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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2월 24일 화요일 오후 3시 반.

인천공항 B18 카운터 앞에서 우리는 만났다.

10년을 벼르고 기다린 해외여행을 떠나는 발걸음은 가볍고도 설렜다.

긴 연휴 내내 북새통이던 공항도 많이 진정되어 있었다.

목적지는 베트남 다낭.

일기예보는 우리가 도착하는 다음날과 그 다음날에

뇌우를 동반한 비가 내릴 것이라고 예고하고 있었다

그래도 우리는 아랑곳하지 않고 떠났다.

인천에서 저녁 6시 40분에 출발한 대한항공 여객기는 밤 9시 45분에 다낭에 도착했다.

베트남은 한국보다 2시간이 늦었다.

우리는 현지 시각으로 밤 10시 반 쯤에 숙소에 들어가 짐을 풀었다.

숙소는 공항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빈펄 럭셔리 다낭 호텔.

모든 것이 다 잘 갖추어진 아름다운 곳이다.

 

둘째 날, 뇌우는 커녕 구름조차 없는 화창한 날씨였다.

비가 올까 봐 챙겨들고 간 우산을 양신으로 쓰고 다니며

베트남 마지막 왕조의 수도였던 후에성과 황궁을 구경했다.

티엔무 사원. 민망 황제릉, 카이딘 황제릉 등을 돌아보며 짠한 마음을 감출 수 없다.

황제의 위엄을 상실해 가는 나약한 왕조의 비애가 그대로 묻어난다.

그들은 후손이 프랑스의 식민지 백성이 되어  100년 세월을 보내게 될 줄 알았을까?

다낭에서 후에까지의 거리는 150Km 남짓이었지만 이동 시간은 3시간 걸렸다.

고속도로가 아니었고, 오토바이와 자전거가 함께 뒤엉켜 다니는 길이라

속도를 낼 수가 없었다.

왕복 6시간 동안 버스 안에서 우리는 근대 베트남의 슬픈 역사와

한국의 근대사에 대하여 자세하게 공부할 수 있었다.

현지에서 만난 가이드는 배우 송강호와 골프선수 최경주를 묘하게 빼닮았다.

본인도 스스로를 강호오빠라고 칭했다.

강호 오빠는 역사에 대해 많이 알고 있었고 이야기를 잘했다.

 

셋째 날,  역시 비는 오지 않았다.

봄날의 기가 세고, 이 여행을 위해 중보기도해 주시는 분들이 많다는 증거다.

오전에 느긋하게 호텔의 풍광을 즐기며 사진도 찍고 놀았다.

잘 다듬어진 정원엔 계절을 무시한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다.

국화와 코스모스가 사르비아, 베고니아와 함께 어우러져 있는 것이 말이 되는가? 

대성당에 들러 사진을 찍고, 머드 온천탕에서 점심을 먹은 후에

해발 1570m 꼭대기에 놀이시설을 조성한 바나 힐에 올라갔다.

케이블카 타러 가는 길도 에스칼레이터가 끝도 없이 이어지는 가파른 능선이고

케이블카의 길이가 6km, 올라가는데 20분 이상 걸린다.

거의 수직에 가까운 가파른 능선을 따라 외줄에 달린 케이블카가 간다.

천야만야 아찔한 낭떠러지가 발밑에 있다.

아찔한 쾌감과 등골이 서늘한 두려움이 교차하고 귀가 멍멍하다.

나무를 위에서 관찰하고 싶었던 식물학자 순애언니는 탄성을 연발한다.

쉽게 보기 힘든 숲의 캐노피를 마음껏 보게 되었다며 꼭 다시 오고 싶다고 했다. 

이번 여정에 이런 코스가 있을 줄 몰랐다. 보너스다.

산에서 내려와 전신마사지를 받았다.

따끈하게 데운 돌로 등을 문지르니 온몸의 기혈이 다 통했다.

