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이야기


시어머님 살아생전엔 정말 명절 1개월 전쯤부터 시도 때도 없이 명절 생각만 하면 배가 아프거나 머리가 아팠다. 명절이 가까워 올수록 그 빈도는 잦았다. 그러다가 명절이 지나면 언제 그랬더냐싶게 씻은 듯이 나았다.
시어머님은 음식을 만들기 시작하면 끝을 마칠 때까지 절대로 중간 휴식이 없다. 명절 음식을 만들 때에는 오후 서너 시가 될 때까지 하는데 그 때까지 아무것도 먹지 못한다. 그리고 음식을 하면서 간을 본다고 이리저리 먹어보는 것을 못한다. 뱃속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도 그냥 참고 일을 해야 한다. 그리고 음식을 만들 때 꼭 필요한 만큼만 하기 때문에 여분이 없다. 예를 들자면 만두를 빚을 때 가족 수 더하기 손님 수 곱하기 3의 개수만 하신다. 그러니까 명절이 되어도 나와 어머니는 제대로 된 만두 먹어보질 못한다. 맨 나중에 터져서 형체도 없는 만두를 떡국에 풀어서 먹는다. 나는 준비 과정에서부터 먹는 과정까지 그러한 것들이 너무나 싫었다. 그래도 겉으로 그 싫다는 표현을 못했다. 지금 젊은이들 같으면 어림도 없었으련만 우리 세대만 하더라도 귀먹어 삼년 벙어리 삼년 눈멀어 삼년 석삼년은 죽은 듯이 살아야 하는 것이 시집살이라는 것이 불문율처럼 전해져 왔기 때문에 나도 속으로 10년 되기를 기다리며 참고 살았었다. 그런데 시어머님께서 그 10년 되던 해에 돌아가셨기 때문에 결국은 내 소리를 못 내보고 시집살이를 끝내게 되었다.
요즘엔 명절이 즐겁다. 내가 계획 세운대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기 때문에 즐겁다. 세상에 눈치 보지 않고 내 맘대로 하는 일이 이렇게 즐거운 일인 줄은 몰랐다. 나는 명절 2주전쯤부터 장을 보기 시작한다. 미리 봐도 되는 것들을 미리 사는 것이다. 그리하면 복잡함도 덜 수 있지만 가격 면으로도 상당히 이를 본다. 또한 미리미리 준비하기 때문에 마음도 느긋하다. 바로 아랫동서가 바지런하여 나누어서 장을 보기 때문에 장보기도 수월하다.
명절 전날은 두 동서들이 우리 집으로 와서 나와 함께 명절 음식을 만든다. 내 바로 아랫동서는 나보다 네 살 아래이고 막내 동서는 둘째보다 한살 아래이다. 그래서 우린 그냥 친구 같다. 셋이서 부엌에 마주앉아 그동안 쌓였던 박씨네 흉보면서 호호깔깔 웃으며 일한다. 자랑을 흉인체하는 동서들이 귀엽기까지 하다.
사람이 배가 고프거나 일에 치이면 절대로 즐겁지 않다는 것을 아는 나는 때가 되면 일 중단하고 먹는다. 그리고 음식을 풍성하게 장만한다. 누가 혹시나 너무 많은 것 아니냐고 말하면 ‘큰집이니까’ 가 내 대답이다. 집을 나설 때 동서들이나 시누이들 빈손으로 안 보내려면 넉넉히 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나는 어머님처럼 숫자를 세어가면서 음식 장만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푼수 없이 썩어 버릴 정도로 하는 것도 아니다. 그냥 이웃과 즐거운 마음으로 나누어 먹을 수 있을 만큼은 한다.
우린 명절 전날 오후 세시 경이면 일을 무조건 끝낸다. 전을 부치다가 조금 남아도 그냥 일을 접는다. 왜냐하면 명절 전야제를 위해서다. 차례상에 놓을 음식을 모두 챙겨 놓은 후 나머지로 상을 차려서 삼동서가 둘러앉아 술잔을 기울인다. 처음엔 내 동서들이 모두 요조숙녀라서 술을 못한다고 했다. 그런 것을 내가 살금살금 가르쳐서 이젠 셋이서 주거니 받거니가 된다. 원래 박씨 집안은 술을 못하는 집안이라서 술은 우리 여자들 셋이서만 한다. 이것도 어머님 살아생전엔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내가 명절 일을 주관하면서부터 만든 일이다. 술잔이 서너 배 돌아가면 우린 정말 하나가 되어 서로를 위로하며 사랑하며 술이 바닥 날 때까지 짠짠을 한다. 쌓였던 스트레스 다아 풀고 밝은 모습으로 돌아가는 동서들 등 뒤에다 나는 ‘내일 아침에 예쁘게 하고 오라’는 숙제를 한 가지 준다. 나는 동서들의 머리가 나보다 흰 것을 싫어하고 동서들이 명절날 후질그레한 모습인 것을 싫어한다. 혹시나 손님들이 오시더라도 예쁜 동서들을 세워놓고 자랑하고 싶다. 그래서 기준이 형님보다 젊게, 형님보다 예쁘게 이다.
