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우야, 머루야
                                                 박찬정

  “진옥아! 우떤노? 귀엽제? 잘 키워봐라.”
  장승포에 다녀오신 할아버지가 걸망에서 강아지 한 마리를 내려 놓으셨다.

어리둥절한 강아지는 어미 품을 찾는지 두리번거렸다.

아무리 둘러봐도 파고 들 어미 품이 없자 제 몸을 한껏 오므리고 있다.
  상자에 내가 어릴 적 입던 옷을 깔아 보금자리를 만들어 주었다.
  하룻밤 지내고 나니 내 팔에 머리를 기대고 잠들기도 한다.
  나를 조금씩 믿고 의지하는 것 같다.
  산머루가 익을 무렵 우리집에 왔다고 해서 머루라고 이름 지었다.
  학교에 갔다 오면 집에 아무도 안 계실 때가 많다.
  머루는 툇마루 아래에서 자고 있다가 내가 오는 기척이 나면 쏜살같이 달려와 팔짝팔짝 뛰며 반긴다.
  “머루야! 니도 심심했제? 책보 풀어놓고 니하고 쪼매 놀아주꾸마.”
  엄마가 쪄놓은 감자 두 개를 꺼내어
  “나 한입, 머루 한입.”
  “또 나 한입, 머루 한입”
  머루와 가실바꾸미 오솔길을 뛰어 다니며 놀았다.

 “머루야! 요것 좀 봐라. 노루귀꽃이 피었네.”
  얼룩 제비꽃으로 만든 반지는 내가 끼고, 동백꽃잎을 마른 풀에 꿰어 만든 목걸이는

머루의 목에 걸어주었다.

  이젠 친구가 없어도 심심하지도 외롭지도 않다.
  “머루야! 여긴 장수바위고 이건 고로쇠 나무야. 그리고 저기 봐봐. 동네에서 제일 큰 집 보이지?

누우야가 다니는 장승포 국민학교란다.”
  나는 학교를 가리키며 머루에게 자랑했다.
  학교에서 가실바꾸미로 올라오는 길에서 내려다보면 장승포항과 학교, 마을,

빨간 등대 하얀 등대가

아름다운 풍경화처럼 한 눈에 보인다.
  “머루야! 저 너머로 가보자. 거기서는 지세포가 보여. 지세포에는 시집간 우리 고모가 살아.

나는 고모가 보고 싶을 때면 거기에 올라가서 ‘고모야’ 불러보곤 하지.”
  머루와 더 놀고 싶지만 엄마가 물질에서 오시기 전에 보리쌀을 씻어 불려놓아야 하고,

마루 걸레질도 해야 한다.
  머루는 내가 보리쌀을 씻을 때도 마루 걸레질을 할 때도 졸졸 따라 다닌다.

나도 그런 머루가 싫지 않다.
  이제 머루는 가실바꾸미가 낯설지 않은가 보다.
  엄마가 물질 가실 때 따라나서기도 하고 나의 등굣길에 앞장서기도 한다.
  “머루야! 집에 가 있어. 학교까지 따라오믄 마을 사람들이 니를 혼낼지도 몰라.

얼른 집에 가 있어. 알았제”
  하얀 등대 입구까지 따라 오던 머루는 집으로 갈 때도 있지만 부득부득 학교까지 따라 올 때가 있다.
  할 수 없이 새끼줄로 목줄을 해서 교실에서 빤히 보이는 느티나무에 매어둔다.

내가 창가에서 손을 흔들면 머루가 걱정 말라는 표시로 꼬리를 살랑살랑 흔든다. 
  “머루 똥개야! 뭐하노? 똥 묵나?”
  “머루 니 몇 학년이고? 네 이름이나 쓸 줄 아나?”
  장난꾸러기 반 친구들이 소리를 지르며 놀리면 머루는 벌떡 일어나 컹컹 짖는다.

나는 그때마다 가슴이 철렁한다. 지난번 애들이 머루에게 장난으로 모래를 뿌려

흥분한 머루가 이리 뛰고 저리 뛰는 바람에  식겁을 한 적이 있다.
  “느그들 머루 우습게 보지마라. 서당 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데

머루도 머지않아 한글을 깨치고 구구단을 외우게 될지 우찌 아노.”
  우리 반에는 머루 말고도 출석부에 이름 없어도 학교 오는 아이가 또 있다.
  길례는 종종 동생을 업고 학교에 온다. 엄마가 바빠서 애기 볼 사람이 없다고 한다.

선생님도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하셨다.
  애기가 책상 밑으로 기어다니기도 하고 배 고파서 울기도 한다.
  머루는 교실까지 따라 오지 않아서 천만다행이다.
  머루와 집에 올 때는 곧바로 오지 않고 가실바꾸미를 돌아다니다가 온다.
  하루는 머루와 내가 엄마가 물질하러 가는 바닷가에 따라 갔다.
  나는 바위틈에 숨은 돌게를 잡고, 머루는 엄마가 벗어 놓은 겉옷과 고무신을 지키며 엄마를 기다렸다.

