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리걷이

                                                                  

    뒷산  산책길에서 마주쳤다.

언제부터 산을 헤매고 다녔는지 꼴은 말이 아니다.

길게 자란 털에 검불과 진흙덩이가 온 몸에 엉겨 붙어 있어 발을 떼기에도 힘겨워 보였다.

도움을 청하는 듯 제 모습을 드러내면서도 경계심 때문에 가까이 오지는 않는다.

초봄의 산바람은 아직 찬데 주위엔 개의 거처가 될 만한 곳이 하나도 없다.

몸집도 작은 것이 이 산중에서 스스로 먹이를 찾아 해결하는 일은 그리 만만하진 않았을 것이다.

기르던 개를 산에 갖다 버린 것일까. 무책임한 인간을 생각하니 화가 난다.

불쌍한 생명을 못 본 체할 수 없다.

장갑과 목줄을 챙겼다. 그물망까지 준비했지만 지칠 대로 지친 개는 별 저항 없이 잡혔다.

가까이에서 본 모습은 더욱 처참하여 애완견이라기보다 낡은 마포걸레 같다.

거죽에 걸친 남루의 무게는 상당했다.

씻기고 뭉친 털을 대충 깎고 보니 앙상하게 마른 흰색 말티즈였다.

작은 상자 안에 또 하나의 상자를 넣고 아치형으로 입구를 도려내어 개집을 만들었다.

포근한 옷가지를 깔아 주었지만 낯설어 집에 들어가지 않는다.

먹이도 안 먹더니 사람이 눈에 띄지 않을 때 조금씩 먹는다.

이제는 집에 들어가 제 몸을 한껏 웅크리고 있다.

제 이름을 알 수 없어 우리 개들의 돌림자를 따서 꽁지라고 붙였다.

안으려고 하면 기겁을 해서 내 손등을 물려고 한다. 안심하고 마음 열기를 기다렸다.

며칠 지나자 쓰다듬는 손을 허락했고, 좀 지나자 보듬어 안는 것도 허락한다.

안으면 내 팔에 턱을 괴고 발을 꼼지락거리는 것으로 실낱같은 믿음을 표현했다.

먹이를 먹고 나면 어디론가 나갔다가 한참 만에 돌아오곤 했다. 볼 일을 보러 나가는 것이려니 했다.

한줌밖에 안 되는 녀석이 힘없이 걷는 모습은 구겨진 휴지 조각이 바람에 구르는 것처럼 보였다.

그날도 부드럽게 불려 준 먹이를 조금 먹고 나서 살그머니 나가는 것을 보았는데 들어오지 않는다.

갈 만한 곳을 아무리 찾아 다녀도 없다. 꽁지를 찾아낸 곳은 처음 녀석을 발견한 그 곳이었다.

산으로 오르는 길목이 내려다보이는 곳, 찬 바닥에 네 다리를 뻣뻣이 편 채 죽어 있었다.

죽을 때까지도 그곳에서 제 주인이 찾으러 오기를 기다렸나 보다.

내가 목에 둘렀던 수건을 풀어 죽은 꽁지를 여미어 싸는 동안 남편은

언덕바지 나무 밑에 작은 구덩이를 팠다.

두 사람은 서로 말이 없다. 하지만 남편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것 같다. 측은하고, 속상하다.

주인을 찾아 산속을 헤매고 다니던 꽁지는 인간에 대한 경계심이 컸을 게다.

나를 만나   상처 입은 마음이 치유되고 인간과의 관계가 회복되길 바랐다.

영양 공급과 마음의 안정이 우선이라 판단하여 의사의 적극적인 치료를 미룬 것이 후회되었다.

‘제 명이 그 뿐인 걸 인력으로 어쩔 수 있나.’ 남편은 변명처럼  체념처럼 중얼거리며

꽁지 묻은 자리를 다독거려 마무리했다.   

보름 남짓 돌본 떠돌이 개의 죽음은 오래 전 이웃집에서 초상을 친 후 했던 자리걷이를

내 앞에 끌어다 놓았다.


   그 집과 우리 집은 한 집 건너 이웃이었다.

대대로 물려받은 재산으로 애쓰지 않고도 잘 산다는 말 뒤에는 가장의 난봉기 때문에

그의 처가 가슴앓이를 한다는 말이 같이 따라 다녔다.

그러던 그 집 가장이 죽었다.

상가의 마당뿐 아니라 집 앞 길에도 차일이 쳐졌다.

평소 한껏 멋을 부리던 이웃집 여자들이 누런 베옷 차림에 머리에는 수질을 썼다.

그런 차림이 죽은 사람보다 더 낯설고 멀게 느껴졌다.

사람의 죽음을 수습하는 한편에서 먹고, 마시고, 웃고, 떠들며 화투판까지 벌리는 광경이

그 나이 때는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부잣집이라 초상은 장하게 치르는데 진정 애통해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 같다던

어머니의 말씀도 이 나이가 되어서야 그 뜻을 헤아릴 수 있다.

출상을 한 후에도 그 집 안마당의 차일은 걷히지 않았다.

해질녘에 동네 사람들이 자리걷이 굿을 구경하러 다시 모여 들었다.

무당이 망인의 목소리를 빌어 넋두리하며 서럽게 울었다.

그리고 과부가 된 안주인의 치마폭에 얼굴을 묻고 울면서 용서를 빌었다.

평생 의좋게 살자고 약속해 놓고 가슴에 못을 박아 미안하다고 했다.

망인의 처는 목 놓아 울었다.

그것을 바라보던 구경꾼들은 숙연했고 주위는 조용했다. 아무도 입을 여는 사람이 없었다.

그 모습은 적어도 떠난 자에 대한 남아 있는 자의 도리인 것처럼 느껴졌다.

얼마의 시간이 흐르자 여기저기서 훌쩍이는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동네 노인들은 자기 설움을 보태어 연신 눈언저리를 닦는 듯이 보였다.

무슨 구경인가 해서 기웃거렸던 나도 젖은 눈을 소매끝으로 찍어냈다.

자리걷이는 무당의 힘을 빌어서나마  떠나는 이에게는 홀가분하게 짐을 벗겨주고,

남은 가족은 위로하여 산자와 죽은자의  관계를 정리하는 마음의 빚잔치가 아니었을까. 

 

꽁지가 떠난 후 나는 그의 흔적을 걷어냈다.

보금자리를 소각로에 넣고 불을 붙였다.

깔아주었던 옷가지가 타며 개털 특유의 냄새를 뿌렸다. 

꽁지의 흔적이 연기가 되어 날아간다.  나는 혼잣말을 연기에 실어 보낸다.

망인의 처 치마폭에 얼굴을 묻고 용서를 빌던 무당의 모습이 겹쳐졌다.

나의 혼잣말은 분명 꽁지에 대한 나의 간절한 기도이며 내가 해줄 수 있는 최선의 자리걷이였다.

불꽃도 연기도 사그러 들고 소각로 바닥에 한 줌의 재가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