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럼
가을이 시작되면서부터 언제나 집을 떠나 본다.
미리 벌써부터 준비해놓고 기대감에 설레이다가 떠날때도,
아니면 갑짜기 홀연히도...
무엇인가를 찾아나서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그동안의 내삶에 있어서 얼마나 한곳에 안주해왔던가 뒤돌아 보니
10대를 인천에서, 대학생활부터 서울에서,
결혼후 거의 서울에 그리고 남편직장따라 잠깐지방에도,
그러다가 비엔나 온후로는 20여년을 이 도시에 머무르고 있다.
그러나, 왠지 아무래도 타향기분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는데,
그래서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길을 떠나게 되는 것인지도...
며칠 돌다보면 다시 집이라는 곳이 그리워진다.
내가 아무의 구속도 없이 다시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며 집으로 돌아 오게된다.
돌아와서는,
며칠동안 찾았던 곳들이 다시 아스레히 떠오르며 육체는 내집에 머무르나
정신은 몇날 며칠을 그곳을 다시 헤메이게 된다.
항상 반복이다.
그러나 이것은 나의 삶에 무엇인가를 채워주는 것이니 아마도 또다시 나그네길을 떠날것이다.
그런데,매년 이맘때가 되면 병이난다.그래서 집에 머무른다.
올해도 어김없이 병이라는 이름의 그친구는 20일에 찾아 와주었다 아직 내몸에 머무른다.
내가 저밑바닥까지 쓰러져 허우적거리다가 새로운 힘이 솟기시작하면 스르르 사라지는 병이라는 이름의 친구.
내가 사는 동네는 작곡가 Franz Schubert의 생가가 있는곳이다.
생가는 내가 사는집과 5집정도 떨어진 근처에 있다.매일 지나는 길에....
바로 그가 죽은 날이 1828년 11월 19일이었다. 거의 해마다 사후 기념음악회를 갔었는데,
올해는 어쩌다가 그냥 지나갔다. 그러더니 병이 찾아온 것이다.
아픈 동안 내내 슈베르트의 음악을 들으면서 그를 느낀다.
김옥인 후배, 모처럼 음악 감상 잘 했어요.
창 두 개 열고 댓글 쓰면서요.
많이 아파요? 조금 나아졌겠지요?
매년 이맘 때가 되면 병이 난다는 말이 마음 아파요.
꼭 그랬던 사람이 있었거든요.
가을 깊어지면서 마음이 먼저 아프고
그래서 몸이 아파진 걸까봐 그래요.
내가 지금 '오버'하고 있지요? ^ ^
빨리 다 낫기 바래요.
몸이 아프면 마음도 나약해지지요
천장 바라보고 자리에 누워있으면
천장에 그려지는 갖가지 상념들까지 더해지면서
스스로의 삶이 흔들거릴때가
몸이 아플때이겠죠.
그래서 글은
더욱 진솔하고 선배님의 내면이 스며나옴을 느낍니다.
몸 속의 독소가 빠져나가면서
다소는 휘청하지만
가쁜해진 몸과 마음으로
새로운 에너지로 충전하실 수있을 거예요.
저는 봄만 되면 한차례 방문하는 환절기 계절병이 있죠.
근데 웃기는 것은
누워서 천장을 보면
천장이 모니터가 되어 왔다갔다 하는 겁니다.
빨리 회복하셔서
선배님만이 가지고 계신 세계를 많이 올려주세요
남이 가지지 않은 자신만의 고유한 표현 쟝르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축복이라 여겨요
몇날 며칠을 수면제 먹은것 처럼 자고 자고 또 자고 정신놓고 잤어요.
이제는 너무 침대에 누워있어서인지 온몸이 결려서 도저히 누워있을 수가 없어 새벽4시부터 깨었어요.
오늘부터는 정신을 도잡을 수 있을거 같아요^^
사실 아프기 전에 너무 잠을 조금씩 잤었거든요.
피곤했던 육체가 고집스러운 내영혼을 꼼짝못하게 만들었었지요 .
언제나 중용이 어렵지요...
종교적으로 일년을 마감하는 11월을 위령성월이라 하는데,
얼마 남지않은 며칠을 감사함으로 보내려고요
영희씨의 천장 모니터 얘기가 웃음이상의 것으로 제맘을 찡하게 했어요.
