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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생일에 그다지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식구 생일날에는 미역국 하나 끓여 먹는 것이 고작이다.
생일을 큰 이벤트로 여기는 요즘 아이들은 몇 달 전부터 생일 선물을 미리 다짐해 둔다.
그래도 자기들 맘에 드는 선물을 받는 일은 드물고 대부분 약간의 현금으로 대신하고 만다.
나는 생일이란 말을 하기가 왜 그런지 참 쑥스럽다.
보잘 것 없이 태어나 살려고 발버둥치는 모습이 부끄럽기도 하다.

생일이 돌아오면 아무도 모르게 그냥 지나가 주었으면 하는 것이 가장 큰 바램이다.
그러다가 식구들 중 누군가가 눈치채면 그때부터는 여러 가지 다짐을 받는다.
케익을 사지 마라,
선물도 사지 말라,
그냥 미역국 끓여 먹을 테니 조용히 보내자.....
아이들이 크니 아무리 당부를 해도 엄마 생일에 신경을 써 준다.  

만일 태어나는 계절을 자기가 정한다면 나는 요즘으로 정할 것이다.
그러니 오늘 생일인 내가 참 다행이다.  

" 나는 참 좋은 계절에 태어났는데도 내 뜻을 한 번도 펴 보지 못하고 사네."
남편에게 말했더니 남편은 아주 사람 좋게 웃으며 말했다.
" 당신같이 사는 것이 가장 좋은 사주라는 것 알아?
남편이 속을 썩이는 것도 아니고
아이들이 말썽 피우는 것도 아니고
당신 주위에서 신경 쓰이게 하는 사람 하나도 없잖아.
당신 같은 사주는 찾아볼래야 찾아 볼 수도 없어."

그런가?
그렇게 믿고 싶다.
그런데도 나는 왜 늘 이렇게 허전하기만 할까.

나는 한 칼럼을 통해 나성에서 활발한 글을 쓰고 있는 동갑내기의 친구를 만났다.
그의 글을 처음 읽은 것이 생일날에 관한 이야기였다.
생일이 다가오면 달력에 동그라미를 쳐 놓고 미리미리 자기 생일을 챙긴다는 행동이
귀엽고 부럽고 몇 번 메일을 주고받으며 사이버 속에서 친구가 되었다.  

생일에 서로 다른 처신 방법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그것은 아마도 태어난 순서에 기인하지 않을까 한다.
나는 위로 언니가 있고  바로 밑으로 남동생이 있고 그 밑으로 여동생이 있다.
언니는 맏딸이고
남동생은 외아들이고
여동생은 막내다.
내게 붙여진 이름은 없었다.
나는 태어나면서부터 이름 없이 사는 방법을  배웠다.
있는 둥 마는 둥 처신하여 부모님에게 마음쓰게 하지 않는 것이 나름대로 터득한 지혜다.  

언젠가 엄마는 말했다.
너로 인해 마음 상했던 적은 한번도 없었다고.....
아무리 힘들어도 좋은 말만 하고 사는 내가 측은한지
지금은 부모로부터 가장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나는 가끔 꿈을 꾼다.
주위사람들이 생일 날 굉장한 이벤트를 준비하고
커다란 사랑을 보여주는 그런 꿈을.....
부담스러워하면서도
그런 꿈을 꾸는 것은 누구나 사랑 받고 싶어하는 본능일 것이다.
나 역시 사랑 받고 싶어하는 속물 근성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하는 보잘것없는 인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