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건 무엇인가?,어떻게 살 것인가?
어떻게 사는 게 최선의 길일까?
인생을 살아가면서 우리 머리속에서 영원히 맴도는 화두이다.
죽음이라는 마침표가 있기에 삶은 유한할 수밖에 없으니...
그래서 우리는 잘 살고싶은 욕망을 본능적으로 가지고 산다.

그런데 사람마다 그 잘산다는 기준이 제각각이므로 삶의 형태는 다양하기만하다.
얼마 전 대통령이  `잡초 제거론`을 얘기하여 화제가 됐는데,
잡초를 야생초로 보면 약초도 될 수 있고
화초를못살게 구는 풀 정도로 보면 독초 뿐이 안되는 것.
나름대로 험난한 인생길 ,화초보다는 잡초(야생초)로 사는 게
비바람도 잘 견디며 시련을 이길 수 있으니,
정녕 인생 사는 것의 정답은 만만히 얘기할 성질이 아니다.

최근 다락같이 값이 오른(과거형이 아니라 현재 진행형으로 써야 할지...)
서울 강남아파트는 그곳에 살지 않는 우리 모두를 변방에 사는 낙오자로 자탄하게  만든다.
돈을 하루아침에 번 사람들은 횡재한 기분이 들겠지만
변방에 사는 나는 마치 돈을 빼앗긴 것 같은 착각에 빠졌다.
그래서 투기와 재태크,스캔들과 로맨스의 정의를 잃어버리는 혼란에 빠진다.

살면서 길을  잃은 것 같아 혼란에 빠질 때
우리를 교통순경처럼 길안내 해주는 게 문학이라고 누군가는 말했다.
` 돈`이 삶의 교통순경이 되면 안된다는 생각이고
`돈`이 그 삶의 교통순경이 되는 인생을 사는 사람들을 보는 것조차 우울할 것 같지만  
강남아파트 불패행진이 계속되는 한  문학이 삶의 교통순경이라는 공식적인 답이 설득력이 있을는지?

프르스트의 시 `숲속에 난 여러갈래의 길`중 취사선택은 역시 각자의 몫.
`책속에 길이 있다` 그 탄탄대로를 걷는 즐거움을 인생 몇樂 중 우선순위에 두며
오늘도 나는 읽을거리를 습관처럼 찾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