건강하게 즐겁게 지내요~
Franz Schubert 생가
제가 이동네로 이사온 것이 3년전이에요.
그전에는 일부러 찾아오던 슈베르트 생가를 이사온 후에는 하루에도 몇번씩 지나치지요.
2008년1월 31일 슈베르트 211년 맞이하는 생일날에는 생일케이크를 준비해서 찾았었어요 ㅎㅎㅎ
관리인들과는 전에부터 안면이 있었지만
제가 이웃사촌으로 Franz생일 기념으로 왔다고 전하니까 모두들 기뻐하더라고요 ㅋㅋ
박물관 입구 숍탁자위에 마련된 생일케잌에는
"Alles Liebe und Gute"... "모든사랑과 선함" 이라고 적혀있는 것이 배경사진과 어울리는듯하면서도 웃음을 자아냈었죠.
요 케이크 위의 오른쪽 엽서사진이 슈베르트가 1797년 1월 31일에 태어난 이집의 부엌이에요.
이 생가 박물관에서 첫번째 방문하는 곳이지요.
거의 평생을 이박물관에서 종사하는 아주머니는 사진찍기 수줍어 얼굴을 숙이고 접시를 챙기고
그날 일이 마칠쯤에 슈베르트 생일 기념으로 동료직원과 마실 준비해놓았던 샴페인을 내 놓았어요 ^^.
죽은자의 생일을 기억하는 몇백년후의 동서양을 초월한 이웃사촌들 ㅎㅎㅎ
기분 좋은 관리아저씨의 허가아래 실내 촬영을 하는 기회를 받았었기도 ^^
슈베르트 초상화중에 제일 잘생긴 모습이라고 평가받는 그림이 전면 중앙벽에,
가운데에는 방문객이 청취할수 있는 슈베르트 대표곡이,
대문 사진에 올렸던 슈베르트의 안경이 유리관안에 보관 되고....
사진 못찍게 하는것이 임무인 관리인 아저씨가
과잉친절^^로 방문객 독사진도 찍어주는 행운의 아이러니도 받었지요ㅎㅎ
생가에서 공개되는 전체 방들을 순서대로 보여드릴께요~
사진설명:
1.첫번째 방벽에 붙어있는 슈베르트에 대한 설명
2.슈베르트가 태어난 부엌의 아궁이.. 그날 누군가가 헌화한 하얀장미꽃
3.두번째 방벽에 붙여있는 여러 작가들이 그린 여러모습의 슈베르트 초상화들...그리고 이방에 가슴까지 나타난 석고 흉상도 있음
4.세번째 방에는 방문객을 위한 헤드폰이 준비되어 있어서 듣고 싶은 번호를 눌러 선곡해서 들을 수있고 ,
또한 성적표,편지등 많은 기록품들이 상비되어있는방
5.중앙에 슈베르트시대의 피아노가 있고 벽마다 기록적 그림이 슈베르트의 실내곡연주하는 모습을 볼 수있으며
당대의 오스트리아인들의 문화추구의 양상을 느낄 수 있음.
6.슈베르트의 흔적을 볼수 있는 그시대의 건물과 현재의 위치를 표시한 그림과 설명
7.슈베르트가 소유했었던 기타."밤과 꿈"이라는 기타곡을 이기타로 쳤었겠지 생각하며 유리속의 악기를 보게 되었었음.
8.마지막 방에는 슈베르트의 마지막곡 "겨울나그네" 초판 표지와 사망한 집의 내부그림과 부고장이 전시되며,
그가 여행했던 곳과 친구들과의 그림들을 볼 수 있음.
9. 밖으로 나오면 나무난간을 통해 층계쪽 건물로 들어 올 수있음. 그 시대의 건축양식으로 여름에는 난간에 꽃을 가꿈.
이웃사촌인 저의 집도 궁금하죠? ㅎㅎㅎ
요 연초록집의 4층 오른쪽 유리창이 바깥으로 나온집이 바로 제가 사는곳이에요.
가상자리집이라 여러 방면이 보이고요 왼쪽편 창문에서 슈베르트 생가길이 보이지요.
고기 볼록창문있는 곳은 거실이구요,
저의 서재, 즉 지금 제가 글쓰는 곳은 고 옆바로 왼쪽창가이고요..실감 확?
