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서 세계 속으로>는 피디가 여행을 하며 여행지를 소개하는 프로다. 그것은 여행을 자주 못하는 내가 즐겨 보는 프로이기도 하다.  지난 주는 안나푸르나 트레킹을 하며 네팔 여행을 소개했다. 피디는 짐을 포터들에게 맡기고, 간식과 물통이 든 작은 배낭을 메고 가는 도중에 20킬로의 술병을 등에 지고 옮기는 8살짜리 꼬마 아이를 만난다. 건장한 포터들도 20킬로를 지고 계단을 오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피디와 한국인 트레커들은 서로서로 아이의 짐을 들어 아주 힘겹게 꼬마가 사는 롯지(숙소)까지 옮겨다 주었다.

 아이의 엄마가 죽자 술만 퍼 마시던 아버지가 꼬마를 그곳 롯지에 팔아넘겼다고 한다. 피디가 콜라와 쥬스를 사 주자 꼬마는 양손에 그것을 들고 번갈아 마시며 세상을 다 가진 듯이 행복하게 웃으며 장난까지 쳤다. 그곳에서 노예처럼 살아가는 꼬마 아이를 피디는 한국에 돌아가서도 잊지 못할 거라고 했다.

 네팔 여행은 설산을 바라보며 트레킹 하는 것이 묘미다. 설산이 잘 보이는 곳에는 예외 없이 롯지가 있다. 그곳에서 설산을 감상하면서 하루를 묵고 아침에 떠오르는 태양을 감상하며 길을 걷는다. 나무 위에서 거머리가 뚝뚝 떨어지는 열대 우림지역으로부터 눈 내리는 고산지역까지 몇일만에 다 맛볼 수 있는 것도 히말라야 트레킹의 묘미다.

 그렇지만 옵션으로 따라오는 것이 있다. 그것은 통증이다. 내가 히말라야에서 돌아온 지 거의 일 년이 되어 가지만 통증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온 몸에 부스럼이 난 아이에게 가져간 약이라도 발라주었으면, 쓰레기통을 뒤지는 아이에게 우유 하나 사 주었으면, 배가 아프다던 포터에게 약이라도 좀 줄 걸, 온 몸에 부스럼이 난 아이를 안고 구걸하는 여인의 손에 지폐라도 쥐어주었으면....그러면서 통증은 통증을 낳는다.

 네팔에서 돌아와 딸네 집에 들어가니 장안마다 옷이 넘쳤다. 웬 옷이냐고 물었더니 동네 엄마들이 손주들 입으라고 가져온 옷이라고 했다. 이 옷을 언제 다 입냐고 물었더니 사위 말이 '글쎄요, 한 번 입고 버리고 한 번 입고 버려야할 것 같아요' 하고 장난스럽게 대꾸 했다. 그 옷을 보니  명치 끝에 통증이 또 왔다.

 며칠 전 네팔 가이드했던 분이 네팔을 간다고 했다. 딸이 안 입는 아이 옷을 챙겨 주었다. 터미널에 가서 가장 큰 이민가방을 사다가 큰 지퍼팩 안에 넣고 청소기로 공기를 빼 옷을 넣었다. 카톡으로 가방을 찍어 보냈더니 가이드가 가방이 너무 크다고 줄여 달라고 했다. 가방을 줄이고 다시 꾹꾹 채워 넣었다. 그리고 가이드가 온다는 터미널로 그것을 들고 나갔다. 가이드가 산간마을 아이들이 좋아할 거라며 흔쾌히 무거운 가방을 들었다. 그 옷이 가난한 네팔아이들에게 조금이라도 보탬이 될 거라 생각하니 조금도 귀찮지도 또 힘들지도 않았다.

 불과 5. 60년전에 우리는 네팔에서 보았던 그러한 가난을 경험했다. 지금 우리는 너무 잘 살고 있다. 가난을 겪어본 사람만이 가난한 자의 고통을 알 수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후진국을 후원해주는 단체나 행사들이 많이 있다. 이젠 우리만이 아닌 다른 나라의 아픔에도 관심을 가져볼 때가 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