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나는 <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란 요상한 제목의 소설을 한편 읽었다.
제목은 요상하지만 내용은 치열하고 순수했다.
엄마는 병으로 누워 있고 무능한 아버지는 집안을 감당을 할 수 없어 가출을 하고 실업계 고교생인 <나>가 아르바이트를 하며 집안을 돌보는 이야기다.
다 읽고 나이 찔끔 눈물이 났다.
열심히 살아가는 한 소년의 이야기가 감동을 준 것이다.
작가가 누군가 보았다.
박민규. 68년생.
그래서 찾아 읽은 것이 삼미슈퍼스타의 마지막 팬클럽이다.
내가 인천에 있는 학교를 나온 사람이고 한때 삼미슈퍼스타즈의 팬이어서 이 책을 손에 든 것은 결코 아니었다.

지금도 프로야구 원년을 기억한다.
전두환 시절, 정치에서 국민들의 관심을 야구로 돌리기 위해 창단 되었다고 알고 있다.
그때 나는 막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 화장실 갈 틈도 없이 정신없이 살았다.
프로야구가 개막되었지만 그것이 내 인생에 전혀 변화를 주지 않았다는 얘기다.

이 소설은 오로지 삼미슈퍼스타가 꿈이고 희망이고 신앙이였던 12살 아이의 일종에 성장 소설이다.
생각해 보라.
<오늘도 지고, 내일도 지고. 2연전을 했으니 하루 푹 쉬고, 그 다음 날도 지고, 일관성 있게 용의주도하게 지고, 아니 거의 지고... >한 성적의 삼미팀의 팬클럽이였던 소년이 질 때마다 느꼈던 좌절과 절망을..
오죽하면 북한에서 쳐 들어왔으면 좋겠다고 말했겠는가.
오죽하면 죽고 싶은 생각을 했겠는가.

그러면서 소년은 소속이 인간의 삶을 바꾼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오로지 인천에 산다는 이유로 그 큰 좌절과 절망을 맛본 아이는 유리한 소속에 들어가기 위해 공부를 하고, 일류대에 들어가고, 졸업을 하고, 일류회사에 취직을 하고, 예쁘고 돈 많은 아내를 얻고 앞으로 달리며 세상을 살았다.
비주류에서 주류가 된 것이다.
아마추어에서 프로가 된 것이다.
그 근간에는 삼미슈퍼스타의 패배의 교훈이 있었다.
100미터 달리기를 하듯이 살 던 어느 날 아내가 이혼을 요구하고, 회사에서는 사직 당하고 그러면서 삶이 무엇인가를 깨닫는다.
그때서야 삼미슈퍼스타의 경기가 아름다웠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 소설은 재미있다.
개그박스보다 더 재미있다.
<김구라>의 방송처럼 서민적인 익살과 해학과 페이소스가 들어있다.
그러면서 인생을 가르친다.
결국 허리가 부러져 못 일어날 만큼 노력하는 프로의 세계와 평범하고 아름답고 살아볼만한 아마츄어의 삶을 우승팀과 최하위 삼미팀을 대비해 말해준다.
그저 달리기만 하기에는 우리의 삶이 너무나 아름답다는 것을 말한다.
필요 이상으로 바쁘고 필요 이상으로 일하고 필요 이상으로 크고 필요 이상으로 모으고 필요 이상으로 몰려 있는 세계에 인생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 모든 것을 소년은 아니 어른이 된 소년은 삼미슈퍼스타의 교훈에서 얻은 것이다.

17년이 지난 후 삼미 슈퍼스타의 명장면 하일라이트를 보면서 주인공은 삼미 야구는 정말로 아름다운 것이었구나 생각한다.
프로의 세계에서는 볼 수 없는 환상의 플레이들에 매혹된다. 야구는 저렇게 하는 것이다.
보기 처럼 쉽지 않을 것야. 컬트다 컬트다.소리친다.

이 소설의 배경은 물론 인천이다.
당연히 인천여중과 서인천여중도 등장한다.
뺑뺑이 돌려 명문 중학교에 입학하고 엘리트 교복집에서 교복을 맞추는 이야기도 나온다.
전철 통학생들, 신포사진관도 나온다. 연안부두 공설운동장 .....
정말 낯익은 장소들이다.

이 책을 보고 앉아 있는 내게 딸아이가 말한다.

"지하철 안에서 보는데 얼마나 재미있는지 키득거리며 막 웃으며 봤어."

"그러니? 난 눈물을 찔끔거리기도 하고 웃기도 하며 보았지."

"삼미 야구에 대해 전혀 모르고 인천에 살고 있지 않은 내가 봐도 이렇게 재미있는데, 한때 삼미 팬이었고 인천에 살았다면 얼마나 더 재밌을까?"

삼미 팬이었고 인천에 살았던 나는 정말 재미있다.
만일 이 책을 보고 재미 없다는 사람이 있다면 책값을 환불해 줄 수 있다고 큰 소리칠 정도로....

작가 박민규.
지금은 떠오르는 혜성과 같은 존재지만 내년에는 아마도 문학상 한 두개는 받을 작가라고 확신한다.
좋은 작가 좋은 소설을 만나 기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