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소생하는 생명 / 김옥인

 

 

오늘은 오랜만에 주말을 집에서 지다.


전원에 터를 장만한 다음부터는 웬지 목요일쯤 되면 엉덩이를 들썩대다가 

금요일 오전 일이 마치면 부랴부랴 전원으로 나간다. 


지난 삼주간 내내 주말만 되면 나갔었는데 오늘은 비온다는 구실로 집에서 지내면서 

책상에 앉아 글을 쓰다가 창바깥을 내다보는데,

 

어머나! 일 년 내내 돌보지 않았던 히야신스 화분에서 싹이  솟아 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가만히 기억을 더듬으니 내가 글 쓰는 시간이 거의 늦은 저녁부터 한밤중이라 이렇게 여기에 앉아 한낮에 창밖을 내다보는 때가 별로 없기에  이제서야 화분이 눈에 들어 오는 것이다. 

그동안 환기하면서 보면서도 그냥 화초가 죽은 화분 정도로 생각하고 방치했었다.

 

아니? 작년에 꽃이 피고 진 다음 한 번도 물을 준 적이 없는 데  어찌 이렇게 새순이 나온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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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분의 마른 줄기를 정리해주고 화분 뒤로 세웠던 액자를 옆으로 놓았더니  환하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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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 전공인 친구에게 사진을 찍어 전송하며 어찌 일 년 내내 물 한번 안 주었는데 살아 있어 새순이 나오는 가 물었다.

 

" 물 안 준 것이  더 잘된 것이야. 집안의 화분에서 키우는 알뿌리 식물들은 꽃을 피우고 나면 죽기가 쉽상인데, 물을 안 주어서  오히려 일부러 알뿌리를 보관하듯이 말랐다가 이제 봄이 되어 자신의 자양분으로 다시 순이 나는 것이지.."

 

" 그럼, 내가 물을 또 안 주면, 내년에도 또 순이 나온 다는 것이야?"

" 그건 보장 못 하지.. 그때까지 충분한 자양분이 남아 있을지.. 올해는 전원으로  옮겨줘. 그게 확실히 보장되는 것이야."

 

자양분... 

나는 그동안의 알뿌리 식물에 대한 무지에 부끄러웠다. 

그리고 피어난 꽃만 예뻐하고 이리도 무관심했던 히야신스에 미안하기도.

일 년 이란 세월은 식물의 연장에 있어서 기나 긴 시간이다.

그 일 년을 나의 창가의 알뿌리는 자양분으로 견뎌온 것이다.


나는 과연 얼마마한 자양분을 가지고 있을까?

조금만 아파도 겁부터 내며 긴장을 하는 나에게도  귀한 자양분이 있을 것이다.

미세한 세포부터 온 우주에 존재하는 생명력의 원천인 자양분을 미련하거나  교만한 인간은  깨닫지 못하고 당장 눈 앞에 보여지는 실상에 매달리는 것이다.

 

얼마 있으면 향기를 진동하며 피어날 히얀신스를 상상하니 어느덧 화창한 봄기운이 온 방에 그득하다.

 

돌연한 히야신스의 소생을 발견한 김에 얼마 전에 심은 튜울립을 보러 발콘으로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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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다 비를 맞으면서도 활짝 피어있다.


전원에 난장이 야생튜울립이 피길래  

야생 난장이 튜울립 IMG_0267.jpg

( 3월 28일 부활절 아침에 동알프스 전원에서)


비엔나 집 발콘에는 특수형 겹잎이 피는 것으로 심었었는데 

그동안  주인이 보아주기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오늘 모두 피어났다.

튜울립 꽃은 너무 짧게 핀다.

이번에 심은 특별한 겹튜울립의  소담스러운 모습을 얼마나 보여줄까?


겹튜울립 IMG_0503.jpg

 


겹 튜울립.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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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들아!  내가 너희들 모습 담아줄게.

부담가지지 말고 지금 피어난 그대로 며칠만이라도 지내거라.

너희들로 인하여 인생을 돌아보게 되어서 고맙다.

내 너희들을  더욱 더 예쁘게 보아줄게.

 

도심 화분에서만 자라는 식물들은 어쩐지 애처롭다.

애완 동물과 같다면 과장일까?

그래도 전원이나 화분에서나 살아 있는 동안은 모두 다 아름답고 신비하다.

 

 

2016년 4월 9일 아침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