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의 햇볕이 강렬하다.
며칠 보지 못했던 해가 구름 사이에서 언듯언듯 비추더니
오후가 되자 말끔히 벗어진 하늘 저편에서 고개를 내민다.
태양은 빛나는 얼굴로 깨끗해진 세상을 마음껏 비추고 있다.

모처럼 맑은 날씨에 밖은 몰려나온 아이들로 가득하다.
바람도 선들선들 불어 온다.
가을이 성큼 왔음을 느낀다.

어느 새 천둥 번개를 동반한 새벽의 줄기찬 빗소리는 생각나지 않는다.
이 맑고 화창한 햇살을 보여주기 위해 하늘은 그렇게 심술을 부렸다 보다.
사람에게 일어나는 일도 마찬가지다.
몰고 갈 때는 한꺼번에 벼랑 끝까지 숨가쁘게 몰고 간다.
끝까지 가서 더 갈 데가 없을 때야만 뒤를 돌아 보게 한다.

어릴 때 아이들 읽어 주던 동화책이 생각난다.
어느 날 유대인 랍비에게 한 농부가 찾아와 말한다.

"랍비님! 저는 부모님과 많은 자식들과 그 좁은 집에서 도저히 살 수 없습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랍비는 농부의 집에서 키우는 동물이 어떤 것이 있는가 묻고
그들 중 닭을 집안에 들여 놓고 함께 살라고 말한다.
며칠 후 농부가 와서 하소연한다.

" 랍비님! 지난 번 보다 더 살기가 힘들어졌습니다. 어찌해야 합니까?"

랍비는 이번에는 나귀를 집안에 들여놓고 살라고 한다.
농부가 찾아올 때마다 랍비는
염소를
돼지를
당나귀를 집안에 들여놓고 함께 살라고 말한다.

어느 날 농부는 이젠 도저히 더 하루도 살 수 없으니 어떻게 하느냐고 말한다.
랍비는 그때서야 말한다.

"집으로 돌아가 동물들을 원래 자리에서 살게 하십시오"

며칠 후 농부가 랍비를 찾아 와 말한다.

"랍비님!  우리 가정은 말할 수 없이 평화로워졌습니다.
이젠 집안이 넉넉해서 누구 하나 불평하지 않습니다. 고맙습니다."

끌까지 가서 뒤돌아 보고 그때가 행복했었다는 것을 안 농부는 그래도 다행이다.

사람들은 때로는 어리석어 자기의 손안에 행복을 쥐고도
그것이 행복인 줄 모를 때가 있다.
자기의 행복은 보이지 않고 남의 작은 행복을 부러워한다.
행복이 멀리 달아났을 때야 비로소 그때가 행복이었다는 것을 아는안다.

부모가 돌아가시고 나서야 부모의 소중함을 알고,
건강을 잃었을 때야 건강의 소중함을 아는 것이 아닌가.
나는 지금 그러한 어리석음을 범하며 살고 있지 않나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