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이 둘이지만 큰 녀석은 아주 오래 전에 독신선언을 해버리고 

작은 녀석은 뭐가 그리 급한 지 스물 여섯에 짝을 찾아  갔다.

그리고는 웬 욕심이 그리 많은 지 자식을 셋이나 낳았다. 

정확하게 말하지면 욕심이 많은 것이 아니고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다.

 

나는 동네에서 나름 유명인사다. 

내가 모르는 사람들이 내게 인사를 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요즘 세상에 손주 셋을 봐주는 할머니는 천연기념물적인 존재란다.

세 아이를 데리고 놀이터에 가거나 아파트 뜰을 거닐면 사람들이 자꾸 쳐다본다.

하지만 나름 유명인사를 만들어 준 딸과 손주가 어떤 때는 야속하기도 하다.

 

며칠 전 무엇인가 찾기 위해 예전 메일을 뒤적거렸다.

그때 나온 것이 작은 딸 결혼할  때 내가 보낸 편지였다.

오십 대 초반에 장모님 소리를 듣게 해주고

육십 대 초반에 유명인사를 만들어준 기특한 지 야속한 지, 암튼 그런 딸이다.

그 편지를 보니 오십 대 초반의  내 감성이 그런대로 풍부했나 보다.

내가 쓴 글 같지 않고 어디서 베긴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여기에 올려 본다.

 

 

너를 보내며.....(시집 가는 딸에게)

이제 떠나 보내야 할까 보다.

너를 생각하면 깜깜한 어둠도 무섭지 않았고
거친 눈보라 속도 견딜 수 있었다.
내 삶을 송두리째 던지고도 아깝지 않았다.

점점 밋밋한 촌부로 나이 먹어가도
나의 몸 속에서 네가 꽃으로 피어나면
흉하게 굽어진 등 허리도 부끄럽지 않았다.

떠나는 날을 받아 놓으니
가끔은 넉넉한 성찬을 차려 놓고 기다린 적도 있으련만
빈약한 소찬들만 생각나 미안함에 가슴이 먹먹해진다.

내가 어머니에게서 떠나 둥지를 틀고 살아온 것처럼
너 또한 이렇게 나를 떠난다.
해마다 잎을 튀우고 키우고 떨구는 나무처럼
내가 이 세상에 나와 한 일이라곤
결국은 너를 키우고 떨군 것 뿐이구나.

떠나거라.
가서 내가 누리지 못한 기쁨 너는 다 누리고 살거라.
네가 나에게로 와서 행복했다.
너의 기쁨이 내 기쁨인 것을 명심하거라.

행복하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