  엄마가 물속에 들어가 한참 안보이면 안절부절 하다가 컹컹 짖는다.
  나는 돌게 잡는 재미에 정신이 팔렸는데 머루는 엄마를 걱정하며 지켜보고 있으니

나보다 효심이 몇 갑절 깊다.
  물질하러 간 엄마를 기다리다가 볼 멘 소리를 했다.
  ‘엄마는 나보다 물질을 더 좋아하는갑다. 내가 기다리는 줄도 모르고.

맨날 일 하느라 바빠서 나에겐 관심도 없네.‘
  머루가 어이없다는 듯 바라본다.
  “머루야! 느그 엄마는 어디 있노? 엄마 안 보고 싶나? 이자삔건 아니제?”
  “엄마를 우얘 이자삘기고. 꾹 참고 있는기지.“
  머루는 눈물을 떨굴 듯 슬픈 눈으로 나를 쳐다본다.
  “그래. 우리 식구하고 오래오래 살자. 내가 크면 돈 벌어서 니한테 맛있는 거 많이 사 주꾸마.

우리 엄마는 이쁜 옷도 사 달라 쿠는데 니는 옷은 필요 없제?”
  “누우야! 약속했데이. 내는 누우야 말이라면 뭐든지 믿는데이.”
  머루는 금방 환한 얼굴이 되어 내 손을 핥는다.
  머루와 나의 신뢰감과는 달리 아버지는 머루가 제 밥값을 못 한다고 하셨다.

산짐승이 밭작물을 망쳐놓거나, 살쾡이가 닭을 물어간 날은 ‘머루란 놈 있으나 마나’라고 화를 내셨다.

왠지 모르게 불안했다.
  나는 5학년이 되고 큰 오빠는 군에 입대했다. 입대하기 전 큰 오빠는 나에게 부산 구경을 시켜줬다.
  장승포항에 서 있거나 지나가는 고깃배는 많이 봤지만 배를 타는 것은 처음이다. 영복호 배를 탔다.

영복호가 운항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 우리 반에는 그 배를 타 본 아이들이 두세 명밖에 되지 않는다.
  타기 전 설레던 기분은 곧바로 울렁거림으로 바뀌었다.

장승포 하얀 등대가 멀어져 갈수록 뱃멀미는 점점 견디기 힘들었다.
  부산에 내려 구경할 때는 뱃멀미를 잊어버렸다. 신기한 것이 많아 어디에 눈을 둬야 할지 몰랐다.

오빠가 광복동 서점에서 책을 한 권 사주었다. 안네 프랑크의 ‘안네의 일기’ 이다.
  부산에 다녀 온 후 도시를 동경하게 되었다.

어지럽고 울렁거리는 배는 타고 싶지 않았지만 부산은 또 가고 싶었다.

한번 가 본 부산에 대한 동경으로 내 마음은 잔뜩 바람이 들었다. 학교는 건성으로 다녔다.

엄마에게는 학교에 남아 공부했다고 거짓말했다.

그날도 수업을 마치고 친구들과 놀다가 늦게야 가실바꾸미 가는 산길로 들어섰다.

익숙한 길이라도 숲속 길은 더 어둡다. 어둠 속에서 뭔가 벌떡 일어나는 게 있었다.

놀라서 뒤로 나동그라질 뻔했다.
  “머루야!”
  나는 화난 목소리로 소리쳤다. 머루는 내가 걱정되어 산길에 나와 기다리고 있었다.

저녁 이슬을 맞은 머루의 털이 축축했다.
  “누우야! 학교에서 늦게까지 공부했나?”
  “머루야! 미안하다. 누우야가 앞으로는 놀지 않고 일찍 돌아올게.”
  “어서 가자.”
  “내는 누우야를 믿는데이. 진짜다.”
  그 후로는 학교 끝나는 대로 귀가했다. 나의 허황된 도시 바람도, 변덕스러운 감정도 점차 가라앉았다.
  그 다음해 여름 복달임 할 개를 산다고 장승포 사람이 집에 찾아왔다.
  아버지도 팔 생각이 있는 것 같았다.
  나는 가슴이 철렁했다. 눈치 챈 머루는 마루 밑 깊숙이 숨었다.
  뒤란으로 가서 마루 밑에 숨은 머루를 작은 소리로 불렀다.
  머루가 포복하듯 기어 나왔다.
  몰래 머루를 데리고 뒷산으로 뛰었다.

