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 | 포토갤러리 | - 게시판담당 : 12.김춘선
하지 감자 유월 동부
삼월 초, 남녘이라 해도 아직 함부로 즐길만한 봄바람은 아니다.
이른 봄꽃이 드문드문 눈을 떴고, 기온이 내려가는 밤에도 땅이 얼지 않을 뿐이다.
여느 해와 마찬가지로 김장꺼리 배추 뽑아 낸 밭을 갈아 퇴비를 뿌렸다.
두둑을 치고 검은 비닐을 덮은 후 두 뼘 정도 간격을 띄어 재에 뒹굴린 감자를 심는다.
겨우내 잠자던 땅은 봄볕 쬐고 빗물 스며들어 하루가 다르게 땅 기운이 성해진다.
싹 틔울 눈을 가늠하여 자른 반쪽 감자는 땅속에서 제 몸의 진기를 소진하며 싹을 밀어 올리고 뿌리를 내린다.
감자를 캘 때 포기를 뽑아 올리면 바스라질것 같은 반쪽 씨감자 껍질이 뿌리에 매달려 있다.
모든 것을 내어 주고 빈 껍데기만 남은 내 어머니처럼 씨감자의 희생 역시 거룩하다.
농작물도 유행을 탄다.
단골로 가는 종묘상의 권유로 초석잠과 강황, 야콘도 심어봤지만 즐기는 맛이 아니라서 두 번 다시 심지 않는다.
요리와 간식으로 다양하게 쓰이는 것은 역시 감자다.
사람은 좋아하는 것에 끌리고, 즐기며 하는 일은 힘 드는 줄 모른다.
유월로 접어들어 연보라색 감자꽃이 폈다가 지고, 실한 잎과 줄기가 밭 두둑을 덮는다.
얼마 후 감자 포기가 제 역할을 마치고 시들어 두둑에 누워버리면 감자를 캔다.
그때가 장마가 올 무렵, 하지 전후라서 하지감자라고 한다.
본격적으로 감자 캐기 전 햇감잣국을 끓이려고 포기 밑동에 손을 넣어 흙을 헤쳐 보면 제법 굵직한 감자가 잡힌다.
손끝으로 더듬어 서너 알 캐고 다시 흙을 덮고 토닥여 놓는다.
흙 속 감자를 쥐어 본 느낌은 어릴 적 어미닭 날개죽지 밑에 손을 넣어 품고 있는 병아리를 만져 본 뿌듯한 희열과 같다.
감자를 심고난 후 열흘쯤 지나 강낭콩을 심는다.
경상도 지방에서는 강낭콩을 동부콩이라고 한다.
심기 전에 밑거름을 뿌리지 않아도 지난 해 김장배추 심어 거두고 난 땅 힘으로 봄비 맞아가며 잘 자란다.
꽃이 진 자리에 콩 꼬투리가 생기고 뙤약볕 열기에 꼬투리가 통통하게 살이 오른다.
나는 유월이면 올된 동부콩밥에 햇감자국 곁들여 먹기를 좋아한다.
화끈한 자극의 맛도 감질나게 달콤한 맛도 아닌 순한 맛이라서 좋다.
나의 밋밋한 인생살이를 닮은 맛이기도 하다.
그런 잔잔한 일들이 텃밭 가꾸며 전원에 사는 재미다.
동부콩 역시 장마가 오기 전에 딴다. 그때가 유월이라서 유월동부라고 한다.
텃밭 농사를 다섯 해째 하고 있다.
볕 바른 한 마지기 밭은 두 식구 먹을 푸성귀 가꾸기에 넉넉하다.
남편은 밭일에 그다지 흥미가 없는 것 같아 주로 내가 하지만
경운기로 밭을갈고 퇴비를 뿌리는 큰 일은 남편이 다 한다.
감자와 동부콩을 처음 심던 해는 씨앗 값도 건지지 못 했다.
감자밭엔 비닐 멀칭을 하지 않아 억센 잡초가 감자밭을 제압해 버린 바람에 감자 캘 엄두조차 낼 수 없었다.
게다가 동부콩은 심기 전에 퇴비를 넉넉히 준 것이 화근으로 씨가 썪어 싹을 틔어 보지도 못 했다.
실패의 원인을 알고 난 후 같은 잘못은 반복하지 않는다.
해마다 감자와 동부콩 수확은 자급자족하고 지인들에게 자랑삼아 인심 쓸 만큼이다.
감자와 동부콩을 거둬들이면 밭은 쉰다.
