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럼
오늘 난 내 가장 오랜 친구의 타계 소식을 들었다.
대부분 같은 고장의 학교로 진학하는 시골 여자 중학교에서
친구는 이화여고를 나는 인일여고로 진학을 했다.
처음 떨어져 지내던 그 여고 시절 내내
우린 공부하다가 심심하면 또 마음이 헤이해 질때마다
편지를 썼다.
친구는 이화여대를 진학했다.
삶이 부조리하다고 생각될 때마다 새로운 세상에 눈이 뜰 때마다
우리는 줄기차게 편지를 썼다.
그때 서로가 받은 편지가 가방으로 가득했다.
결혼 후 내가 소중히 감추어 둔 가방 속에 연애편지가 있을 거라고 상상하던 남편이
내가 외출햇을 때 가방을 열어보고 혼자 웃엇다는 일화가 있다.
그러나 대학 시절 우리는 너무나 다른 길을 걷고 있었다.
친구는 미팅을 한 번도 가 보지 않았고 결혼에 관심도 없었다.
친구의 관심은 유신치하에 인권을 탄압받는 사람들과 도시에서 소외당하고 사는 사람들이었다.
해직기자들이 운영하는 출판사의 교정을 무료로 봐 주고
사당동 산8번지 동네를 찾아다니며 아이를 봐주고
불광동 소년원을 찾아다니며 청소년들을 교화하는데 힘썼다.
방학이면 공장에 취직을 해 우리가 공순이라 부르는 그들의 권익을 위해 투쟁했다.
친구는 그렇게 대학 4년을 보냈다.
나는 김포를 떴고 친구는 아직까지 김포에 살았다.
결혼 후 우리 집에도 왔었고 내가 김포에 가면 친구네 집에 가곤 했다.
어디서 부터 어떻게 잘못되었는지 모른다.
아무도 설명하지 않았고 또 어찌된 일인지 듣고 싶지도 않았다.
친구는 정신 병원에 가 있다고 했고,
어느 날 정신병원에서 나왔다고 했다.
그때 친구를 찾아갔던 적이 있었다.
우린 서로 안타까운 눈빛으로 쳐다 보다가 그냥 왔다.
친구는 여든이 넘은 아버지의 보호하에 살고 있었다.
젊은 날의 나의 우상이었고 방황하던 내 젊은 날의 길잡이였으며
헬만 헷세의 지와 사랑 읽고
서로 다른 길을 가는 나르찌스와 골드문트와 같다고 느꼈던
친구와 나.
너 이거 아니?
내가 알았던 그 모든 사람 중에 네가 가장 아름다웠고
가장 숭고한 영혼의 소유자였고
아름다운 세상을 위해 가장 많이 노력한 사람이란 걸.....
친구야! 잘 가라!
너무나 아름답고 영명하여 오히려 불행했던 친구!
저 세상에서 조금은 아둔하고 조금은 덜 예쁘게 태어나렴.
그럼 너를 통하여 알았던 헷세와 지고이네르바이젠과 까뮤와 드볼작을
내가 너에게 가르쳐 주마.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고 닮고 싶어했던 친구의 명복을 빈다.
대부분 같은 고장의 학교로 진학하는 시골 여자 중학교에서
친구는 이화여고를 나는 인일여고로 진학을 했다.
처음 떨어져 지내던 그 여고 시절 내내
우린 공부하다가 심심하면 또 마음이 헤이해 질때마다
편지를 썼다.
친구는 이화여대를 진학했다.
삶이 부조리하다고 생각될 때마다 새로운 세상에 눈이 뜰 때마다
우리는 줄기차게 편지를 썼다.
그때 서로가 받은 편지가 가방으로 가득했다.
결혼 후 내가 소중히 감추어 둔 가방 속에 연애편지가 있을 거라고 상상하던 남편이
내가 외출햇을 때 가방을 열어보고 혼자 웃엇다는 일화가 있다.
그러나 대학 시절 우리는 너무나 다른 길을 걷고 있었다.
친구는 미팅을 한 번도 가 보지 않았고 결혼에 관심도 없었다.