겨우 한 숨 돌린 머루와 나는 산개울에 엎드려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이대로 집에 가면 머루가 팔려 갈 것 같다.
  머루와 나란히 하얀 등대에 쪼그리고 앉았다.
  배에서 꼬르르 꼬르르.
  아까 마신 산개울 물이 뱃속에서 흐르나보다.
  “투둑 투둑” 빗방울이 떨어진다.

  윗옷으로 머루를 덮어주며
  “머루야! 지나가는 비야. 염려 마.”
  하얀 등대 주변엔 비 피할 곳도 없는데 빗줄기가 세어진다.
  “머루야! 가자. 비 피할 만한 데를 생각해 냈어.”
  머루와 가실바꾸미 용바위로 향했다.
  용바위 가는 길은 늘 다니는 길이 아니라서 풀이 무성했다.
  “머루야 여기가 용바위란다. 여기서 비 그치길 기다리자.”
  용바위 밑은 비가 한 방울도 떨어지지 않았다.
  “머루야! 여기서 정성껏 기도를 드리면 삼신할매가 애기를 점지해 준대.

마을 사람 중에는 여기서 기도하고 아기를 낳은 사람들이 더러 있어.”
  머루가 믿을까 말까 하는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억수같이 쏟아지던 비는 뜸해졌다.
  “우리 그만 집에 가자. 비가 와서 개 사러 왔던 사람도 갔을끼다”
  용바위에서 집으로 가려니 길이 없어 수풀 속을 헤치며 가야했다.

비에 젖은 풀과 진흙으로 발 딛는 곳마다 미끄러웠다.
  그때
  “어어어 엄마야!”
  가파른 낭떠러지로 미끄러져 떨어졌다.

내가 머루의 목줄을 쥐고 있어서 머루도 덩달아 굴러 떨어졌다.

  “누우야! 괘안나?”
  “응. 나는 팔이 조금 까지고 엉덩방아를 찧었어. 니는 괘안나?”
  둘이 다 진흙투성이가 되긴 했어도 큰 상처는 없었다.
  올라가려고 안간힘을 썼다. 풀뿌리를 잡아도 금방 뽑혀서 소용이 없었다.

우짜꼬. 우짜믄 좋노. 기진맥진했다.
  머루가 낭떠러지에서 올라가려고 해도 진창이 된 흙이 자꾸 무너져 내렸다.

뜸하던 비는 다시 빗방울이 굵어졌다.
  머루도 어쩔 줄 모르고 있다. 나는 자꾸 눈이 감겼다.
  “누우야! 자면 안된데이. 잠들면 큰일난다안카나. 정신 차려라.”
  머루는 나의 옷자락을 물고 흔들었다.
  어느덧 가실바꾸미 숲에 어둠이 내리기 시작했다.
  나무 사이로 비바람 치는 소리가 귀신소리 같아서 머루를 꼭 끌어안았다.
  “진옥아!  머루야!”
  부모님이 머루와 내 이름을 번갈아 부르며 찾는 소리가 멀리서 들렸다.

대답을 하려고 해도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머루가 큰 소리로 짖기 시작했다.
  “컹컹 컹컹”
  “진옥아! 머루야!”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컹컹 컹컹” 머루가 대답하듯 큰 소리로 짖었다.
  “머루야 어디 있노?”
  머루 짖는 소리 방향을 따라 엄마 아버지가 허겁지겁 달려오셨다.
  “아이쿠! 진옥아 이기 뭔 일이고.”
  엄마 아버지는 부리나케 칡넝쿨을 베어와 내 허리를 묶어 끌어올렸다.

 머루도 목줄을 잡아당겨 무사히 올라왔다. 빗줄기는 더 거세졌다.
  나는 사흘간 끙끙 앓다가 일어났다.
  엄마는 내 등짝을 한 때 때리며
  “가시나야! 어메 속 좀 엥가이 썩혀라. 그래 어디에 있었노?”
  “저기 용바위 아래에….”
  “그랬어? 휴, 내가 딸을 낳으려고 용바위에서 기도를 얼매나 올렸는 줄 아나?

휴, 삼신할매가 굽어 보살폈구나….”
  엄마의 계속되는 한숨에 머루는 제 탓이라고 여기는지 시무룩한 얼굴로 제 집에서 나오지 않았다.
  아버지도 옆에서 한 마디 하셨다.
  “머루 짖는 소리에 니를 찾은 기다. 머루 아니었으면 큰일 날 뻔 했다. 앞으로 쭉 잘 돌봐줘라. 알았제.”
  “머루야! 고맙데이. 니 덕분에 살았다아이가. 니는 내 생명의 은인이다”
  나는 댓돌에 앉아 머루의 얼굴에 내 얼굴을 부볐다.

  “무신 소리고. 누우야 덕분에 내가 살아 있는기지.”
  “그래 그래 우리는 쌤쌤이다.”
  머루도 멋쩍은 듯 혀를 낼롬거렸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