슈베르트 생가쪽에서 본다면,
시가전차가 다니는 큰길 건너서 바로보이는 길의 왼쪽으로 다섯번째 집이에요 ㅎㅎ
우연으로 제가 이집에 사는 것 같아요?
ㅎㅎㅎ 우연+집요+운명의 산물이에요... 기회가 되면 얘기할께요^^
일단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요런계단이
우리집은 100여년이 넘는 아파트인데 아직 승강기가 없어서
요런 달팽이 계단으로 4층까지 오르고 내리다 보면 가끔 머리가 빙빙~~ㅋㅋ
다리힘 없는 분은 사시기에 아주 곤란할거에요 ...
PS: 딸애가 이사진들을 보게되면 제가 집을 비운사이 우리집 사진들 지을 것 같은 예감...
딸애 사진첩에서 슬쩍 해온사진이라서 어째 찜찜~~
요즘 딸애가 가끔 저한테 언니처럼 굴때가 있어서 황당^^할때가 있어요.
다른 집들도 그런지??? 꼼짝말고 침대에서 쉬라고 했는데 오늘 컴앞에 있었던 걸 알면 잔소리 할께 분명 ㅠㅠ
관계자료 모음집~
슈베르트는 (1797.1.31~1828.11.19) 짧은 생애에 수많은 곡을 작곡한 초기 낭만파 음악가이다.
여기에 나오는 그림이 바로 슈베르트가 태어날 당시 지금집이 있는 곳의 풍경이다.
또한 그의 작품 초판본의 장정본과 악보들이 한책으로 엮어진
1997년 슈베르트 탄생 200주년 한정판으로 출간되어진 것으로서 내가 갖고 있는 중요한 자료집이다.
사진설명:
1.책표지/ 2. 18세기 생가 동네 /3. 겨울나그네 표지 /4. 아름다운 물레방앗간의 처녀 표지 /5.마왕 표지 /6. 마왕 악보 1~2면
인일에서만 볼 수 있는 귀한 자료네요.
김옥인 후배가 슈베르트 생가의 내부를 열심히 찍을 때
분명 인일 동문에게 보여주고 싶은 마음도 컸을 거에요.
고마운 마음.
인일 홈피의 보배.
옥인 후배의 집구경을 시켜줘서 고마워요.
달팽이 계단도 재미있고
빛이 잘 들 거 같은 옥인 후배의 서재룰 상상하는 것도 즐겁네요.
그럼 일부터 슈베르트네 동네로 간 거군요.
얽힌 이야기 나중에 들을게요. ^ ^
.
슈베르트 생가(Nußdorferstraße 54)에서 가까운 곳에 "마왕/Erlk?nig" D 328을 작곡한집이 있다 .(S?ulengasse3)
지금은 기념글이 적혀진 석판이 벽면에 붙여있어서 그시절의 슈베르트의 상황을 나타내기는 하지만,
요즘은 "SCHUBERT GARAGE"로 자동차 정비수리소로 이용되는 곳이다.
이집에서 슈베르트는 "Gretchen am Spinnrad", D 118,
교향곡 2,3,4,그리고 5번( D 125, 200, 417그리고 485) 을 작곡하였다.
이집은 내가사는 집으로 부터 뒷길로 한 3~4분 걸리는 곳에 있다.
두집사이에는 소비에스키라는 광장이 있어서 여름철에는 많은 주민이 쉬는 곳이다.
슈베르트 시대에는 이곳에 냇물이 흐르고 있었고 많은 아낙네들이 빨래도 하면서 마실나오던 곳이기도 하다.
내를 건너던 다리도 있었다. 그것을 증명하듯 다리의 성인 "오성 성인 얀 네포묵" 성인이 광장에 아직도 있다.
지금은 냇가위를 덮어서 광장이 되었지만, 아직도 광장아래에는 물이 흐르고 있다.
나는 수시로 이곳을 지나고 이곳에 놓여있는 의자에 앉아 쉰다.
이곳에서 쉴때마다 슈베르트에 대해서 경이로운 마음을 종종 갖는다.
18세의 젊은 슈베르트가 어찌 어린 자식의 생명에 애착하는 심정을 표현한 "마왕"을 그렇게 생생하게 표현할 수있었을까하는...