친구의 관심은 유신치하에 인권을 탄압받는 사람들과 도시에서 소외당하고 사는 사람들이었다.
해직기자들이 운영하는 출판사의 교정을 무료로 봐 주고
사당동 산8번지 동네를 찾아다니며 아이를 봐주고
불광동 소년원을 찾아다니며 청소년들을 교화하는데 힘썼다.
방학이면 공장에 취직을 해 우리가 공순이라 부르는 그들의 권익을 위해 투쟁했다.
친구는 그렇게 대학 4년을 보냈다.
나는 김포를 떴고 친구는 아직까지 김포에 살았다.
결혼 후 우리 집에도 왔었고 내가 김포에 가면 친구네 집에 가곤 했다.
어디서 부터 어떻게 잘못되었는지 모른다.
아무도 설명하지 않았고 또 어찌된 일인지 듣고 싶지도 않았다.
친구는 정신 병원에 가 있다고 했고,
어느 날 정신병원에서 나왔다고 했다.
그때 친구를 찾아갔던 적이 있었다.
우린 서로 안타까운 눈빛으로 쳐다 보다가 그냥 왔다.
친구는 여든이 넘은 아버지의 보호하에 살고 있었다.
젊은 날의 나의 우상이었고 방황하던 내 젊은 날의 길잡이였으며
헬만 헷세의 지와 사랑 읽고
서로 다른 길을 가는 나르찌스와 골드문트와 같다고 느꼈던
친구와 나.
너 이거 아니?
내가 알았던 그 모든 사람 중에 네가 가장 아름다웠고
가장 숭고한 영혼의 소유자였고
아름다운 세상을 위해 가장 많이 노력한 사람이란 걸.....
친구야! 잘 가라!
너무나 아름답고 영명하여 오히려 불행했던 친구!
저 세상에서 조금은 아둔하고 조금은 덜 예쁘게 태어나렴.
그럼 너를 통하여 알았던 헷세와 지고이네르바이젠과 까뮤와 드볼작을
내가 너에게 가르쳐 주마.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고 닮고 싶어했던 친구의 명복을 빈다.
2005.12.11 19:19:28 (*.183.209.230)
가슴 아프네요
삶이란........!
물이 너무 맑아도 먹이가없고
물이 너무 깊어도 먹이가없는
탄천 철새 도래지 인것같아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삶이란........!
물이 너무 맑아도 먹이가없고
물이 너무 깊어도 먹이가없는
탄천 철새 도래지 인것같아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2005.12.12 00:37:22 (*.104.118.184)
김순호, 지명제 선배님!
지금 마악 문상을 다녀오는 길입니다.
올 해 3월 아버지를 보낸 그 병원 그 영안실에서
오늘 천사처럼 선하고 순수한 내 가장 오랜 친구를 보냈습니다.
어찌 삶이 이리도 고약한가요?
어찌 이리 부조리한가요?
" 성인아! 너의 언니는 우리 모두 너무나 부러워 해서
그래서 우리 모두가 너무 질투를 해서 이리 먼저 세상을 떠난 것 같구나. 미안하다."
마지막까지 병실을 지킨 동생을 붙들고 한 말입니다.
28세에 멈춘 친구의 영정에는 28세 때의 고운 모습의 사진이 걸려 있었습니다.
30년 전의 친구들이 모두 모여 고인의 명복을 빌며 회상했습니다.
모두 다 세라복에 양갈래 머리를 땋고
차창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 이화여고 시절의 고인의 모습을 상기했습니다.
나를 낳아 주신 분이 부모라면 나를 키워 준 이는 그 친구라고
지금도 감히 말할 수 있는 친구였지요.
결혼도 하지 않고
30년 동안 세상과 담을 쌓고 살았는데도
그토록 많은 친구들이 찾아와 슬퍼 한 것은
천사처럼 맑고 고운 친구의 심성 때문이었어요.
술을 한 잔 했습니다.
참으로 슬픈 밤입니다
지금 마악 문상을 다녀오는 길입니다.
올 해 3월 아버지를 보낸 그 병원 그 영안실에서
오늘 천사처럼 선하고 순수한 내 가장 오랜 친구를 보냈습니다.
