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생각은  “무지 먼 곳”  이라는 느낌일 것이다.  정말 매우 먼 곳이다.  
지구상에서 한국으로부터 가장 먼 위치에 놓여있다.   공처럼 둥근 지구본에서 브라질을 찾으려면 한바퀴 뺑뺑이를 돌리고도 고개를 더 꺽어야만 한다.  어지럽다.
사람들이 브라질여행을 선뜻 작정하지 못하는 이유도 어지럽기때문일지도 모른다.

“비행기로 몇 시간 걸려?”  하고 사람들은 묻는다.
“직행 KAL 이 있을 때는 23 시간 걸렸었어.  지금은 직행이 없으니까 더 걸리겠지?”  하고 대답하면 열이면 열 사람이 모두 ,
“아휴!  하루종일 어떻게 비행기를 타?”   한결같이 이런 반응을 보인다.
그래서 못 간다고 한다.
그럴까?    정말 24 시간 비행기를 타면 어지러워서 땅에 내리면 똑바로 서지도 못하게 될까?   산후조리 잘못하면 평생고생이라듯이  장시간 비행이 평생 건강에 막대한 지장이라도 초래한다는 것일까?  

잘 모르는 것에 대하여 사람은 우선 거부감 내지는 적대감부터 느끼게 된다고 한다.   호기심과 경계심이 동시에 발발하지만 호기심을 충족시키기보다 경계심으로 울타리를치고 그 안에 안주해 있는 편이 더 수월하기도 하겠지.

한국사람들이 브라질에 대하여 잘 모른다고 ?  우리가 ?  
월드컵대회를 성공리에 마치고 세계만방에 ‘대-한-민-국’  을 단 한번에 시뻘겋게  홍보를 해 낸 우리가  월드컵의 주역 브라질에 대해서 모른다니 그게 말이 되는가?

그러나 브라질에서 살고 있는 내가 서울에 와서 만난 한국사람들은 분명히 브라질에 대하여 알고있는 사항이 별로 많지 않았다.  
그 “안다” 라는 표현도 정도와 질에 따라 천양지차가 있겠지만 우선 그들은 비행기로 몇시간을 날아가야 브라질 땅이 되는지조차 모르고 있지 않은가.

언젠가 브라질 교포 한사람이 서울에 온 김에 생각이 나서 안경을 맞추러 종로 어디 안경점에를 갔었단다.   시력검사를 하고 테를 고르고 등등 주인과 주거니 받거니 이야기가 오가던중 해외교포라는 사실이 알려졌다고 한다.  

“해외 어디요?   어디서 오셨어요?”
두 눈을 반짝이며 주인이 묻더란다.
“먼데서 왔어요. 브라질에서요.”  라고 대답을 했단다.
그러자 지금까지 그토록 우호적이고  융숭하던 주인의 자세가 갑자기 돌변하더니 눈초리까지 달라져서 한다는 소리가,
”쯧쯧, 어쩌다 그 먼데까지 가게 됬수?”  그러더라는 것이다.

이 사람이 알고 있는 ‘브라질’ 은 과연 어떤 곳이기에 이런 반응을 보였을까.
필경 그 이가 알고 있는 바로는  ‘브라질은 미개국가, 땅덩어리만 주체할 수 없을만큼 클뿐 별 볼 일 없는 나라’ 쯤일 것이다.  
어쩌면 그것은 ’미국은 선진국가,  일등국가,  미국은 좋은 곳이고 미제는 다 좋은 것’  이라는 생각과 비슷할지도 모른다.

한국에서 살고 있는 모든 한국사람이 다 이 사람과 같다고야 할 수 없다.
그렇기는 해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브라질에 대하여 아는 바가 별로 없다.  
하기야 거기 살고 있는 나도 브라질이라는 나라에 대하여 얼마나 잘 알고 있는가.  내가 안다고 생각하는 것들은  정작 내가 알지 못하는 것들과 비교하면 그야말로 ‘새발의 피’ 쯤 될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나는 브라질에  거주지를 갖고 있는 사람이다.
몇년만 더 지나면 내가 한국에서 살았던 기간과 브라질에서 살아온 기간이 또이또이를 이루게 된다.
이러한 내력으로 미루어 “브라질에 대한 이야기를 좀 해 주세요”  하는 정중한 요청을 받았을 때  “나는 못해요.  아는게 없어요.”  라는 대답은 과연 겸손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새발의 피’의 양이 얼만큼이나 되는지 그것은 나도 모른다.  그 피가 그릴 수 있는 그림이 얼마나 될런지도 알 수 없다.  그러나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니까 어디 붉은 색칠을 시작해 볼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