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동에서 샤갈전이 열리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벼르던 끝에 화랑을 찾았다.
미술관이 아닌 작은 화랑에서 손쉽게 샤걀전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화랑에 들어선 나는 관계자에게 작품의 진위를 먼저 물었다.
인사동 뒷골목에서 진짜 샤갈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는 행운이 좀처럼 믿어지지 않아서였다.
물론 모든 작품은 샤갈의 싸인이 쓰여진 진품들이었다.

샤갈은 1887년에 태어나 1985년까지 98세를 살다간
20세기 인류에게 가장 풍부한 상상력과 사랑과 향수를 보여준 화가이다.
젊은 날로부터 타계하기 직전까지 육칠 십 년 동안 그려진 많은 작품들의 소재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그의 작품 속에는 예외없이 닭이나 말과 황소 염소같은 짐승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아름다운 한 쌍의 연인이 어디서나 사랑을 하고 있는 포즈로 있다.
또 고향 러시아의 어린 시절에 본 자연 풍경들과 그때 본 써커스하는 모습들과,
강렬한 색채등이 그의 작품에서 흔히 볼 수 소재다.

그가 다룬 소재를 축약해 말하면 고향과 가족의 이미지다.
그의 작품의 원천은 가족에 대한 사랑과 떠나온 고향에 대한 향수다.
육칠 십년을 무의식속에 들어있는 아내에 대한 사랑과
고향 비테프스크에 대한 그리움의 이미지를 그려내고 있다.
그러한 이미지들은 나이가 들어갈수록 더욱 더 원숙한 모습과 풍부한 색채로 만개해간다.

샤갈은 러시아의 한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청년 시절 동유럽에 확산되는 반유대주의에 깊은 충격을 받았다.
그의 작품속에는 무중력 상태로 하늘을 둥둥 떠 다니는 사람들의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이것은 뿌리 내리지 못하고 떠돌아 다니는 유대민족을 형상화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샤갈의 대표작 중의 하나로 '하늘과 연인과 꽃다발'이란 작품이 있다.
푸르스름한 어둠 속에서 붉은 태양이 떠오른다.
하늘에는 붉은 꽃이 박힌 꽃다발이 떠 있고 한 청년이
아름다운 하얀 나부에게 꽃다발을 건네며 구애하고 있다.
하늘과 땅 여기저기에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일에 몰두해 있다.
희망과 행복과 자유로움과 상상력의 극치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것이 그의 나이 93세에 그려진 작품이라고 아무도 생각하지 못할 것이다.
만년까지 왕성한 작품 활동을 보인 샤갈은 부와 명성과 행복을 한 몸에 받은 축복받은 화가였다.

그의 작품을 보고 있으면 꿈꾸는 것같고 행복해진다.
자신의 내면에 있는 영감과 정서를 풍부한 생각과 상상과 꿈꾸기와
동화적 이야기로 그림에 담고 있어서일 것이다.
그런 그의 작품 세계는 말년으로 갈수록 색채의 유희에 탐닉하듯이 풍부해지고 소재도 폭넓어진다.

샤갈은 나이 80세에 뉴욕 메트로 오페라 하우스의 천장벽화를 그리고,
그가 무대 장식과 의상을 맡은<마술피리>를 개막공연하고,
취리히와 쾰른에서 회고전을 갖고, 루부르박물관에서 <성서이야기>를 전시하였다.
이것은 그가 말년에 얼마나 왕성한 활동을 했는지를 한눈에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