어찌 삶이 이리도 고약한가요?
어찌 이리 부조리한가요?
" 성인아! 너의 언니는 우리 모두 너무나 부러워 해서
그래서 우리 모두가 너무 질투를 해서 이리 먼저 세상을 떠난 것 같구나. 미안하다."
마지막까지 병실을 지킨 동생을 붙들고 한 말입니다.
28세에 멈춘 친구의 영정에는 28세 때의 고운 모습의 사진이 걸려 있었습니다.
30년 전의 친구들이 모두 모여 고인의 명복을 빌며 회상했습니다.
모두 다 세라복에 양갈래 머리를 땋고
차창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 이화여고 시절의 고인의 모습을 상기했습니다.
나를 낳아 주신 분이 부모라면 나를 키워 준 이는 그 친구라고
지금도 감히 말할 수 있는 친구였지요.
결혼도 하지 않고
30년 동안 세상과 담을 쌓고 살았는데도
그토록 많은 친구들이 찾아와 슬퍼 한 것은
천사처럼 맑고 고운 친구의 심성 때문이었어요.
술을 한 잔 했습니다.
참으로 슬픈 밤입니다
2005.12.13 00:22:21 (*.161.68.205)
명희 님~
참 마음이 아픈 일이군요.
살아가면서 이별이 없다면, 슬픈 일이 없다면 얼마나 좋을 까요.
그러나 죽음이란, 정해진 하늘의 섭리....
너무 아름다와, 빨리 간 것이 못내 아쉽습니다.
나 또한 그런 친구가 있었지요.
우리는 초록빛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마산여중에서,
같은 반을 한 번도 한 적이 없음에도 친한 친구가 되었답니다.
여중을 졸업 할 무렵, 우리 집이 인천으로 이사를 가자
그는 내가 없는 마산이 싫다고, 부산으로, 경남여고를 들어갔죠.
많은 편지를 주고 받았습니다.
헷세, 싸르트르, 베토벤 등 우리가 참으로 좋아하던 것들이었죠.
재수 끝에 대학에 들어가고, 어쩌다 우리는 헤어졌습니다.
내가 결혼 하고, 그는 한 달 후에 결혼했고, 그는 3년도 채 살지 못하고 이혼을 했답니다.
21년후, 어느 날 만났습니다.
이혼 후, 갖은 고생을 하다가
학교 측의 복학생 구제정책에 의해, 못다한 공부를 마칠 수가 있었고
지금은 그 대학의 교수가 되었습니다.
한 길로 꾸준히 걸어, 그 분야의 한 자리 매김을 하는 중요한 전공자가 되었지요.
저는 가끔 그 친구 생각을 합니다.
지금 우리는, 서로 몹시 다른 길을 걷고 있지만
언젠가 제가 한국에 가면,
그를 만나 따뜻하고 가벼운 코트를 사주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명희 님! 슬픔을 이기고, 새 힘을 내셔요.
참 마음이 아픈 일이군요.
살아가면서 이별이 없다면, 슬픈 일이 없다면 얼마나 좋을 까요.
그러나 죽음이란, 정해진 하늘의 섭리....
너무 아름다와, 빨리 간 것이 못내 아쉽습니다.
나 또한 그런 친구가 있었지요.
우리는 초록빛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마산여중에서,
같은 반을 한 번도 한 적이 없음에도 친한 친구가 되었답니다.
여중을 졸업 할 무렵, 우리 집이 인천으로 이사를 가자
그는 내가 없는 마산이 싫다고, 부산으로, 경남여고를 들어갔죠.
많은 편지를 주고 받았습니다.
헷세, 싸르트르, 베토벤 등 우리가 참으로 좋아하던 것들이었죠.
재수 끝에 대학에 들어가고, 어쩌다 우리는 헤어졌습니다.
내가 결혼 하고, 그는 한 달 후에 결혼했고, 그는 3년도 채 살지 못하고 이혼을 했답니다.
21년후, 어느 날 만났습니다.