부지런하고 경제성을 따지는 농부는 틈새작물로 참깨를 파종하지만
사람이나 땅이나 숨 돌릴 여가를 주어야 한다는 게 나의 지론이다.
처서 지나 더위가 한 풀 꺾이면 한 해 절반 농사인 김장배추를 심는다.
전반기엔 하지 감자, 유월동부를, 후반기에는 김장꺼리인 배추와 무를 심어 거두는 것으로 이모작을 한다.
나의 삶 역시 이모작 파종기에 들었다
어느새 예순 고개를 넘었다.
돌이켜 보면 내외간에 눈부신 공(功)이나 부끄러운 과(過)없이 살았다고 생각한다.
삶의 굴곡도 있었지만 감당할 만 했다.
이제 남편은 직장에서 은퇴했고, 자식은 결혼하여 독립했다.
화려한 노후는 아니더라도 두 식구 생활에 궁핍하지 않을 만큼은 마련해 놓았다.
내일을 자신할 수는 없지만 아직 건강하다.
한해 절반쯤에 하지 감자와 유월 동부를 수확한 것처럼 나 역시 육십 고개를 넘으며 생애 반농사를 지은 셈이다.
그리고 기한을 정할 수 없는 절반의 농사가 남았다.
내 생애 후반에는 무엇을 파종하여 거둬들일까?
떼돈을 벌려거나 뒤늦게 이름을 만방에 빛내려는 욕심을 부리지는 않는다.
남은 생애 보람되게 살고, 이제까지 내가 엮어 놓은 사람과의 얼개를 원만히 유지하여
마무리하려는 의지가 굳을 뿐이다.
예기치 못할 재해나 복병의 불안이 있지만 치열한 경쟁에서 한 발 물러났고,
반 농사는 끝내 놓았다는 안도감이 여유를 준다.
욕심을 부리자면 나 자신만 힘들어지므로 내 형편과 적당히 타협하는 지혜도 이 나이 되어서 깨닫는다.
내 인생 후반기 농사, 해마다 먹을 만큼 심어 거두는 하지 감자, 유월 동부 작황 정도라면 더 바랄 나위 없다
찬정이의 인생 절반은 충분히 성공했네~
나머지도 심심한듯 슴슴한듯 평화로울거라 확신이 들고
포근포근한 하지 감자를 생각하면
쇠기기 다짐 양파를 넣고 밀가루 계란 빵가루에 굴린
감자고로케가 떠오르는걸 보니
나는 아무래도 전생에 식순이 였나봐
강낭콩밥에 햇감자국~~
밥이 저절로 슥 넘어 가겠네
찬정의 글을 읽은 나의 독후감!
마치 유기농 채소와 잡곡밥 으로 한상 차려진
건강식 맛나게 잘 먹고
후식으로 구수한 숭늉까지 마시고 난 여유로움입니다.
이 글을 읽고나면
두통이나 소화불량 따위로 잔병치레하던
허약한 몸들이 건강해 질 것 같고
사실 그보다 먼저,
실은 내 속에 알게 모르게 자리하고 있던 마음의 병들이
슬그머니 치료되어버린~
그런 고마움입니다.
찬정에게~
감사합니다. ㅎ
정말 그러네요. 건강한 정신을 가진 농부가 일군 농작물로 차린 보약이 되는 밥상을 마주한 기분. 틈새 작물을 심지 않는다는 그 배려심은 인간사도 마찬가지겠지요. 풀 가동은 어디나 탈이 나지요. 암튼 항상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찬정이의 글. 오늘도 잘 읽고 갑니다. 다들 존댓말을 해서 나도 덩달아~ㅋ 찬정아 잘 읽고 간다. 너의 애독자가~
참 실하게 산다.
하지감자.
유월동부.
첨엔 요거이가 뭔소리인가? 했구먼.
햇볕 자자한
너른 문전옥답에
예쁜씨앗 골골이 심고
요것조것 키워
거두어 들이는 맘을
우리가 어이알꼬?
하루의 단 한시간도 헛되이 쓰지 않는
그대의 삶에 부러운 맘과 함께
경의를 표한다네.
수시로
무시로
얻어먹어서가 아니라
예쁘게 엎디어 땅을 일궈
요것조것 키워 먹는 그모습이
참 아름답구먼.
햇살 자자한 곳에 노랑 병아리들...!
순하기 그지없는 멋진 세퍼트....!
