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나이 든 사람들의 가슴에 더욱 애닯게 찾아오는가 보다.
젊은 날에는 그렇고 그렇게 오고 가던 봄이 점점 더 애상으로 스미는 것은 어인 일인가.
꽃이 피어나고, 그 꽃이 떨어지던 자연현상이 이 봄에 왜 이다지도 새삼스럽게 새로워오는 것인지.

봄이 절절하게 느껴진다는 것은 우리가 청춘에서 점점 멀어간다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 아름답고 푸르던 날들의 기억들은 나이가 들수록 희미해지기는커녕
우리의 가슴속에서 더욱 더 또렷해지는데 말이다.
어느 날 마치 땅속에서 팝콘을 튀겨 내놓은 것처럼 일제히 튀어나와
가지마다 바글거리며  매달려 있는 저 꽃송이는 얼마나 큰 고통으로 피어낸 것일까.
가뭄 속에 유난히 탐스럽게 피어 올린 꽃송이는 겨우내 땅 속에서 인내하며 끌어낸 고통의 덩어리리라.
저들은 알고 있을까.
자신들의 모습이 저토록 화려하고 아름다운 것을.....
피어내는 고통 속에 자신들의 아름다움을 잊고 있는 것이나 아닐지.

내게도 저만치 아름답던 시절이 있었다.
그렇지만 그 젊음의 터널을 지나는 길은 아픔과 상처로 피 흘리다가 도무지 아름다운 줄 모르고 지났다.
지나서 되돌아보니 그 시절이 그리 아름다웠던 것을......
아픔과 상처가 있기에 더욱 더 아름다웠던 것을 그때는 모르고 있었다.

그러나 누가 내게 저 시절로 다시 돌아가라고 한다면 나는 싫다고 하겠다.
젊음의 강을 건너기가 얼마나 불안하고 고통스러웠는지,
저 꽃을 피어내기가 얼마나 힘겨웠는지,
아름다웠기에 아프고, 빛나기에 불안했던 그 시절을 또 다시 견디라면 싫다고 하겠다.

여름 햇볕의 색깔이 하얗고,
가을 햇볕의 빛깔이 붉다면,
봄의 햇살의 빛깔은 노란색이리라.
노오란 개나리 울타리가 쏟아지는 봄볕에 겨워 연두빛으로 변해가고 있다.
봄이 지나고 있는 흔적이다.
봄은 우리가 음미할 틈도 주지 않고 빠르게 와서 빠르게 간다.
봄은 짧아서 언제나 안타깝다.
청춘도 역시 그러하다.
순식간에 와서 그렇게 가 버린다.
가슴앓이를 한 두 번 하다 보면 저 만치 가 있는 것이 우리네 청춘이다.

어제는 짧은 봄밤에 열린 벚꽃잔치에 갔었다.
벚꽃이 터널을 이루고 있는 그 길을 따라 걸었다.
꽃은 자신의 귀한 부분을 마음껏 열고 서서 온갖 것들을 유혹한다.
벌과 나비와 또 인간들이 꽃 그늘 밑으로 몰려든다.
꽃은 부끄러움도 없다.
마음껏 유혹하여 열매를 맺는다.

벚꽃나무 아래 마련된 상설음식점에서 친구들과 동동주를 마셨다.
젊은 날의 아픔과 상처를 함께 한 친구들이기에 아무런 이야기를 해도 편하다.
세월은 아무리 지나가도 꽃다운 나이로 만났던 그들과는 언제나 그 시절에서 머문다.
겉모습들이 조금씩 변했을 뿐 마음은 그때 그대로이다.
그 시절의 열정과 빛남이 사라진 대신 편안함과 여유로움들이 묻어 있다.

살아가는 모습들은 누구나 똑같은가 보다.
저마다 한가지씩 아픔을 끌어안고 채우지 못해 안타까워하며 살아가는 모습들이 똑같다.
나도 그렇고 또 너도 그렇다.
채워지지 않은 부분들이 조금씩 다를 뿐이다.
꽃찬치에 초대하여 바비큐와 동동주로 대접을 하며
새삼스럽게 우리네 삶을 뒤돌아보게 해 준 젊은 날의 친구에게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