨 쉬고 그 생명들은 햇살 속에 찬란히 빛났다. 이곳에선 매일매일 이처럼 아름다운 자비가 되풀이 되고 있었다. 꿈인가 했다. 꿈이 아니다. 나는 지금 분명히 안나푸르나 설산 너머로 해가 떠오르는 것을 보고 있었다.

숨 쉬기도 벅찼다. 할 수만 있으면 통곡이라도 하고 싶었다. 그 광경은 고달픈 내 육십을 보상해 주기에 충분했다. 그 자리에서 죽는다 해도 내 인생이 억울할 것이 없을 것 같았다. 나는 드디어 안나푸르나 일출을 보았다.

 

가이드는 네팔에서 엽서를 쓰게 했다. 수신인이 나인, 내가 나에게 보내는 엽서였다.

“ 네가 이 세상에 왔다가 돌아가는 날 여기 히말라야 산 속을 기억하라.

세속적인 욕망으로 괴로워 할 때 이곳 사람들의 눈망울을 생각하라.

세상살이가 힘들 때 간드럭 마을의 히말라야바위취를 생각하라.

그럼 넌 외롭지도 슬프지도 않으리“

내가 나에게 쓴 엽서 중에서.....

 

그렇게 나는 삼천 미터의 골짜기를 오르고 내리며 안나푸르나 트레킹을 다녀왔다. 삼천 미터 꼭대기에도 사람들이 밭을 일구고 살고 있었다. 아마도 그 산을 평생 한 번도 못 내려오는 사람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지 않으니 행복지수가 높을 밖에....그것이 세계 최빈국이지만 행복지수는 세계 최고인 이유일 것이다.

 

여행은 새로운 풍광과 사람들과의 끊임없는 만남과 이별이다. 그곳을 다녀온 후 나는 다시 히말라야 앓이를 하고 있다. 함께 갔던 친구들과 내년에 다시 한번 히말라야 트레킹을 하기로 약속했다. 이번에는 에베레스트쪽으로 갈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