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를 생각하다

                                                                                                                                                                                                 박 찬 정

   슈퍼마켓 앞에 빈 종이상자를 모아 놓았다. 파는 물건은 아니다.

택배 포장용 상자 하나 골라서 돌아서는데 주변을 정리하던 점원이 나를 불러 세웠다.

고객이 구입한 상품을 담아가는 목적으로 모아 놓은 것이니 가져가면 안 된다고 주의를 준다.

당부의 문구도 붙어 있다. 수확 철이라 집어가는 사람이 어지간히 있었으리라 짐작된다.

그제야 점원에게 양해를 구하고 얻었지만 도둑질하다가 들킨 것처럼 부끄러웠다.

   요즘 많이 쓰는 경제용어 중에 가성비(價性比)라는 말이 있다. 가격 대비 성능의 비율을 말한다.

저렴한 가격에 다양하고 우수한 성능을 가졌다면 가성비가 높은 것이다.

성능은 가치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가치가 가격으로만 평가되는 것은 아니다.

생산가치나 효용가치, 존재가치도 있다. 종이 상자는 효용가치로서 탁월하다.

유통시 포장 상자는 내용물만큼이나 중요하다.

특히 종이 상자는 싸고, 가볍고, 틀이 잡혀 있을 뿐 아니라 약간의 두께가 있어 내용물을 보호해 준다.

크기도 다양하며 적절하게 쓰면 몇 번이든 재활용도 가능하다. 

고구마를 담아 보관하기에도, 택배로 물건을 보낼 때도, 잡동사니를 넣어 두기에도 그만한 것이 없다.

젖은 것을 담아 두는 것만 아니라면 그 활용도의 폭은 넓다.

   일본에서 돌아온 후 한두 해 동안은 빈번히 일본을 왕래했다.

일본 동북지방의 큰 지진과 쓰나미가 있던 그 시각에도 일본 도쿄 근교인 사가미하라에 있었다.

오후 세 시경으로 기억한다. 유리창과 바닥이 몹시 흔들렸다.

어쩌다 한 번씩 경험했던 약진과는 비교가 안 되게 흔들림이 강하고 길었다.

가상훈련에서 익힌 대로 몸을 낮추고 머리를 보호하기 위해 탁자 밑으로 기어들었다.

흔들림이 주춤해진 틈을 타 사람들은 모두 밖으로 빠져 나왔다.

여진은 계속되었다. 전봇대가 흔들거리고 전선이 출렁거렸다.

흔들릴 때마다 바닥에 주저앉아 들고 있던 가방으로 머리를 감쌌다.

불안한 마음이긴 해도 이 흔들림만 멈추면 제 자리로 돌아가 쏟아지고 흩어진 것을 정리하고

일상으로 되돌아가려니 생각했다.

시간이 흘러도 여진은 계속되고 상가는 철시한다.

도쿄 번화가인 시부야 고층 빌딩 내에서 근무하는 아이가 걱정되었지만 핸드폰으로 연락이 되지 않았다.

통신이 원활하지는 않아도 전혀 두절된 것은 아니라서 모두들 전화기를 손에 쥐고 전전긍긍한다.

  빨리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마음은 급하고 초조했다.

역으로 진입하는 전차는 보이지 않고 평일임에도 역사(驛舍)안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관동 일대 전 노선이 운행을 중단하고 선로 점검중이라는 방송만이 계속되고 있다.

시간이 흐르자 금일 중엔 운행 재개가 안 된다는 방송으로 바뀌었다.

우왕좌왕하는 중에 삼월 짧은 해는 기울어 어둑해졌다. 집에 갈 방법이 막연하다.

한 걸음이라도 집 가까이 가야 한다는 생각에 버스 정류장으로 갔다. 거기도 발이 묶여 있긴 마찬가지다.

역 주변 숙박이 될 만한 업소는 모두 만실(滿室)표지판을 내걸었다.

전차로 40분가량 걸리는 거리이니 집까지 걸어간다면 밤 새워 걸어야 한다.

모르는 지역에 가서 오도 가도 못 하는 것보다 차라리 치안이 안전한 역사 안에 있는 것이 나을 것 같다.

밤에 선로 점검을 마치고 나면 새벽 첫차부터는 운행되지 않을까 기대도 있다.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출입문이 따로 없는 역사에 모여 들었다.

크든 작든 천재지변이라면 토를 달지 않는 일본인이니 항의하는 사람은 없다.

귀가를 포기한 사람들이 벽에 기대어 앉는다.

양복입고 넥타이를 맨 직장인도, 학생도, 아가씨도 도리 없이 모두 역전 노숙을 할 모양이다.

나도 자리를 잡고 앉았다.

가방을 뒤져 깔만한 것은 다 깔았어도 냉기가 그대로 온몸에 전해진다.

모두가 창졸간에 바깥 잠을 자게 된 처지여서 준비가 된 사람은 아무도 없다.

재수가 좋았거나 행동이 민첩하여 편의점에서 내놓은 종이 상자 하나를 구해 깔고 앉은 사람이 있을 뿐이다.

곁에 앉은 사람이 종이상자를 겹으로 접어 깔고 있지만 펴서 같이 깔자는 말을 차마 하지 못 했다.

내 제의를 낯모르는 상대방이 흔쾌히 받아줄지, 곤란해 할지 판단하기 어려우면 애당초 말을 건네지 않는 것이

일본인이다. 나도 어느 결에 닮아 있다.

   텔레비전의 화면은 동북지방 해안을 덮친 쓰나미와 후쿠시마 원전에 맞추어져 있다.

가족을 잃고, 삶의 터전이 흔적 없이 쓸려나간 이재민의 아픔을 어찌 하룻밤 노숙하는 괴로움에 비할 수 있을까.

하지만 나는 지금 앉은 자리의 냉기로 뼈가 시린 것이 더 견디기 힘들다.

날이 밝으려면 아직 멀었고 집에 갈 방법 또한 막연하지만 자리에서 일어섰다.

깔만한 것을 구하기 위해 어두운 거리로 나섰다.

역에서 멀리 떨어진 약국 앞까지 가서 작은 종이상자 두 장을 주웠다.

다시 역으로 돌아 왔을 때 내가 앉았던 자리는 벌써 다른 사람이 차지하고 있었다.

한 장을 깔고 한 장은 무릎을 감싸고 싶은 마음 간절했지만

맨바닥에 앉아 곧추세운 두 무르팍에 얼굴을 묻고 있는 옆 사람을 가만히 흔들어 한 장을 주었다.

그도 사양할 여유가 없다. 종이상자 한 장 깔고 앉은 것뿐인데 몸이 느끼는 온기는 사뭇 따듯했다.

나는 그날 밤 종이 상자 하나의 가치를 잊지 못한다.

   살면서 대하는 모든 것을 가성비로 평가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존재가치나 효용가치가 사회의 큰 부분을 지탱하며 이바지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사람의 존재가치는 기여도가 아닐까?

예순을 바라보는 나, 세상을 향한 기여도를 스스로에게 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