돌려보내도 지집으로 알고 다시오는 털뭉텡이 발발이...!
그집 마당의 식구들은 모두 봉잡았다네~~~
별 것도 아닌 강낭콩밥에 감잣국뿐인데 보약 밥상을 받았다 하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마을을 가로지르는 큰 길.
길 아랫쪽은 바닷가에 닿아 있고,
마을 윗편은 산과 가까이 있습니다.
우리집은 윗쪽이라 산과 가깝지요.
마을 안쪽엔 토박이가 살고, 외곽에는 우리같은 이주민이 삽니다.
토배기 논네들은 父母代 브터 지세포 사람이 아니면 다 뜨네기라고 합니다.
연령대가 다르니 서로 교류할 일도 없습니다.
여기뿐 아니라 요즘 촌의 구성이 거의 그렇다고 합니다.
뒷산에는 매일 쌈지와 엄지를 데리고 산보하는 길이 있습니다.
가끔 밤중에 멧돼지가 일가족을 몰고(사실입니다 )밭에 내려와
옥수수나 고구마를 싸그리 먹고 가기 때문에 멧돼지가 좋아하는 옥수수나 고구마는 심기를 망설입니다
우리밭은 집 가까이에 있고, 쌈지와 엄지가 지키고 있어서
옥수수를 조금 심어 먹습니다.
멧돼지가 돼지감자(뚱딴지)는 좋아하는데
감자는 전혀 건드리지 않으니 참 이상합니다.
강낭콩잎을 고라니가 뜯어먹기 때문에 망을 칩니다.
감자 한알, 강낭콩 한 꼬투리라도 관심과 손길이 가지 않으면 제대로 되지 않습니다.
찬정언니 손잡고 언니네 이곳저곳을
귀기울이며 쫓아다니는 기분이
자꾸 들어서 휘휘 아니라고
하다가 다시 또 일게 되는
글
고맙게 읽었습니다.
거제의 찬정이 농사일지를 보내.
맞깔스런 글로 그 풍경을 그려보게 하는 찬정이가 오늘따라 더 보고 싶네
하지감자
유월동부라는 말을 첨 들어보네
농사하곤 거리가 먼데 먹는 건 잘 먹어서리
하지 감자 먹으러 거제 가고프다^^
그러나 넘 멀어
앉아서 감자 사먹지
찬정~!
위의 글에 써있는것들을
폰으로 찍어서 나에게 보내줘봐.
늘 찬정의 글 읽으면서 농촌에 안살아 본 나는
그곳이 궁금했었거든.
보내준 사진을 이곳에 올려놓고
농촌의 아름다움을 느껴보고 싶어서이지.
감자 싹나는것,
동부 꼬투리 열리는것등등
참 이쁠것 같애.
OK?
아 ~앙 되요.
밭 작물 영글어 가는거 소문내면 밭에 도둑들어요.
그게 아니고
부지런한 농군마냥 깔끔하고 야무지게
가꿔놓지않아서 숭보실까봐 안되요.
감자밭에 검은 비닐 멀칭을 해서 두덕에는 풀이 안났는데
고랑에는 뭔노뫼 풀이 그렇게 나는지.
풀 뽑을 엄두가 나지 않아서 기냥 냅둡니다.
그래도 우리 먹을 만큼은 되겠지요.
강낭콩도 요즘 꽃이 피고 꼬투리가 생기고 있어요.
이따가 나가서 사진 찍어 보여드릴게요.
<찬정이네 밭이 눈에 아리삼삼해서 사진좀
보내달라고 했더니 요로케 예쁜 사진과 글들을
카톡으로 보내와 혼자 보기 아까워 올려봅니다>
강낭콩(유월동부)꽃이 피었습니다.
이파리를 들쳐보면 꼬투리도 달렸지요.
감자 ~!
잎과 줄기가 아직 원기 왕성하니 감자 알갱이가
크지는 않을겁니다.
밭에서 테니스 치는것은 아니고 고라니가 강낭콩잎
따먹으러 들어 갈까봐 우리 테니스 클럽에서 못쓰게 된
네트 얻어다가 쳐놓아요.
<사진에서 풀냄새,흙냄새가 나는 듯....
참 멋지게 사는것 같아요.
부러버라 ~!!!>
와 좋네요.
침 꼴깍 넘기고 작가와 호흡을 맞추게 됩니다.
갑자기
감자밥도 먹고 싶고 동부밥도 먹고 싶어요.
제 후반기 농사도 생각해보게 되네요.
좋은 글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