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내가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점이 한가지 있다.  
브라질의 공용어는 브라질 전역에서 공통된다는 사실이다.
이게 무슨 소리야?  언뜻 이해가 안 가는 말이다.

미국은 안 그런가 모르겠지만 대부분의 대국에는 한가지 통용어가 그 큰 땅덩이 전체 구석구석에 고루 통용되지 않는다.  
러시아도 카나다도 중국도 한가지 언어로 전국에서 온 국민이 다 서로서로 의사소통을 이룰 수가 없다.  

길다란 역삼각형 모양의 브라질은 남북 종단 길이가 4300 km 에 이르지만 그 최남단에 사는 이서방하고 최북단에 사는 김서방이 만나서 이야기를 주고 받는데 하등 불편이 없다는 말이다.  
사투리도 거의 없는 편이다.  

서로4300 km 나 떨어져 사는 이서방과 김서방은 생전 처음 만났어도  언어로 인한 장애 없이 같이 싸움도 할 수 있고 거래도 할 수가 있다는 말이다.   그들이 구사하는 언어가 똑같기때문이다.

브라질은 발견된 후  500 년 역사에 300 년을 폴투갈의 식민지였으므로  국어가 폴투갈어가  되었다.   남미대륙에서 유일하게 폴투갈어를 쓰는 나라가 바로 브라질이다.   그런 연고로 사람들이 브라질을  ‘남미대륙의 언어적 섬나라’  라고 정의를 내린 것이리라.

지금이야 뭐 그렇지도 않겠지만 우리나라 조그만 한반도에도 지방마다 지방사투리가 있다.  
예전에 전라도 사람과 평안도 사람이던가, 서로 말이 안 통해서 동문서답을 하며 뒤집어지게 웃기던 코메디도 있었다.

무슨 뜻이었는지는 잊어버렸지만 제주도 방언에 “무사기영 고람스까”  라는 말이 있다고  들었던 어릴적 기억이 지금도 새로운데 그 넓은 땅 브라질에서는 그 정도로 안 통하는 언어는 없었다.

내가 4300 km 를 다 답사해 보기라도 했는가  어찌하여 그토록 자신있는 말을 하는가하고 누군가 나에게 묻는다면,
그 기장을 몽땅 다 오르내려보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3500 km 쯤은 갔다 와 봤다고 말할 수 있다.  
그 3500 km 의 구간에서 말이 안 통하는 경우는 한번도 없었다.
아니 있긴 있었지.  그러나 나의 말이 안 통한 이유는  외국인인 내가 미처 습득하지 못한 말이 있었기때문이었지  어린 백성의 언어가 서로 달라서 그랬던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나는 한번 내가 가 본 3500 km  보다 더 먼 북쪽의  오지에서 브라질  최대의 상업도시 상빠울로로 일하러 내려온  촌 아가씨를 점원으로  고용했던 적이 있었다.
  
그애와 나랑은 한번도 말이 안 통해 본 적이 없다.  
그애는 먼먼 남쪽에서 온 손님들한테도 농담도 하고 수다도 떨면서 물건을 곧잘 팔았다.

그 애가 얼만큼 외따른 곳에서 태어난 아이인가하면 한번은 나한테 이렇게 말했다.
“아줌마,  우리 집에 한번 놀러 가세요.  해변이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사람 하나 없고 바닷물이 얼마나 맑은지 몰라요. “
“너희 집은 해변에서 가깝니?”  
이건 내가 물어본 소리.

“아니요.  말 타고 고개를 두개 넘어가야 되요.”
“얘, 그럼 좀 무섭겠다.”  
“무섭긴 뭐가 무서워요.  아무도 없는데……”
“그렇게 아무도 안 오는데야?”
“그럼요.  하루 종일 빨가벗고 있어도 괜찮은 데예요.”

브라질이라는 나라는 지금도 발가벗고 온종일 있어도 되는 그런 해변이 아직도 존재하는 나라이다.

그리고 거기서 혹시 누군가를 만나도 나랏말이 달라 뜻이 통하지 못해서 이루어질 것이 이루어지지 못하는 일은 없을 나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