이동상에서부터 아래로 내려가면 "마왕의 집"이라고 일컬어지는 집에 다다른다.
지금 보다도 더 한가로운 그시절에 슈베르트의 영혼은 죽음과 삶을 넘나드는
너무도 급박한 심경을 갖었었기에 괴테시를 보고 이 "마왕"을 착수했던 것이다.
그러나 성장과 더불어 안정된 마음으로 미사곡 " 믿음,사랑, 소망"과 " 아베마리아"등 많은 종교음악도 작곡했다.
한 음악가를 평가할때 조심해야하는 것이 바로 이러한 시점이다.
성장함에따라 예술가의 감성과 지성과 직관도 변할 수있다.
그러함으로 총괄적으로 묶어서 평가한다는 것은 위험성을 수반하는 것이다.
몇살?어디서?어떻게?.....
또한 수반하는 여건으로 시대적, 개인적, 가족관계에 따라서도 함수가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음악인의 인물사에 큰 그릇으로 기억 될뻔했을 옥인이
너의 슈베르트를 따라다니는 정열과 집착 그리고 음악의 열정이
오늘 너를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구나~~~
인일인으로서 자랑스럽고 친구로서 우러러 본단다.
나같이 클래식과 악보의 초보자에겐 슈베르트를 이해함이
그저 얕은지식의 겉치레뿐이니~~ 창피할 뿐이란다.
너의 영혼의 동반자인 슈베르트와 같은 동네에 살고 있는것 만으로도
옥인이는 정말 슈베르트의 음악성의 기질을 얼마라도 옮겨 받지 않을런지?
앞으로도 많은 기대가된다.
for somebody!
주말에 시골갔다온사이 은열이가 다녀갔네~과찬의 말씀에 송구하넴^^
내가 비엔나에 와서 살면서 그전에 알고 있던 슈베르트를 재인식한것은 사실이야.물론 다른 음악가들도 마찬가지 이지만...
그들이 숨쉬었던 곳에서 살아가면서 그시대를 음미하기가 수월해서일지도.
처음 이글을 쓰기 시작했었을 때는 아퍼서 그랬나 멜랑콜리하니 내려앉은 기분이었었는데 쓰면서 안정되드라고 ㅎㅎㅎ
그냥 우리동네사람얘기하듯 앞으로도 자연스럽게 다른 내용도 이어갈까해~
겨울엔 아무래도 집에 있는날이 많으니까 읽고 싶던 책들도 맘놓고 읽고,
듣는 음악도 시간여유를 가지고 들으니까 세상에 부러울께 없어요~
이제부터 내년봄까지 뭘하는가 하면,,,,
가끔 번역일과 편곡일 하면서 밤도 새우는데
밤샌 다음날 육신은 고단하나 정신의 충만함에 세상이 다시 새롭게 보이지...
때때로 맘맞는 지인들과 실내악음악도 연주하는데
좀더 젊어서 연주활동할때 청중의식하여 주로 보여주기위한 연주를 하며 스스로 느낌을 갖을 여유가 없었는데,
요즘은 그런 갈등없이 서로의 소리에 귀기울이며 정말 음악의 희비를 깊게 느끼지...
그런의미로 나이 들어가면서 세상을 보는 감각이 더 풍부해지는 것같아~이렇게 생명을 연장시켜주는 하나님께 감사!!!!
그리고 지인들집 돌아가면서 각종음악 망라(LP,CD, 옛날 녹음한 롱테이프등등)해서 듣고
모두들 자기들 느낌을 솔직히 표현하며 담소하고 지내기도...
바쁘게 돈버는일에 매달리지 않고 깊어가는 겨울철에 자유스럽게 하고싶던 것들하니까 신선노름 부럽잖다우...
이 모든일이 건강해야 순조로우니 우선은 건강해야지.
깊어가는 세모에 은열이 너도 가족들과 건강하게 잘 지내기를~
옥인후배!!
별로 다른방을 기웃거리지 못하는 나의 주변떄문에 이제서야 들어왔네요.
새로운 옥인후배를 발견한것 같아 놀래뿌렸어요.
마냥 액티브하고 발랄한 유럽에 사시는 한 후배로만 생각했는데,,,,
떄로는 가슴아픔을 사랑할수 있는 순수함과 연약함도 있네요.
