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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겐 네팔 젊은 친구 둘이 있다. 한 친구는 카투만두에서 우리나라 제천에 와서 일하고 있는 산토스고, 한 친구는 히말라야 산간마을에서 자라 휴양도시 포카라로 나와 포터 일을 하는 묵띠다. 히말라야를 다녀온 지 이년이 되었지만 소통이 잘 안 되는 이 두 젊은이와 어떤 식으로라도 교류를 하고 있다. 혹시 내가 필요한 경우가 생기지 않을까 해서다.

이번에 네팔 지진 참사는 상상을 불허했다. 소식을 듣고 페이스북 친구이기도 한 산토스에게 연락을 해 봤다. ‘별일 없어요. 네팔 큰 일 났어요. 아들도 와아프도 아버지도 모두 무사해요. 집 무너졌어요. 하지만 사람은 별일 없어요. ’

진앙지가 카투만드에서 북서쪽으로 77km 떨어지고, 네팔 최대 휴양도시 포카라에서 동쪽으로 80킬러 떨어진 지점이다. 대부분 계단식으로 농경지를 만들어 근근이 사는 산간마을이다. 포카라에서 버스로 4시간 간다는 묵띠의 고향이 직격탄을 맞은 모양이다. 현재 포터들은 관광객들도 다 끊겨 일이 없어 고향으로 돌아간 상태이고, 송신탑이 무너져 연락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

내가 가끔 들러 포터들의 소식과 히말라야 소식을 듣는 카페에 들어갔더니 한국에서 히말라야를 방문했던 사람들이 포터의 안부를 묻느라 부산하다. 카페 매니저는 그곳에 소속되어 있는 포터 이름을 쭉 올려놓고 모두 다 피해를 입은 상태이니 돕고 싶은 포터에게 도움을 주었으면 좋겠다고 통장 번호를 올려놨다. 사람들은 자기 포터에게 얼마간의 위로금을 전달할 수 있었다. 구호단체에다 성금에 보내는 것보다 며칠 동안 트레킹을 하며 함께 보낸 포터에게 직접 전달하니 더 의미가 있는 것 같았다. 히말라야 소리만 나오면 귀가 번쩍 뜨이는 나도 내 포터에게 얼마간의 성금을 보낼 생각이다.

얼마 전 하정우가 감독을 하고 자신이 직접 출연한 영화 허삼관을 보았다. 중국 소설이 원작이라고 하지만 감독은 1953년 충청도 어느 마을을 배경으로 했다. 돈이 필요할 때마다 자신의 피를 뽑아 팔지 않을 수 없는 찢어지게 가난한 주인공의 얘기를 하정우 특유의 능청스런 연기로 잘 소화 시켜 꽤 볼만한 영화다. 나는 우리의 60여 년 전의 이야기인 국제시장이나 허삼관 같은 영화를 보면 현재 히말라야 산골짝에서 그렇게 살고 있는 네팔 사람들이 먼저 생각났다.

이번처럼 참사를 당하지 않았어도 우리나라 전쟁 직후처럼 사는 사람들이다. 80여년만의 대 참사를 당한 그들의 삶은 상상할 수도 없다. 지금도 신발이 없어 맨발로 다니고 집 지을 재료가 없어 한번 깨진 창문은 그대로 두고 살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다.

카투만두에서 15킬로 떨어진 박타푸르는 중세 유적이 그대로 남아 있는 곳이다. 네팔의 한끼니 음식 값이 우리 돈으로 700원정도 하는데 이곳의 입장료는 무려 14000원이나 한다. 스무 끼의 밥값을 내고 들어가야 하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중세도시의 유적들은 대부분 살나무라는 나무로 만들어졌다. 기둥마다 처마마다 아름다운 문양을 파 넣었다. 그 유적을 만든 네와르족의 뛰어난 예술적인 손재주를 자랑하던 유적이다. 네팔의 우표를 장식하고 있는 대표적인 문화 유적이기도 한 그곳이 이번 지진에 무참히 무너졌다. 유적 대부분 나무로 만들어져 피해가 더 컸을 것이라 짐작한다.

안타깝다. 네팔은 신을 믿는 나라다. 아침에 일어나면 먼저 사원에 나가 참배를 한다. 그러면 이마에 붉은 점을 찍어준다. 그 다음 하루를 시작한다. 거리를 다니는 사람들 중 상당수가 아침에 참배를 다녀온 것을 알 수 있다. 그들이 숭배하는 신은 도대체 어디로 갔단 말인가.

네팔 참사를 지켜보며 네팔 사람들이 어서 빨리 참상을 딛고 일어날 수 있기를 바라며 몇 자 적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