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거장 매표원이 권해준 여관은 생각보다는 컸다.
난간달린 복도를 따라 방들이 열개쯤 주욱 늘어선 일자집이다. 숙박비도 매우 싸다.
계단을 올라가 이층 가운데쯤에 방을 정했다. 간소한 침대와 책상하나, 걸상하나에 욕실이 딸려있다.
간결하고 검소한 모양새가 호감이 갔다.

저녁때 동네 구경을 나가보니 10 분만에 다 돌고 더 가 볼데가 없었다.
정말로 아무 것도 없다.
브라질  어느 고장이나 마찬가지로 여기도 동네 한가운데에 성당이 있다.
그리고 그 아래 둥그런 광장에 가게들이 좀 있고 바로 앞이 바다였다.  바다라기보다 호수같았다.
잔잔한 물결이 어둠속에 번들번들했다.
마치 커다란 스케이트장같았다.

저녁을 사먹고 돌아와서 여관주인에게 물었다.
“수뻬라귀에 가려면 어떻게 가야합니까? “
여기 오기전에 좀 알아본 바에 의하면 이 바다 너머 어디쯤에 ‘수뻬라귀’ 라는 이름의 자연보호 국립공원인 섬이 있다는 것이다.
내일 거기나 한번 가보고 오후에 꾸리찌바로 돌아가리라.

키가 자그마하고 온화하게 생긴 주인장은,
“글쎄요. 갈 수가 있을런지........” 하고 심드렁하게 대꾸한다.

이런 반응이 나오자 나는 가보고싶은 의지가 더욱 굳어졌다.
거기라도 못 가보고 돌아가게되면 너무나 억울할 것 같았다.

“왜요? 나는 꼭 가고싶은데……….”
성수기가 아니라 매일 배가 있지 않다는 것이다.
손님이 적어도 4 명이 되어야 배가 뜬다고 한다. 내일 아침에 알아보자고 말한다.

이튿날 아침에 다행히 어린애들을 데리고 온 어느 부부와 동승이 되어 그 섬에 갈 수 있었다.
어제와 달리 날씨도 화창했다.
바다를 워낙 좋아하는 남편은 바다를 보자 오늘 아침으로 돌아가자던 어제의 고집을 슬그머니 접어 넣었다.

쪽배같이 생긴 작은 양철배는 요란한 소리를 내는 소형모터를 달고 기름냄새를 풍기면서 바다위로 달려갔다.
이 곳은 육지로 둘러싸여 있는 만이라 파도가 전혀 없어 바다가 스케이트장처럼 고요했지만
배가 물을 가르며 바다로 나아가자 배 양옆으로 세차게 물결이 일렁이었다.

배 뒤쪽으로 생겨나는 물거품과 물방울이 아침햇살에 비쳐 영롱하게 반짝거렸다.

배가 작고 얕으니까 손을 뻗으면 물에 닿을것 같았다.
우리는 마치 썰매로 얼음판을 미끄러지듯이 바다위를 미끄러져 나갔다.
이 바닷물속에는 돌고래도 살고 있었다.
두번 튀어오르는 돌고래의 돌출도 볼 수 있었다.
뱃사람이 알려주어 돌아보니 시커먼 세모꼴 머리부분이 막 물 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멀리 보이는 녹색의 산들이 여러 겹의 능선을 이루고 있다.
크고 작은 여러개의 섬들을 지나치며 배는 달려간다.
섬들은 모두 짙푸른 녹색이고 더러 오막살이가 몇 보일뿐 어떤 문명의 흔적도 없다.

‘수뻬라귀’ 가 섬이라기에 금세 도착할만한 ‘바로 조오기, 어디쯤’ 되는 줄 알았더니 꽤 빠른 속력의 이 배로도 40분을 갔다.

도착한 곳은 초라한 식당이 몇 늘어서 있는 어촌이었다.
선착장도 없고 바닷가에 그냥 배가 닿았다.
모래위에 박아놓은 쇠난간에다 밧줄을 동여매고 뱃사람도 내렸다.

바로 앞에 있는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식당은 걸을 때마다 삐걱삐걱 마룻장이 소리를 냈고 투박한 나무틀의 네모난 창문은 바다를 향해 온통 다 열려 있었다.
밥을 먹으면서 고개만 들면 새파란 바닷물이 눈에 들어왔다.

따가운 햇살과 불어오는 바람, 파아란 바다와 파아란 하늘.
마치 딴 세상에라도 온듯 현실감이 없어지고 신비스런 느낌이 들었다.
갑자기 타이티 섬에서 그림을 그리며 살다가 거기서 생을 마감했다는 화가 고갱이 생각났다.

햇볕에 눈이부시고 반짝이는 바다에 정신이 흐릿해지는지
나는 오늘이 며칠인지, 여기가 어디인지, 내가 누구인지까지 다 잊어버렸다.
이런 곳에서는 그런 사실들이 도저히 머릿속에 남아있을 수가 없는 모양이다.

한낮의 자연속으로 나는 자연스럽게 녹아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