이맘때가 되면 어김없이 아픔이 그 몸을 찿아오는 이유를 알것같아요.
옥인후배의 영의 세계가 너무 너무 자유로이 타임머쉰속에서 날라다니시니,
몸이 때로 감당치 못하여 거부하며 지치는거지요???
우리의 영은 그냥 내 속에서 오늘은 오늘, 내일은 내일로 안주하는데,,,
옥인후배는 그 역사속으로 속으로 더 깊이 깊이 빠져들어가는구요,
어떤때는 헤어나 현실의 몸속으로 되돌아오는것조차 거부하지안나 싶네요.
또한 추구하는 분의 감성과 아픔과 슬픔, 모든것을 공유/공감하려하며,,,,,,
그럴뿐만 아니라, 저 위의 있는 그에 대한 것은 직접 다 연주하며 빠져드시는것 아니겠어요???
게다가 번역, 편곡의 능력까지,,,,
우와! 참 귀하십니다.
옥인후배 내면에 슈베르트에 대한 더 무궁한 갈망이 잠재해 있는것 같애요.
더 많이 자신을 발굴해내어 일구시고, 풀어내시고,
그 방면의 전문인으로 소신껏 살아보세요.
인일홈피를 빛내시는 분입니다.
존경과 함꼐,,,,분명 자랑스럽습니다,
지금 한국은 2009년의 마지막 날
올해 인일 홈피에 혜성처럼 나타나 유럽의 예술을 아우르는 듯
해박한 지식으로 동문들을 즐겁게 해준 선배 언니
동문컬럼에까지 언니의 글이 있는 줄 몰랐는데
그저 눈으로만 대단하다고 감탄했는데
오늘은 이 해가 가기전 꼭 인사하고 싶어요.
뉴욕까지 가서 올린 MET 와 MOMA 등을 보면서 선배님의 열정과 프로정신에 존경을 보냅니다.
저에게는 여러번 다니고 친근한 곳이지만
다른 사람에게 알리고, 공유하고 나누고 싶어하는 그 마음은
그 것의 전문인이 담당하는 특권이자 좋은 선물이지요.
계속 기다려요.
슈베르트의 impromptus 는 제가 즐겨 연주하는 곡이랍니다.
와... 옥인...
이곳에두 네 [작품]이 있구나...
- 그리구 이렇게 맨 마지막 칸에서 댓글을 쓰면 음악이 그치지 않는군 ^^
슈벨트...
그가 태어난 곳 가까이 사는 네 생활의 풍성함을 상상해본다.
그가 소유했던 기타 사진도 한참을 들여다 보았어.
-이즈음 마침 내가 몰두하는 것이 기타란다 ^^ 물론 띵띵똥똥 수준이지만...
아무래두 ...그곳에 가서 너를 직접 만나 얘기 나눌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자꾸 하게 되네 ^^
우선은
이렇게 좋은 작품들을 만들어 내는
너의 풍부한 감성과 선한 마음과 부지런한 행동에
감사와 찬탄의 미소를 먼저 보내고 싶어 ^^
ㅎㅎㅎ 은화야~
우리가 숨바꼭질하듯이 홈피에서 찾아다니는 듯,,,,
자유게시판에서 답글달고 여기로 왔더니 여기에서 너를 또? ㅎㅎㅎ 반가우이. 아주아주!!
그냥 옆에 네가 있듯이, 또 그 누구 대화하고 싶은이들하고 얘기하는듯이 글을 엮는데,
공개된 곳이라 가끔 표현을 절제해야할 때 답답함을 느끼기도 하지만
그래도 우리가 시공을 초월해서 만나니 좋구나.
기타음색은 가끔 나를 꿈속으로 데려가지...
SCHUBERT의 "밤과 꿈"음악처럼~~
옥인후배가 쇼팽을 컬럼에 올렸다고 가르쳐주지 않았으면 아마 난 내년에도 모르고 지냈을 꺼에요.ㅎㅎㅎ
보물 창고를 발견한 느낌이 아마 이런걸 꺼 같군요.
슈베르트와 이웃사촌에다 생일케익 사들고 갔다니 놀라워요.
세상의 많은 애호가들도 아마 그 생각까지는 못했을에요.
