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에 대한 추억/신금재


이북에서 피난내려오신 아버지가 충청도 과수원집 딸 어머니를 만나 수유리 빨래골에서 나를 낳으시고

 새로운 삶의 터전을 찾아 새둥지를 튼 곳은 인천 배꼽산 아래 새동네였다.

두분은 산아래 거친 땅을 개간하여 밭을 일구셨다.

아지랑이 피어나는 봄이면 일하시는 두 분을 따라 텃밭에서 놀았다.

지금도 아련하게 떠오르는 배추흰나비의 날갯짓과 날개 아래 피어나는 배추꽃의 노란 향기가 다가온다.

배추가 쇠어지면서 배춧대를 타고  피어나던 꽃송이는 우리들의 출출한 허기를 달래주었고 먹다남긴 꽃송이들은 소꼽놀이의 재료가 되어주었다.


미처 개간하지못한 산 언덕에는 구덩이를 파고 호박을 심으셨다.

진노랑으로 피어나던 호박꽃이 아물어가면서 매달리던 연하디 연한 호박은 비오는 날의 호박부침으로 우리 상에 올려졌다.

여름날 내리는  지루한 빗소리와 호박부침의 구수한 냄새가 어우러져 우리의 초라한 식탁을 감싸주곤하였다.


감자도 많이 심으셨는데 부모님이 떨구고간 새끼감자를 주워와서 감자조림을 먹으며 두런두런 이야기꽃을 피우던 늦여름 저녁이면 지쳐누운 배꼽산에서 소쩍새가 한없이 울었다.

소--쩌--억, 소--쩌--억--


텃밭에 거름을 만들어주는 재래식화장실 옆에는 거름더미가 있었다.

주로 아궁이에서 가져온 재들이 많았지만 먹고 남긴 음식찌꺼기, 쌀뜨물 등  요즈음 말로 친환경이 되는 모든 것들은 거름더미에 모아져서 다시 우리의 먹거리에 영양과 수분을 공급해주는 사이클의 한단게가 되어주었다.

돌고도는 순환의 원리, 우리가 먹고 남긴 찌꺼기가 다시 우리의 먹거리가 될 식물들에게 영양을 주다니.

우리 삶에 이해되지않는 것이 어디 그뿐이랴.



어머니는 유난히 강낭콩을 많이 심으셨다.

자주색의 마른 씨앗을 심으시는 것을 보고 며칠 지나면 푸른 잎을 피우며 거친 땅을 뚫고 올라오던 떡이파리 두 닢.

아침이슬이 채 마르기도 전에 피어올라오던 그 떡이파리는 어린 시절 우리에게 무언의 가르침이 되어주었고 어머니의 나라,모국을 떠나와 이민살이를 하는 나에게는 더욱 각별한 느낌과 생각을 하게해주었다.


어머니 한쪽 신장에 이상이 생겼다고 동생에게서 연락을 받던 그날, 나는 데이케어에서 아이들에게 줄 점심 테이블을 준비하고있었다.

그날 아이들이 좋아하는 쉐퍼드파이와 야채쇠고기국이 나왔는데 국을 뜨다보니 그안에 강낭콩이 들어있었다.

함께 일하는 케네디언동료에게 이 콩이름이 무어냐고 물었더니 키드니빈이라고하였다.


그때는 이민온지 얼마되지않아 목에 수첩을 걸고다니면서 모르는 단어를 물어 적곤하였다.

어, 얼마전에 찾아본 신장이라는 단어가 카드니(kidney)였는데 이 콩 이름이 키드니라고...


점심을 먹는 내내 어머니 얼굴이 어른거렸다.

어린 시절 강낭콩을 너무 많이 먹어서 이제는 다른 콩은 먹어도 강낭콩은 안먹겠다고 투정을 부리곤하였는데.

의사 선생님 말이 신장은 두개라서 한쪽 신장만으로도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고한다.


그해 가을 어머니 수술을 하기위하여 찾아간 병원에서 의사는 내게 책상 위 컴퓨터 화면을 내쪽으로하여 어머니 신장 사진을 보여주었는데 그것은 사람의 신장, 콩팥 모양의 신장이 아니라 이미 굳어질대로 굳어져버려 마치 사슴의 뿔처럼 변해져있었다.


수술은 어렵겠습니다.  어머니 연세로 보아 수술이 오히려 어머니 생명을 더 단축할 수도 있습니다.


문을 열고 나온 병원 복도 저쪽 끝에 어머니가 심으셨던 강낭콩밭이 짙은 자주색과 연한 초록이파리로 다가왔다.

하얀 머릿수건을 쓰고 허리를 굽혀 일하던 모습과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는 나에게 손을 흔들며 이마에 땀을 적셔내던 모습이 내게 다가오다가 이내 사라져버렸다.


안좋은 몽으로 이사간 아들네 아파트에서 밭에 가시다가 다리를 다친 그후.

 어머니는 큰아들집에서 요양병원으로, 요양병원에서 작은 아들 집으로 다시 병원으로 옮겨다니다가 

어머니는 이제 어머니의 영원한 텃밭으로 가셨다.


나는 아파트싫다. 

텃밭이 딸려있던 그 돌축대집이 좋았는데. 어디선가 어머니의 작은 한숨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어머니의 젊은 시절 인생은 전쟁에 떠밀리고 나이들어서는 자식들에 떠밀리고...

어머니

 이제는 어머니의 하늘나라 텃밭에서 편히 쉬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