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돈 댁에서 추석 때 햅쌀 한포,한우갈비,참조기,
당신 솜씨의 송편과 약식을 많이도  보내셨다.
난 복숭아 한 박스로 끝냈는데 죄송하긴 하지마는
"요것 이 웬 떡 이냐?" 하고
신나게 받아설랑 냉장고에 넣으면서 보니 햅쌀 한포가
현관 마루 끝에 덜렁 놓여 있다.
쌀 포대를 주~욱 당겨 거실 쪽으로 끌어 놓으니
가슴이 찌~잉 하고 눈이 갑자기 섬벅 해 온다....
그 어떤 선물 보다... 고기 보다 ....참조기 보다....
떡 보다... 과일 보다.... 고마운 건 쌀 한 포대 였다.

20여년 전 울 딸 어렸을 때....
새 삶을 시작하려 대출 받아 작은 상가를 사서 일을
시작하려 하니 수중에 남는 것이 없었다.
처음 오픈 이라 들어 가는 것은 많고 줄일 수 있는 건 더 이상 없었다.
쌀 1말 사다놓고 오이에 소금 대충 뿌려 오이지를 만들어서
밥해서 오이지만 먹으니 열흘 만에 쌀이 바닥 났다.
넉넉친 못 했지만 쌀이 바닥 난 건 머릿 털 나곤 첨 보았다.
나 혼자라면 몇끼인 들 못 굶으랴?
그러나 보기만 해도 닳을 까봐 아까운 가엾은 내딸을
굶길 수는 없쟎은가?
난 자신 있었다.
내 능력으로 충분히 감당 할 수 있을 꺼라고.....
부모형제 모두 성공해 쭉쭉 빵빵 잘 나가지만
차마 자존심상 그들에게 손 벌릴 순 없었다.
울면 누가 밥을 주랴?
울면 누가 떡을 주랴?
내 새끼가 굶을 판에 뵈는 것이 없었다.
눈에 핏발 세우면서 상가 아래 쌀집에서 외상으로
쌀 사다가 이 악물고 밥을 해먹었다.
각고의 노력 끝에 차차 자리잡혀
빚도 갚고, 집도사고, 차도 샀지만
그 당시에 쌀 포대의 빈 바닥은 내가 더 늙어 사리 분별을 못해도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만큼 참담함...!  그 자체 였었다.

쌀 한 포대 거실에 놓고 사위와 옛날 얘기하며 웃었다.
(아니! 가슴으론 울었다....)
지금 이야 쌀 한 포대 면 몇달 가고 그다지 넉넉친 않지만
그때 생각하믄 지금이 얼마나 감사한지.....
새 쌀 포대 뜯을 적 마다 항상 기도 하는 마음이다.

난 오늘도 거실에 삐쭈룩~히 서있는 (ㅇㅇ간척지 쌀) 상표를 보곤
그 동네 간척지 논이 모두 내 것인 양 뿌듯하다.
거실의 쌀 한 포대는 내 마음이 가라앉을 때 까지 놓여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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