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말라야 트레킹을 갔을 때 나는 어느 산간마을에서 히말라야바위취를 보았다. 땅에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우는 다른 화초와는 달리 돌을 쌓아놓은 축대 틈에서 자라고 있었다.
히말라야바위취는 시베리아가 원산지며 히말라야 고산지대에 사는 추위에 강한 식물이다.  따뜻한 온도와 기름진 땅에서는 이파리만 무성할 뿐 꽃을 피우지 못한다.  배추이파리같이 밋밋한 화초에서 분홍색 나비가 떼 지어 앉은 모양의 꽃송이를 피워 올리는 것이 놀라웠다.
우연인지 내 작품 속의 주인공들은 모두 이 히말라야바위취를 닮았다. 그들은 하나같이 남루하고 고달픈 삶을 견디며 살아간다. 그들을 구원하는 것은 아주 작고 진실한 사랑이다. 그들에게 지나친 사랑은 오히려 독이 된다.

내게 소설은 견딤이다. 삶이 견디기 힘들 때마다 글을 썼다. 이 소설들은 책 장사를 할 때 손님이 들어오면 일어나 책을 팔고 손님이 가면 다시 앉아 쓴 글이고, 고관절이 부러져 누워 계신, 거기다가 치매까지 온 어머니 곁에 앉아 쓴 글이고, 손주를 돌보며 밤이면 컴퓨터에 앉아 쓴 글이다.
이렇게 쓰인 이 소설들은 내게 세상으로부터의 도피였고, 때론 세상과의 소통이었고, 세상을 살아가는 힘이었고, 이 세상에 내가 존재하는 의미다.
가슴 속에 자리하고 있는 세상에 대한 사랑과 아픔이 글자로 토해져 나와 이렇게 한권의 소설집이 되었다. 하나의 작품이 나올 때마다 나는 자식을 낳는 것 같은 고통과 환희를 맛보았다. 지금 그 자식들을 시집보내는 심정으로 조심스럽게 내 소설을 세상에 내 보낸다.

끝으로 내 인생의 모토였던 이미 고인이 되신 아버지와, 나를 최초로 소설가로 인정해 주신 김승옥 선생님, 안쓰럽게 지켜보던 가족들, 설익은 초고를 읽어주던 글지이회원들, 그리고 나를 아는 모든 사람들께 감사드린다.

2013년 가을비 내리는 날 아무도 없는 집에 앉아 쓰다

<작가소개>

 

강명희
김포에서 태어나고 자라 인천인일여고로 유학을 갔다.

작가는 처음 만난 도시인 인천에서 세상에 대한 눈을 뜨게 되었고,

그 영향으로 작품들 중 반 이상이 인천을 배경으로 설정되어 있다.

그 후 숙명여자대학교에서 국문학을 전공해 교사로 재직하다가,

퇴직후 2003년 한라일보 신춘문예에 <벼랑 끝에 선 남자>로 등단했다.

등단 후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하던 작가는,

주요 문예지에 발표한 작품과 신작을 모아 첫 소설집<히말라야 바위취>를 선보였다.

농촌에서 자란 작가의 시선은 <히말라야바위취>처럼

자신이 처한 환경에서 애쓰며 살아가는 사람들에 맞춰 있다.

 

<단편소설의 메카니즘을 완전하게 발휘한 작품이다.

모든 작품들에서 돋보이는 능력 즉,

소재를 현실로 형상화하는 상상력과 치밀한 구성력이 뛰어나다>

                                                          김승옥(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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