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 감자   유월 동부

                                                                                                                                                                                                               

    삼월 초, 남녘이라 해도 아직 함부로 즐길만한 봄바람은 아니다.

이른 봄꽃이 드문드문 눈을 떴고, 기온이 내려가는 밤에도 땅이 얼지 않을 뿐이다.

여느 해와 마찬가지로 김장꺼리 배추 뽑아 낸 밭을 갈아 퇴비를 뿌렸다.

두둑을 치고 검은 비닐을 덮은 후 두 뼘 정도 간격을 띄어 재에 뒹굴린 감자를 심는다.

겨우내 잠자던 땅은 봄볕 쬐고 빗물 스며들어 하루가 다르게 땅 기운이 성해진다.

싹 틔울 눈을 가늠하여 자른 반쪽 감자는 땅속에서 제 몸의 진기를 소진하며 싹을 밀어 올리고 뿌리를 내린다.

감자를 캘 때 포기를 뽑아 올리면 바스라질것 같은 반쪽 씨감자 껍질이 뿌리에 매달려 있다.

모든 것을 내어 주고 빈 껍데기만 남은 내 어머니처럼 씨감자의 희생 역시 거룩하다.

 

    농작물도 유행을 탄다.

단골로 가는 종묘상의 권유로 초석잠과 강황, 야콘도 심어봤지만 즐기는 맛이 아니라서 두 번 다시 심지 않는다.

요리와 간식으로 다양하게 쓰이는 것은 역시 감자다.

사람은 좋아하는 것에 끌리고, 즐기며 하는 일은 힘 드는 줄 모른다.

유월로 접어들어 연보라색 감자꽃이 폈다가 지고, 실한 잎과 줄기가 밭 두둑을 덮는다.

얼마 후 감자 포기가 제 역할을 마치고 시들어 두둑에 누워버리면 감자를 캔다.

그때가 장마가 올 무렵, 하지 전후라서 하지감자라고 한다.

본격적으로  감자 캐기 전 햇감잣국을 끓이려고 포기 밑동에 손을 넣어 흙을 헤쳐 보면 제법 굵직한 감자가 잡힌다.

손끝으로 더듬어 서너 알 캐고 다시 흙을 덮고 토닥여 놓는다.

흙 속 감자를 쥐어 본 느낌은 어릴 적 어미닭 날개죽지 밑에 손을 넣어 품고 있는 병아리를 만져 본 뿌듯한 희열과 같다.

 

    감자를 심고난 후 열흘쯤 지나 강낭콩을 심는다.

경상도 지방에서는 강낭콩을 동부콩이라고 한다.

심기 전에 밑거름을 뿌리지 않아도 지난 해 김장배추 심어 거두고 난 땅 힘으로 봄비 맞아가며 잘 자란다.

꽃이 진 자리에 콩 꼬투리가 생기고 뙤약볕 열기에 꼬투리가 통통하게 살이 오른다.

나는 유월이면 올된 동부콩밥에 햇감자국 곁들여 먹기를 좋아한다.

화끈한 자극의 맛도 감질나게 달콤한 맛도 아닌 순한 맛이라서 좋다.

나의 밋밋한 인생살이를 닮은 맛이기도 하다.

그런 잔잔한 일들이 텃밭 가꾸며 전원에 사는 재미다.

동부콩 역시 장마가 오기 전에 딴다. 그때가 유월이라서 유월동부라고 한다.

 

    텃밭 농사를 다섯 해째 하고 있다.

볕 바른 한 마지기 밭은 두 식구 먹을 푸성귀 가꾸기에 넉넉하다.

남편은 밭일에 그다지 흥미가 없는 것 같아 주로 내가 하지만

경운기로 밭을갈고 퇴비를 뿌리는 큰 일은 남편이 다 한다.

감자와 동부콩을 처음 심던 해는 씨앗 값도 건지지 못 했다.

감자밭엔 비닐 멀칭을 하지 않아 억센 잡초가 감자밭을 제압해 버린 바람에 감자 캘 엄두조차 낼 수 없었다.

게다가 동부콩은 심기 전에 퇴비를 넉넉히 준 것이 화근으로 씨가 썪어 싹을 틔어 보지도 못 했다.

실패의 원인을 알고 난 후 같은 잘못은 반복하지 않는다.

해마다 감자와 동부콩 수확은 자급자족하고 지인들에게 자랑삼아 인심 쓸 만큼이다.

감자와 동부콩을 거둬들이면 밭은 쉰다.

부지런하고 경제성을 따지는 농부는 틈새작물로 참깨를 파종하지만

사람이나 땅이나 숨 돌릴 여가를 주어야 한다는 게 나의 지론이다.

처서 지나 더위가 한 풀 꺾이면 한 해 절반 농사인 김장배추를 심는다.

전반기엔 하지 감자, 유월동부를, 후반기에는 김장꺼리인 배추와 무를 심어 거두는 것으로 이모작을 한다.

나의 삶 역시 이모작 파종기에 들었다


    어느새 예순 고개를 넘었다.

돌이켜 보면 내외간에 눈부신 공(功)이나 부끄러운 과(過)없이 살았다고 생각한다.

삶의 굴곡도 있었지만 감당할 만 했다.

이제 남편은 직장에서 은퇴했고, 자식은 결혼하여 독립했다.

화려한 노후는 아니더라도 두 식구 생활에 궁핍하지 않을 만큼은 마련해 놓았다.

내일을 자신할 수는 없지만 아직 건강하다.

한해 절반쯤에 하지 감자와 유월 동부를 수확한 것처럼 나 역시 육십 고개를 넘으며 생애 반농사를 지은 셈이다.

그리고 기한을 정할 수 없는 절반의 농사가 남았다.

내 생애 후반에는 무엇을 파종하여 거둬들일까?

떼돈을 벌려거나 뒤늦게 이름을 만방에 빛내려는 욕심을 부리지는 않는다.

남은 생애 보람되게 살고, 이제까지 내가 엮어 놓은 사람과의 얼개를 원만히 유지하여

마무리하려는 의지가 굳을 뿐이다.

예기치 못할 재해나 복병의 불안이 있지만 치열한 경쟁에서 한 발 물러났고,

반 농사는 끝내 놓았다는 안도감이 여유를 준다. 

욕심을 부리자면 나 자신만 힘들어지므로 내 형편과 적당히 타협하는 지혜도 이 나이 되어서 깨닫는다.

내 인생 후반기 농사, 해마다 먹을 만큼 심어 거두는 하지 감자, 유월 동부 작황 정도라면 더 바랄 나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