명절 장을 보면서 동서들에게 줄 무엇인가를 한 가지씩 산다. 어른들이지만 내게는 그냥 귀여운 동생들이니까. 양말 한 켤레에도, 티셔츠 한 장에도 어린애처럼 기뻐하는 동서들을 보며 나는 그 몇 배의 기쁨을 맛본다. 아이들에게 세뱃돈을 담을 때에도 내가 제일 많이 넣는다. 왜냐하면 큰엄마니까.
나는 장성하여 돈벌이를 잘하는 조카들이 세배를 해도 세뱃돈을 준다. 만원짜리 새돈을 두둑히 준비해 가지고 있다가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내게 절을 하는 사람이면 무조건 빳빳한 만원짜리 한 장씩을 준다. 대개 장성하여 돈을 벌 때쯤 되면 세뱃돈을 끊고 그냥 세배만 받고들 만다. 나도 어릴 적에만 세뱃돈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나는 그것이 싫다. 아이던 어른이던 세배를 하면 세뱃돈을 챙겨주어야 기분이 좋을 것 같다. 그래서 몇 해 전부터 내가 내 나름대로 규칙을 세웠다. 내게 세배를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일금 만원씩을 주겠다고. 그랬더니 결과가 대 만족이다. 어른이 되어도 세뱃돈은 즐거운 것이다. 사십이 넘은 조카 녀석도 내게 새뱃돈 만원을 받고 어린아이처럼 즐거워하니 말이다. 난 시댁 쪽으로 육남매 중 맏이지만 친정 쪽으론 육남매 중 막내라서 조카도 많고 손자들도 많다. 크나 작으나 따지지 않고 나오는 나의 만원짜리 덕분에 나는 형제들 중 설날 가장 많이 세배를 받는다.
그 세배를 받으려고 설날 아침상을 물리면 동서들에게 잠깐 양해를 구하고 친정엘 다녀온다. 왕복 한 시간 정도 거리에 친정이 있다는 사실도 나를 기쁘게 한다. 내가 명절날 가장 미안한 것은 내가 친정으로 세배를 받으러 갈 때 갈 곳이 없는 두 동서들을 내 집에 남겨둠이다. 그래서 난 행사만 치르고 재빨리 돌아온다.
저녁이 되면 시누이들이 합세한다. 큰시누이는 너무 멀리 살아서 못 오지만 둘째와 막내시누이는 저녁에 온다. 나는 두 동서와 화합하여 재미나게 사는 모습을 시누이들에게 보여준다. 윗사람들이 좋은 본을 보여주어야 아랫사람들이 본을 받는다고 믿기 때문이다. 사실 우린 보여주려고 일부러 꾸미지 않아도 모이면 그냥 재밌다. 특히 둘째가 코미디 이상가게 웃긴다.
밤이 이슥하여 형제들이 돌아가는 시간이 되면 남은 음식들을 챙겨준다. 이것저것 챙겨 싸주면서 받는 즐거움 보다 주는 즐거움이 몇 곱절 더 큰 즐거움이란 것을 늘 깨닫는다. 맛있게 먹어주어서 고맙고 기쁘게 갖고 가서 즐겁다.
명절이 되면 텔레비전에서 명절 증후군이 어쩌구 하면서 방송을 하는데 그런 방송을 보면 나는 옛날 생각이 난다. 나는 앞으로 내 동서들이나 나의 며느리가 명절로 인해 고통받는 그런 명절 만들지 않겠다. 손꼽아 기다리는 명절은 아니더라도 집으로 돌아갈 때 ‘오늘은 정말 즐거웠다’ 라는 생각이 드는 명절이 되게 머리를 잘 쓰겠다. 아이들이나 동서들이 궁금해 하는 이벤트를 한 가지씩 마련하여 깜짝쑈를 할 것이다. 엉뚱한 큰엄마가 요번엔 무슨일을 벌이실까? 궁금증이 간질간질한 명절을 만들 것이다. 그 궁금증 때문에 멀리 여행을 갔다가도 되돌아오는 그런 명절을 만들 것이다.
                                                           (2005. 2.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