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의 하루를 사람의 일생과 비교한다면 정오의 태양은 사람에게 있어서 몇 살쯤 될까.
인생을 육십 후반으로 본다면 삼십대 초부터 중반.....
구체적인 나이로 들라하면 아마도 서른 넷쯤 될 것이다.
가장 높이 떠서 가장 강한 빛을 내는 정오의 태양처럼 인생에 있어서 가장 빛나고 아름다운 나이 서른 넷.
빛나기에 그 그늘은 더 짙고, 눈부시게 아름답기에 언제나 불안했던 나이 또한 그때가 아니었을까.
따져보진 않았지만 공지영의 작품 속에서  '무소의 뿔'을 외치던 여자들의 나이도 아마 그쯤이었으리라.
인생의 정점-,
서른 넷의 나이에 사람들은 무엇을 하며 어떤 고뇌를 가지고 어떤 모습을 하며 어떻게 살았을까.
그 힘겹고도 아름다웠던 세월의 강을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건너왔을까.

나는 서른 넷 그때 대전에 살았다.
그러나 그 빛나는 나이에 나는 어처구니도 없이 대전극장통으로 은행동으로 동양 백화점 앞으로
눈물을 줄줄 흘리며 떠돌아 다녔다.
남편과의 사이는 그때까지 서걱거리고 있었고,
경제적으로 역시 그때까지 안정이 되지 않아 몹시 힘들었으며,
나에 대한 꿈 또한 그때까지 포기되지 않았고,
아이들은 내 발목을 너무나 강하게 붙들고 있었다.
나는 나 자신만을 위해 남편과 아이들과 또 힘겨운 생활로부터 탈출하고 싶었다.

세상에 대한 자신도 없었다.
야속한 세상은 늘 나만 외로 돌려놓고 저 혼자 저만치 달려가는 것 같았다.
가끔씩 손님처럼 찾아오던 우울이란 놈이 어느 날 부터는 아주 익숙한 이웃처럼 찾아오기 시작했다.  
11층 아파트 베란다에서 세상을 내다보면 그 밖의 세계는 아주 편안해 보였다.
나를 외로 돌려놓은 세상을 내가 버리고 싶기도 했다.
오랜 불면으로 잇몸이 퉁퉁 부어 잇몸 속에 아직 드러나지 않은 사랑이까지 다 빼 버리기도 했다.

하루하루 견디기 힘겨웠던 시절......
그 시절을 구원해 준 한 만남이 있었다.

버스에서 나는 아기 업은 한 사람에게 자리를 양보했다.
정류장에서 내리는데 그도 따라 내렸다.
횡단보도를 건너는데 그도 건너고 아파트를 향하는데 그도 따라 왔다.
그때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이 아파트 사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곁에 있던 아이들이 서로 마주 보고 삐쭉 웃었다.
유치원에서 보았다는 것이다.
알고 보니 그는 내가 살던 인천 그것도 같은 동네에서 살다가
비슷한 시기에 대전의 같은 아파트로 이사를 온 것이다.
아이들이 유치원에서 보았다는 것은 그런 연유였다.
연배도 비슷하고   그 또한 국어선생을 했으며 아이들 나이도 같았다.
그 뿐 아니었다.
똑같이 위로는 언니가 있고 밑으로 남동생이 있는 둘째 딸에다가
그가 그의 남편에 대해 말하면 마치 내가 내 남편을 얘기하는 것 같았다.
그와 나는 서로의 성격이 같을 뿐만 아니라 남편들의 모습까지 똑같았다.

낯선 땅,
그 힘들었던 시절에 그런 친구를 만나다니.....
게다가 우리는 같은 동 1 2호 라인과 3 4호 라인에 나란히 살았다.  

아침 청소가 끝나기가 무섭게 그의 집으로 달려가면
그는 언제나 정갈하게 청소가 된 집안에서 신문을 보면서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커피를 마시고 음악을 들으며 불안해 보이는 앞날과 아이들에 대해 얘기했다.
점심때가 되면 그는 늘 어느 때는 국수를 어느 때는 밥을 해 주었다.
그렇게 붙어살며 일방적으로 점심을 얻어먹곤 했지만 미안하다거나 얄밉다거나 하지 않았다.
한번도 서로로 인해 마음 상했던 적은 없었다.

그러나 만남은 너무 짧았다.
그의 남편 사무실이 서울로 옮겨지는 바람에 이사를 가게 되었다.
만난 지 육 개월 만이었다.
그가 떠나는 날 아파트 단지 내 철쭉이 흐트러지게 피어 있었다.
그 모양이 왜 그렇게 서럽고 보기 싫었는지.
그를 떠나 보내고 종일 울고 앉아 있는 나를
당황한 남편은 금강 어느 물줄기에 있는 음식점에 데리고 가서
무언가를 사 주었던 기억이 난다.

그로부터 몇 년간 그를 생각할 때마다 눈물이 났다.
꼭 사랑의 열병을 앓고 난 뒤끝 같았다.
한 만남을 그렇게 오랫동안 그렇게  많은 눈물을 쏟아내며 그리워했던 적은
아마 처음이었을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그와의 만남은 사람과 사람과의 만남이라기보다
어떤 상황과 상황과의 만남이 아니었나 싶다.
인생의 정오에서 같은 고뇌를 가진
누군가가 절실히 필요했을 때의 만남이라 더욱 절절했으리라.

어제는 그와 만나 강변을 드라이브하고 강이 보이는 음식점에서 점심을 먹고
밀린 이야기를 하고 돌아왔다.
그와는 일 년에 한 번 쯤 그렇게 나들이를 한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그로부터 메일이 와 있었다.
그대는 운 좋은 만남의 월척 같다고 그는 말했다.
나 역시 인생의 가장 빛나고 아름다웠던 시절,
그  정오의 뒤안길에서 아픔을 함께 나눈,
아주 짧았지만 오래도록 지속된,
그런 그와의 만남을 내 인생에 몇 안가는 행운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