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꽃 - 김명인

등꽃 필 때 비로소 그대 만나
벙그는 꽃봉오리 속에 누워 설핏 풋잠 들었다
지는 꽃비에 놀라 화들짝 깨어나면
어깨에서 가슴께로
선명하게 무늬진 꽃자국 무심코 본다
달디달았던 보랏빛 침잠, 짧았던 사랑
업을 얻고 업을 배고 업을 낳아서
내 한겹 날개마저 분분한 낙화 져내리면
환하게 아픈 땡볕 여름 알몸으로 건너가느니.

 

등꽃 - 서지월

선녀들이 구름 타고 소풍 온다는 하늘 속에
오늘은 등꽃이 피어
나는 그 등꽃을 따라 쳐다보며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뻐꾸기도 따라와 내 마음 불붙듯 울어주었으나
산고개마루 훤히 드러내보인 바위에 올랐을 때에는
푸른 하늘 속 등꽃은 간데 없고
흰구름 두어 송이
그것도 이내 노저어가고 말았습니다
이글거리는 저 태양 속 세발까마귀
불 뿜으며 날아들어 쪼아먹을 것 같고
나는 그대로 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등꽃 - 나태주

등꽃을 자기 집 뜨락에 기르는 사람은
등꽃이 얼마나 고운 꽃인지 모를 거야
백제왕국의 유리구슬 맞부딪는 소리
백제여인의 비단 치맛자락 스치는 소리
그 찬란하고 은은한 소리
듣지 못할 거야
나같이 꽃 한포기 기를만한
뜨락조차 없어 오다가다
비럭질로 구경하는 사람만이
귀종냥 눈동냥으로 겨우 알 따름인
그 귀한 소리를

 

등꽃 아래서


이해인


차마
하늘을 바라볼 수 없는 것일까
수줍게 늘어뜨린
연보라빛 꽃타래

혼자서 등꽃 아래 서면
누군가를 위해
꽃등을 밝히고 싶은 마음

나도 이젠
더 아래로
내려가야 하리

세월과 함께
뚝뚝 떨어지는 추억의 꽃잎을 모아
또 하나의꽃을 피우는 마음으로
노래를 불러야 하리

때가 되면 아낌없이
보라빛 보라빛으로
무너져 내리는 등꽃의 경허함을
배워야 하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