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당뒤의 동네를 지나가면 좋은 숲속길이 있다고 트레킹코스로 환상적이라고
식당에 있던 손님 하나가 알려주기에 점심을 마치고 우리도 가 보았다.
가난한 마을을 가로질러 갔다.
가난하다고 보는 건 나의 시각이고 이 섬에서 태어나 이 섬이 온 우주인 그들에게는 소박하고 편안한 그들의 보금자리이리라.

하얗게 빨아 널어놓은 빨래들, 뜰안에 한가하게 서성거리는 닭들, 그 옆에서 모래장난을 하는 어린아이들,
열린 문으로 들여다 보이는 어두운 방에 조각보를 덮어놓은 정돈된 침대가 보인다.
처마밑 그늘에 매달린 해먹에는 누군가가 누워있다. 낮잠을 자는 모양이다.

민가를 벗어나 얕은 나무들 사이로 난 오솔길을 따라 걸어갔다.
한번 동네를 벗어나니 다시는 사람사는 동네 같은 것은 나타날 것 같지 않았다.
때로는 그늘밑으로 한참 가고 때로는 등뒤로 따가운 햇살을 다 받아야 했다.
이 길은 가도가도 끝이 없을 것 같았다.

돌아갈 뱃시간이 있으므로 마음 내키는대로 마냥 갈 수는 없었다.
거의 한시간을 걸어들어갔다가 다시 그 시간만큼 되돌아 나왔다.
눈부신 바다에는 물이 많이 들어와 있었다.

이 날 수뻬라귀섬에서도 이렇게 동네 한바퀴를 잘 돌았지만
오후에 출발지점 과라께싸바에 돌아와서도 또 그 동네 한바퀴를 더 돌았다.

아침에 뱃전까지 우리를 안내해 준 여관집 주인 아저씨가 뱃턱에서 우측동네를 가리키며
저리로 계속 가면 산 뒤를 돌아서 자기네 여관앞으로 나오게 된다고 말했었다.
우리가 다시 아침의 그 출발지점에 돌아왔을 때 해는 아직 꽤 높았기때문에 나는
미지의 우측 길을 걸어가 산 뒤로 돌아가보고싶어졌다.

일찍 여관에 돌아가봐야 할 일도 없고
지금 꾸리찌바로 돌아가기에는 너무 늦은 시각이니 어차피 오늘 집에 갈 수는 없다.
특히나 내 마음을 끄는 점은 저 길로 가면 좌측으로 바다를 끼고 돌게 되니
잘하면 멋진 석양을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걷기를 좋아하지않는 남편과 약간의 실랑이를 하고 결국 내가 이겨서 우리는 그 길로 들어섰다.
바닥에 돌이 깔린 동네길은 제법 운치가 있고
우리 왼쪽으로 내내 같이 가는 고요한 바다는 어쩐지 현실같지않은 신비감을 주었다.

길은 오르막이었는데 인적도 별로 없는 조용한 동네를 지나 두어구비를 도니까 집들이 드문드문해졌다.
그 다음부터는 계속 산길인데 갈수록 좌우의 숲이 울창해졌다.  
이제는 사람은 물론 집도 만날 수가 없었다.
Y 자로 두 갈래길이 나타났다. 산을 돈다고 했으니 우측이지싶어서 오른쪽으로 들어섰다.
날은 서서히 저물어가고 산자락의 끝은 나타나지않고 우리는 점점 초조해졌다.
막상 석양도 보지 못했다. 길이 점점 바다를 등지고 산으로 들어갔기때문이었다.

우겨서 온 나는 또 남편의 눈치를 보게 되었다.
“되돌아갈까요? 그게 나을까?”
“얼마나 왔는데 돌아가? 그냥 앞으로 가 봐야지.” 퉁명스런 답이 돌아왔다.

가다가 정말 날이 저물었다.  해가 지니까 금세 깜깜해졌다.
어둠속에서 손이 나와 코를 베어도 알 수 없을 정도라고 할까?
하기야 가로등이 없는 산길이니…….

둘이 다 아무 말 하지않고 두려움속에서 부지런히 걷노라니 땀이 났다.
호랑이 나오는 옛날 이야기가 따로 없다싶은 생각이 들었다.
얼만큼 가니까 멀리 반짝이는 불빛이 보였다. “휴우!” 한숨이 절로 나왔다.
‘저기가 어딜까?’ 우리는 불빛을 향하여 더 부지런히 걸었다.

낮에도 많이 걸었으니 다리도 아프고 저 불빛이 우리 여관집동네가 아니면 어쩌나 걱정스러운 마음에 겁도 났다.
한참만에 가까이 다가가서보니 불빛은 바로 우리가 내렸던 버스정거장 앞길의 가로등이었다.

이날 우리가 돌아온 이 동네 한바퀴길은 6 Km 였다고 나중에 여관집 아저씨가 말해주었다.
오늘 우리는 저 동네 6 Km,  이 동네 6 Km  도합 12 Km 를 멋모르고 감행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