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행

                                                                                                                                                             박  찬  정

    출발도 늦었다.

약속한 시간에 맞춰가기도 빠듯한데 고갯길에서 골재 실은 덤프트럭을 만났다.

앞지르기를 하기에는 위험한 길이다.

바쁜 마음에 조바심내며 따라가는데 갓길이 보이자 앞차가 깜빡이등을 켜고 비켜서며 길을 내어준다.

덕분에 주행 속도를 낸다. 트럭이 뒤쳐져 따라 온다.

어머니가 속옷 몇 벌 챙겨 요양병원에 입원하신지 두 해가 지났다.

집에 돌아오셔서 살림하며 사실거라는 기대는 접은 지 오래다.

사시던 집을 비워줘야 하는데 바쁜 일에 쫓기고 하루 이틀 미루다가 코앞에 닥쳤다.

마음은 바쁜데 버려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망설이는 손은 느리다.

노인의 고운 때가 탄 토끼털 배자와 누비저고리, 두루마기는 쓰레기봉투에 담겨 넝마로 나갔다.

평생 애착을 갖고 쓸고 닦던 장롱과 소소한 살림살이는 적지 않은 돈을 수거료로 내고

한 차 실어냈다.

기억의 끈이 풀리고 당신 몸 하나도 추스르지 못 하지만

생존해 계신 어머니의 집이며 옷가지, 살림살이를 처분하는 일이 순서를 어기고

앞질러 하는 것 같아 마음에 걸렸다.

집안은 거칠 것 없이 휑하다. 며칠 후 잔금을 받고 명의를 넘겨주면 이 공간과의 인연은 끝난다.

노인의 것은 손수 장만해 놓은 수의 보따리와 주민등록증 그리고 아무데도 쓸 일 없는 목도장뿐이다.

    내가 어머니의 살림에서 추려내어 가져 온 것은 눈이 맵도록 좀약 냄새가 나는 보따리 몇 개가 전부다.

며칠간 밖에 두고 거풍시켰어도 좀약 냄새는 여전하다.

아들은 어릴 때 이 냄새를 할머니 집 냄새라고 했다. 

   어느 날 보따리를 하나씩 풀어 보았다. 큰 보자기에 싸여 있는 것은 어머니의 수의다.

어머니가 예전에 손수 짠 삼베로 수의전문점에 부탁해 지어놓으셨다는 얘기를 여러 번 들었지만

보는 것은 처음이다.

겹겹이 입히는 갖춘 수의가 아니라 화장(火葬)이 일반화 된 시대에 맞추어 가짓수를 간소화한 것이다.

어머니는 먼 길 갈 때 입을 옷을 진즉부터 장만해 놓고

온 길을 되돌아 갈 수 없는 갓길에 서서 두 해를 보내고 계시다. 

또 다른 보따리에는 흰 옥양목 두루마기가 다섯 벌 들어 있다.

두루마기마다 이름표가 붙어있다.

내 남편의 이름, 장조카의 이름, 그리고 시누이 남편 이름이다.

또 하나 이름을 보고 멈칫했다. 시외삼촌 이름이다.

어머니가 여러 동생 중에 막내 동생 두루마기 한 벌을 해 놓으신 연유를 짐작해 보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해방되기 이태 전, 시외조부께서는 혼기에 차지도 않은 열여섯 살 맏딸의 혼인을 서둘렀다.

정신대에 끌려가는 것을 면하게 하려는 조치였다.

시어머니께서는 거역할 수 없는 어른들의 말씀에 따라 업고 있던 막내 동생을 내려놓고 초례를 치렀다. 얼떨결에 쫓기듯 시집 온 열여섯 살 누이는 늘 등에 업혀있던 막내 동생이 눈에 선했다.

맏이와 막내, 그 사이에 많은 형제가 있어도 두 사람은 각별히 도타웠다.

막내에게 맏누이는 늙은 어머니 대신이었을 뿐만 아니라 맏누이의 장남과는 숙질간이라기 보다

형제나 친구처럼 같이 컸다.

막내 시외삼촌은 맏누이인 시어머니가 친정부모를 설득한 덕분에 서울로 진학했고,

친정 살림 뻔히 아는 맏누이는 구메구메  동생의 학비를 보탰다.

   막내 시외삼촌과 형제처럼 지내던 시아주버니가 마흔 중반에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외삼촌은 맏자식 잃은 누이 가까이 살면서 위로하고 빈자리를 대신했다.

그 동생의 몫으로 옥양목 두루마기 한 벌 해 놓으신 데는

당신의 마지막 가는 길을 돌봐달라는 부탁이자

앞질러 간 장남을 대신하여 곁을 지켜 준데 대한 어머니 나름의 보은이 아니었을까.

   그런 막내 시외삼촌이 지난 해 돌아가셨다.

영정 사진으로나마 마지막으로 동생 얼굴 보시라고 빈소에 모시고 갔다.

사진을 보는 어머니 표정에는 아무런 기억도, 슬픔도 없다.

산다는 의미와 존엄을 잃어버린 어머니를 보는 일은 억장이 무너지는 괴로움이다.

그토록 정갈하시고 부지런하시던 어머니가 한 평도 안 되는 침상에서

해가 돋는지 저무는지도 모르는 채 하루하루를 버티고 계신다.

어머니가 갓길에 엉거주춤  서 계시는 동안

흰 옥양목 두루마기 입고 당신 초상 치러 주리라 믿었던 막내 동생은 맏누이를 앞질러 먼 길을 떠났다.

막내 동생뿐 아니라 큰 동생 그리고 손아래 올케와 제부도 앞질러 갔다.

이제 어머니도 갓길에서 벗어나 주행의 흐름에 맞추길 바라는 마음이다.

부모님이 가신대도 막아서야 하는 것이 자식이라면 그런 생각을 하는 나는 불효막심한 패륜이다.

‘어머니! 갓길은 비켜서서 잠시 머무르는 곳이지, 길게 주차하는 곳이 아닙니다.

갓길에서어머니를 앞지르기 하는 참척 그만 보시고 이제 그만 주행선에 들어서시지요.’

빈 껍데기가 다 된 어머니를 안타깝게 지켜보는 내 마음을 어머니는 아실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