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내가 살던 김포는 차 구경도 할 수 없는 깡촌이었다. 나는 가끔 지나다니는 차를 구경하기 위해 신작로에 가서 놀았다. 차가 지나면 비포장 도로에선 먼지가 뽀앟게 피었다. 신작로에는 돌맹이들이 조약돌처럼 뒹굴었다. 돌맹이를 주워다가 공깃돌로 썼다. 공기는 여자아이들의 유일한 놀잇감이었다.

  그 시절에 내 주변에는 버리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설걷이를 마치고 버린 구정물까지 재활용이 되었다. 구정물이 흐르는 도랑에서는 미나리가 자랐다. 구정물은 다시 깨끗한 물이 되어 앞논으로 흘렀다.

  생활에서 나오는 소소한 음식물 쓰레기는 두엄더미에 버려졌다.  마당가에 만들어진 두엄더미에다가 한강둑에서 베어온 풀들을 쌓아놓고 썩혔다. 가끔 거기다가 똥뚜간에서 퍼낸 오물과 외양간에서 쳐낸 소똥들을 뿌렸다. 그것들이 썩어  겨울이면 두엄더미에서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한 겨울에  김이 피어오르는 두엄더미가  어린 눈에 기이하게 느껴졌다.

  봄이면 두엄더미가 바닥을 드러냈다. 논에도 밭에도 시커멓게 썩어 마치 곤약처럼 된 두엄들이 뿌려졌다. 겨우내 짚을 때서 밥을 하고 구들을 덮힌 잿더미와 1년 내내 정성드려 만들어놓은 두엄만을 먹고서도 논과 밭에서는 언제나 곡식들이 축제를 벌렸다. 큰집도 우리고 작은 집도 우리였다.삼촌도 고모도 사촌도 다 우리였다. 한 밭에서 먹거리를 함께 뜯어다 먹는 우리였다. 그 시절 우린 모두 다 건강했고 또 행복했다.

 

 피에르 라비 농부 철학자를 읽었다. 그는 1킬로의 영양분을 얻기 위해 12킬로의 에너지를 소모하는 요즘 농사를 실랄하게 비판했다. 화학물질을 이용한 돈이 많이 드는 농사를 짓고 남은 농부들은 대도시 주변으로 흘러들어와 빈민촌을 형성하는 현대 농촌사회의 병폐를 꼬집었다. 땅과 인간은 그렇게 점점 황폐화 되고 환경은 열악해지는 현대 농업의 대안으로 그는 생명 농업을 하는 공동체 생활을 말하고 있다. 생산자와 소비자가 그 지역내에서 이루어지는 시스템. 각각의 사람이 개인의 자유를 지키며 안전하고 살아가는 공동체 생활. 그것은 산업화 되기 이전의 우리 농촌의 모습이다.

  피에르 라비는 아내와 함께 프랑스 오지마을로 들어가 자갈밭을 친화적인 농법으로 비옥한 옥토록 만든다. 살충제나 비료 전략적인 물관리 같은 현대적인 방법이 아닌 전통적인  방법으로 농사를 짓는다. 그 곳에서 다섯 아이를 낳고 그들이 먹을 만큼만 일하고 거둔다. 그리고 자연을 바라보며 음악을 연주하고 책을 읽고 글을 쓰며 행복하게 산다.  생태계를 파계하지 않고도 충분히 한 가정을 부양하고 행복해 질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 보였다. 피에르 라비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자신들처럼 농촌으로 살러오는 사람들이 생겨나자 자신의 경험을 나워 그들이 정착할 수 있게 도와준다. 그렇게 시작하여 프랑스 뿐 아니라 아프리카에도 생명농업을 전파시킨다. 프랑스 언론에서 그를 <실천적 신비주의자>로 부르며  영적인 지도자로 추앙하고 있다.

  피에르 라비는 사는데 무엇이 필요한지 또 얼마만큼의 물질이 필요한지를 현명한 추장의 일화를 통하여 말했다.

  비료만드는 회사에서 어느 아프리카 족에서 비료를 대 주며 농사를 짓게 했다. 그 해 아프리카 농부는 배 이상을 수확할 수 있었다. 그러자 나이가 많고 눈먼 추장은 명령을 내렸다. 내년에는 절반의 크기의 땅에다가 농사를 지으라고.... 도끼 일화도 있다. 아주 열악한 도구로 나무를 베는 인디언을 보고 백인이 성능이 좋은 도끼를 주었다. 백인은 인디언들이 더 많이 갖기 위해 더 많은 일을 했을 거라고 생각하고 그 곳에 가 보았더니 인디언들이 더 빨리 일을 끝마쳐 더 많은 휴식을 취했다고 백인에게 감사했다고 한다.

 

 이 책을 보는 내내  나는 어린 시절이 생각났다. 삐에르라비는 내 어린 시절 할아버지 아버지가 살았던 것처럼 살아가며 철학자의 소리를 듣고 있다. 그러고 보니 어린 시절 할아버지나 아버지는  다 농부철학자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