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어느 토요일 불후의 명작을 보다가 깜짝 놀랐다. 문명진이라는 가수가 부르는 <슬픔만은 아니겠지요>를 들었다. 애절하고 슬픈 목소리가 내 영혼을 흔들어 놓아 듣고 있노라면 저절로 눈물이 쏟아졌다. 수 없이 듣고, 듣고, 또 들었다.

 게다가 그는 10년 무명의 가수였다. 그 목소리와 재능을 갖고 10년 무명으로 지냈다는 것이 신기했다. 뒤늦게 우리가 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이 다행이었다.

 나는 그의 펜클럽에 가입해 글을 썼다.

<나는 데뷰 10년된 소설가라고.....발표할 곳이 없어 작품이 컴퓨터 안에 가득한 무명의 소설가라고...그리고 딸과 비슷한 연배의 문명진씨를 보고 희망을 얻었다고....당신은 나의 희망입니다> 라고 썼다.

 그 후 여차저차하여 책을 내게 되었다. 수없이 공모에 내도 떨어지기만 했던, 공부하러 가면 이리 깨지고 저리 깨지며 얻어터지기만 했던, 발표할 지면이 없어 아무도 읽어보지 않은 작품 11편을 책으로 묶었다. 

 책이 나와 지인들에게 보내주었다. 너도 나도 책을 내는 세상에 책을 출판했다는 것은 특별한 일이 아니다. 책을 낸 것이 못난 내가 세상에 드러나는 것 같아 오히려 부끄러웠다.  그런데 내 책을 읽은 분들은 의외의 반응을 보여왔다.

 

만사 뒤로 미루고 끝까지 읽게 만드는 히말라야바위취의 매력 -소설 읽고 이렇게 행복한 게 처음입니다 -서정자(평론가)
 

잊고지내던 소설 읽는 재미를 다시찾게해준 소설이다 -이명희(동문선배)

오랫만에 진짜 단편을 읽었다. 한 편의 시보다 더 깊고 아름다운 글들- 성낙희(숙명여대 명예교수)

수상한 시대에 가슴이 따뜻해지는 소설을 읽게 해 준 작가에게 감사드립니다. -용환신(시인)

 

책을 놓지 못하고 계속 읽어가며, 때로는 공감의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잊고 있던 옛추억을 떠올리게 해서 책을 읽는 순간 내내  행복했다. (대학동창)

 

마주하기도 싫은 끔찍한 제주 <4.3>을 판화처럼 산뜻하게 찍어낸 솜씨 덕에 조금만 슬프게 읽을 수 있었다. (제주도 친구)

                                                               

 

 읽고 문자로 또는 카톡으로 보내준 평들이다. 지금도 계속해서 카톡으로 문자로 평들이 들어오고 있다.

 모교 은사님은 우리과의 경사라며 흥분을 하셨고 남편의 지인 한 분은 작품 읽을 때마다 평을 문자로 보내주셨다. 여고동창은 밤새워 긴 평을 써서 블로그에 올려주었다.  만나는 사람들마다 출판을 축하한다고 꽃과 케익을 사 준다. 이 세상에 나와 이런 주목은 처음 받아 본다. 

 소설 쓴다고 돌아다닌지가 10년이 넘지만 이런 평은 들어보질 못했다. 이건 신파다, 이건 진부하다, 왜 인물들이 정형화되었냐고 늘 두들겨 맞기만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 작품을 난도질했던 사람들이 고맙다. 그들이 있어 오늘 내 작품이 완성되었다. 소설은 혼자 쓰지만 결코 혼자 쓰는 것이 아니다. 자기 머리 속에서 나온 이야기라 자기의 험은 못 본다. 소설은 곁에서 읽어봐주고 매섭게 얘기해 주는 사람들에 의해 완성된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내 책이 세상에 던져졌다. 이제 내가 내 소설들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은 겨우 <작가의 말 2> 정도 써 주는 것 밖에 없다. 내 소설들의 앞날에 행운이 있길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