참 우리 인일의 보배를 만났네요.
저보다 4년밖에 안 젊은데 (ㅎㅎㅎ) 음악에의 열정과 추진력과 그리고 섬세함이 대단하군요.
그러니 병이 안찾아올 수가 없겠지요.
잠깐의 외출도 멀리가면 돌아오는데 시간 걸리고 힘들쟎아요?
정신세계가 정순자선배님의 말씀처럼 역사를 오가니 ......................................................................
암튼 힘내시고 오래오래 건강해야지요.
많은 전문가들을 봤지만 옥인후배는 달라요.
그 다른 점 때문에 처음에 음악 전공 안한 줄 알았어요.
흔히 하는 말로 공자앞에서 문자 쓴 격이지요.ㅎㅎㅎㅎㅎ
후배 덕분에 많이 행복합니다.
유명옥 선배님,
음악은 어려서 부터 제 삶의 중심에 잡혀있어서 공기처럼 느꼈었나봐요.
대학진학을 앞두고 부모님과 대결하면서 다른 것을 전공하려다 좌절하고 음악을 계속했지요.
그래서 오히려 음악이외의 것에 관심을 갖고 동경하면서 지내왔었어요.
비엔나에 와서부터는 소싯적 관심을 전공으로 이으면서 물맞은 생선처럼 한동안 지냈고요^^
지금은 부모님의 의사에 따렀던 것에 감사해요.
결국은 음악이 내안의 구심점이라는 것을 깨달았으니까요.
그리고 여기 살면서 느끼는 것중에 하나가
우리 인생에서 고등학교,대학때 이미 정신적으로는 거히 성숙한게 아닌가 싶어요.
지금 저보다 훨씬 어린 친구들과 대화를 하다보면
저보다 성숙한 사고를 가진 친구들을 만나지요.
나이를 초월해서 친구처럼지나는 것이 부담이 없어요.
그래서 제가 아직도 청춘으로 착각하기도 하는데요 ㅎㅎㅎ
그렇지만 선배님은 우리 오빠랑 동갑이시라 친구같다는 생각은 절대로 안드시네요 ^^
그리고도 인일 홈피는 기별로 구별하니까 선후배관계가 각별히 구분되기도...
그래서 작년 홈피가입부터 언니 동생들을 한꺼번에 많이 갖게된 기분이에요 ㅎㅎㅎ
ㅎㅎㅎ
난 8살 많은 남편과 살아서 그 또래들하고도 잘 놀고요.
울 오빠는 4살 위라 오빠친구보다 훨씬 논네들이랍니다.
7살 어린 12기들 아니 14기까지도 친구처럼 지내요.
언니같은 12기도 많더라구요. ㅎㅎㅎㅎ
옥인후배는 예술의 중심에 사니까 좀 다르겠지만 마음 맞는 사람 만나는게 쉬운 일 아니쟎아요?
정신세계에서 공통점을 느낄 때 느끼는 희열은 나이 같은거 전혀 초월해버리지요.
그냥 친구처럼 지내요.
저도 3기 혜경언니나 미선언니를 물론 언니라고 생각하지만 그건 호칭 뿐이더라구요.
그냥 막 놀아요(언니들 화내실라나?)
대학시절 음악사 이성삼 교수님의 강의를 들을때, 참고로 들려 주시는 음반음악에 정신을 모듬고 주제를 적었었다.
당시에는 구하기 어려웠던 자재였으므로 잊어버리지 않으려는 노력으로 주제선률을 나의 오선노트에...
미완성 교향곡,겨울나그네, 마왕, 그리고 등등을 설명하시던 노교수님의 목소리가 새삼 그리워 진다.
1997년 슈베르트 탄생 200주년 기념책자들이 발간되었을때,
그책들을 구해서 읽으며 이미 고인이 되신 은사님을 생각했었다.
'내가 번역해 드린다면 얼마나 좋아하셨을까...'
세월은 한시도 머무름없이 지나간다.그러고도 10여년이 지나갔으니...
요즘은 세상이 좋아져서 여러가지 음반을 구해들을 수 있다.
그러나 학창시절 들었던 LP판 의 소리를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얼마전 부터 나는 일부러 LP판을 사 모으고 있다.
CD와 다른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음향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