이혼 후, 갖은 고생을 하다가
학교 측의 복학생 구제정책에 의해, 못다한 공부를 마칠 수가 있었고
지금은 그 대학의 교수가 되었습니다.
한 길로 꾸준히 걸어, 그 분야의 한 자리 매김을 하는 중요한 전공자가 되었지요.
저는 가끔 그 친구 생각을 합니다.
지금 우리는, 서로 몹시 다른 길을 걷고 있지만
언젠가 제가 한국에 가면,
그를 만나 따뜻하고 가벼운 코트를 사주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명희 님! 슬픔을 이기고, 새 힘을 내셔요.
2005.12.13 00:34:44 (*.161.68.205)
순호야~
힘 내라.
곧곧에서, 네 슬픔의 몸짓을 보고있다.
살다보면, 슬픈 일이 어찌 그 뿐이겠니....
옆에 있다면, 안아주고 같이 울어주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힘 내라.
곧곧에서, 네 슬픔의 몸짓을 보고있다.
살다보면, 슬픈 일이 어찌 그 뿐이겠니....
옆에 있다면, 안아주고 같이 울어주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2005.12.13 16:57:40 (*.219.62.34)
수인 선배님!
따뜻한 위로의 말씀 감사합니다.
타국에 계신가 보죠?
저는 한 길을 꾸준히 간 분을 보면
부럽기도 하고 존경합니다.
저도 남편도 그렇지 못해서요.
요즘 예전 생각들을 하니
꼭 30년 전으로 돌아간 기분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하루종일 그 시절 노래를 부르고 들었습니다.
송창식의 <꽃 새 눈물>을 인터넷을 뒤져 듣기도 했습니다.
꽃 새 눈물이란 노래 아시나요?
따뜻한 위로의 말씀 감사합니다.
타국에 계신가 보죠?
저는 한 길을 꾸준히 간 분을 보면
부럽기도 하고 존경합니다.
저도 남편도 그렇지 못해서요.
요즘 예전 생각들을 하니
꼭 30년 전으로 돌아간 기분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하루종일 그 시절 노래를 부르고 들었습니다.
송창식의 <꽃 새 눈물>을 인터넷을 뒤져 듣기도 했습니다.
꽃 새 눈물이란 노래 아시나요?
2005.12.18 16:07:23 (*.154.44.122)
한 번도 같은 반을 하지 않았지만
너의 글을 통해서 오히려 같은 인일임을 느꼈던 너.
우리 모두는 각자 젊은 시간속에
동경이던 닮고 싶은 누구든을 간직하고 있는게 아닐까!
그 대상이 각별한 친구일때는 더 특별한 기억으로 다가오겠지.
역시 홀로 인도네시아 선교사로 떠난 초등학교 친구가 있단다.
그 친구의 삶을 새삼 떠올리면서
네 친구의 명복을 빌었다.
(정말 그 시절에 모두가 할 수 없었지만
감히 그런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특별한 감정들을 우린 잘 알고 있지)
도스트예프스키, 헷세,까뮤,모짜르트"그 어딘가의 구비에서 우리가 만났듯이(채광석)",---
한때 그토록 사무쳤던 이름들을 다시 떠올려본다.
그 어딘가의 구비에서 처럼 가끔 이렇게 널 만나는구나.
너의 글을 통해서 오히려 같은 인일임을 느꼈던 너.
우리 모두는 각자 젊은 시간속에
동경이던 닮고 싶은 누구든을 간직하고 있는게 아닐까!
그 대상이 각별한 친구일때는 더 특별한 기억으로 다가오겠지.
역시 홀로 인도네시아 선교사로 떠난 초등학교 친구가 있단다.
그 친구의 삶을 새삼 떠올리면서
네 친구의 명복을 빌었다.
(정말 그 시절에 모두가 할 수 없었지만
감히 그런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특별한 감정들을 우린 잘 알고 있지)
도스트예프스키, 헷세,까뮤,모짜르트"그 어딘가의 구비에서 우리가 만났듯이(채광석)",---
한때 그토록 사무쳤던 이름들을 다시 떠올려본다.
그 어딘가의 구비에서 처럼 가끔 이렇게 널 만나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