내 아이가 안마를 해주는 것처럼 마음이 편하고 피로가 확 풀린다. 참 고맙다.

 

마지막 날.

호텔 식당의 종업원들도 며칠 새에 얼굴을 익혔다.

정갈하고 맛있는 음식에 풍광이 좋은 테이블, 정중한 서비스가 맘에 든다.

아무 데도 안 나가고 호텔에서만 놀아도 좋을 것 같다.

오전 시간을 호텔에서 보내고, 짐을 챙겨 차에 싣고  아쉬워 하며  체크 아웃을 했다.

나중에 아이들 데리고 꼭 다시 오리라.

바다를 보고 있는 해수 관음상에서 내려다보는 바다는 태종대를 닮았다.

진홍색 부겐베리아가 만발하고 포인세티아가 거목이 되어 새빨간 꽃을 피우고 있다.

겨울이 없는 땅이라는 걸 새삼 느꼈다.

베트남에 왔으니 한식만 먹을게 아니라 제대로 된 월남쌈과 쌀국수를 먹어보란다.

우리 입맛에 안 맞는 향신료를 다 빼고 먹으니 정말 맛있다.

이번 여행은 먹을 것도 참 풍부하고 입에 다 맞았다.

한국 음식도 그립지 않게 매일 먹었다.

한국에서부터 우리를 따라 온 해동 투어 김 준석사장은 예의바르고 친절한 청년이다.

정중한 태도로  세밀히 관찰하고 살뜰하게 보살핀다. 덕분에 참 편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호이안에서

씨클로를 타고 석양과 야경을 동시에 즐긴 것 또한 보통 큰 행운이 아니다.

오래된 전통 가옥과 전통시장을 구경하며

사탕수수를 즉석에서 착즙한 주스도 마시고, 야자수 열매의 물도 마셨다.

어릴 때 교과서에서 배우고 상상으로만 먹었던 것을 직접 맛 본 것이다.

마지막 만찬은 아름다운 정원에 마련된 캔들라이트 디너였다.

마치 영화 속 주인공처럼 무드 있는 음악을 곁들인 품위 있는 식탁을 대했다.

춥도덥도 않은 날씨가 우리들 마음을 더욱 들뜨게 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다들 일어서서 한목소리로 교가를 불렀다.

가슴이 뭉클하고 괜히 벅차다.

우리 삶에 이런 순간이 기다리고 있었구나.

살아오는 동안 너무도 힘들고 어려운 고비가 많았는데 잘 참고 이겨내길 잘했다.

이렇게 마음이 통하는 사람들과 흐뭇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여행을 하는 내내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되고 위로가 되었다.

말없이  서로 섬기고 베풀며, 상대방을 먼저 배려하는 모습에 감동을 받았다.

10년 세월이 결코 짧은 것이 아니다.

굳이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서로의 마음을 읽어낼 수 있으니 말이다.

 

봄날이 온다.

우리들 삶의 후반기에 아름다운 봄날이 또 오고 있다.

생각할수록 더욱 소중하고 귀한 <봄날>이다.

함께 떠나지 못한 봄님들도 모두 우리들 마음주머니에 담겨 있었다.

좋은 경치 보면 보여주고 싶어서 사진을 찍었고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도 늘 생각이 났다.

다음엔 꼭 같이 먹고 마시며 우리들의 시간을 함께 공유하며 즐기리라 ~

 

우리는 다낭 공항에서 27일 밤 10시 15분 비행기를 타고 밤새 날아서

인천 공항에 2월 28일 새벽 5시 30분에 무사히 도착하였다.

한국은 아직 쌀쌀한 날씨지만 우리들 마음엔 이미 봄날이 왔다.

 

 

이번 여행을 주선해 주신 순영 언니와

부족한 인원수를 채워주기 위해 선뜻 동행해 주신 동문님들,

그리고 이 여행을 위해 기도해 주신 모든 분들 덕분에 잘 다녀왔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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