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 | 포토갤러리 | - 게시판담당 : 12.김춘선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우리에게 진짜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알았습니다.
평범한 일상,
서로 곁을 지키는 가족,
마음이 통하는 친구,
시공을 초월해서 대화할 수 있는 온라인 세상,
자유롭게 활보할 수 있는 동네.
그 중에서도 가장 소중한 존재는 당신.
빛이고
생명이고
길이며
살아갈 이유가 되시는 당신.
당신 덕분에 제 심장은 멈추지 않고 뜁니다.
당신 때문에 제 걸음에 힘이 실립니다.
이 시간, 저는 오롯이
소중한 당신을 위하여 존재합니다.
가만히 눈을 감고 숨을 깊이 들이쉽니다.
당신의 숨결, 제겐 생명입니다.
그러게 말야~ㅎ
행동으로 보여주는 사람과 말로 천냥빚 갚는 사람 어떤게 더 좋을까?
우리 남편은 말을 이쁘게 해서 난 엄청 사랑받고 사는줄 착각하고 살았었다.
예를 들어 내가 화장을 하면 안해도 이쁜데 뭐하러 해~
커피를 타달라고 하면서 내가 타먹을 수도 있지만 당신의 사랑이 전해져서 당신이 타주는게 좋다고 ~ㅎ
뭐든 당신 덕분이야~
그래서 이 바보는 몸을 아끼지 않고 집안일을 혼자 척척 해냈다.
성당에서 주관했던 ME 교육을 받는데 편지 교환하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주제는 "남편이 나에게 해준 행동중 가장 고마웠던 것을 써라"
난 너무 많은것 같아서 길어질까 걱정을 하며 쓰려는 순간~
앗~ 이럴수가~
행동해준것이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전부 말로 떼운것 이었다.
펜을 붙들고 아무리 생각해봐도 생각이 안난다.
그 순간 사기 당한거 같은 기분~
지금도 가끔 그때의 그 느낌이 생각이 난다.
지금도 뭘 해주면 "감사합니다. 다 당신 덕분이야~"
아마 인선이 남편분은 행동으로 보여주는 분 인듯~ㅎ
오늘 이곳은 ' Happy Father's Day ' 랍니다.
어쩌면 오늘부터 성당문을 열지도 모른다고 해서
다음으로 미뤘던 아들네와의 만남이 오늘 새벽에 보낸 문자로
부랴부랴 준비하고 점심먹으러 다녀왔지요.
코로나바이러스로 집을 팔고 이사하는데,
아들네가 좀 많이 힘들었었지요.
서로 오고가지도 못하고 아버지의 손이 필요했지만,
혹시라도 서로 만났다가 유행병에 걸리기라도 하면 안되니까
절대로 오지도 못하게 하고...
해서 이사 후에 두 달이 넘어서야
'아버지의 날'을 핑계로 또한 격리조치가 완화되어서
기쁜 마음으로 다녀왔지요.
가서 손녀들과도 허그도 안하고 주먹인사를 했지요.ㅎㅎ
당연히 아들과 며느리와도 주먹인사로...ㅋㅋ
며늘이 만든 물냉면과 함께 아들이 뒷뜰에 나가 갈빗살바베큐해오고
또 커피도 아들이 만들어주고...
"부모님 오시는데 면도좀 하시지?"
"아니 ~~이렇게 자란 수염을 엄마아빠한테 보여주고 싶어. 분명히 엄마아빠가
'야! 뭐야 ~~꼭 산적 같잖아?!' 하실꺼야"
우리가 아들집에 도착해서,
남편이 빌려주는,부엌타일을 아들이 손수 붙이려고 짜르는 머쉰과 글루통이 무거우니 아들을 나오게...
ㅎㅎㅋㅋ 나오는 아들을 보고는 이구동성으로
"어머나 ~~야! 꼭 산적두목 같아~~~!!"
아들내외의 껄껄호호의 내막을 알곤 우리도 웃었지요.
헌데 자란 머리와 수염이 꼭 캐나다수상을 닮았더라구요.ㅎㅎㅎ
(아들내미 뻑자랑???)
세상의 모든 아버지들~~
"아버지의 날을 축하합니다~ ~ ~"
아버지의 날도 있구나.
난 뭘 책임지는 자리가 부담스러워 싫기 때문에 항상 남자들 짠~ 한 마음이 있어.
가장이라는 자리가 어깨가 너무 무거울거 같아.
아버지의 날 ~아버지 들에게 많이 위로가 되겠네.
코로나 때문에 손녀들도 못보네.
우리 딸도 어디 다니지 말란 소리만 하지 오란 소리는 안하네~ㅎ
아~ 옛날이여
다시는 못 올 세월인가?
오늘, 6월 24일은 제가 김포공항을 통해서 캐나다로 온 날예요.
24일에 출발했는데 캐나다에 오니 같은 24일 이더라구요.
해서 꼭 이곳에 산 세월이 43년이네요.
유창한 영어는 못하더래도 대충 저놈들이 하는 말은
'식당개 3년이면 라면을 끓인다'고 하듯이 대충
못알아듣는 말도 대충 얼버무려 넘기기도 하구요.ㅋㅋ
어제부터 43년타령을 해대도 쇠 귀에 경읽듯 하던 남편이,
오늘 남편의 잔디깎는 봉사에 따라가 잡초도 뽑아주었더니
집으로 오는 길에 월남국수 테이크아웃(요즘 식당문 못 열거든요)해서
배부르게 먹고, 남편은 오수를 즐기고
전 봄날에 놀러왔지요, 커피 한잔들고...
이곳 해밀턴과 몇몇 도시들은 지난 금요일에
미장원과 네일살롱과 몰이 문을 열였지요.
해도 레스토랑과 커피집은 아직도 손님은 못받고 픽업이나 배달만 허용해요.
온태리오의 주도인 토론토는 아우성였는지
오늘부터 미장원등을 열게해서 다소 숨통이 트이게 했나봐요.
예전엔 찻길이 7080시대처럼 한가해서 좋다~!했는데
다시 러쉬아워도 돌아오고 바빠졌네요.
오늘만해도 세계적인 감염자 숫자가9.2 밀리언을 넘어섰고,
사망자가 477,000명 이라고...
숫자가 줄어야 안심도되고 뭔가 서광이 비칠것만 같은데
하룻밤 사이에 숫자는 늘어만가니 우찌된 일이래유 ~~~
혼자 아파트에 사시는 친정엄니는
'내가 양노원에 갔으면 몸은 편했어도 벌써 죽었겠지?"
누구든지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
봄날님들 ~~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시게, 영육간 건강을 빕니다 !
43년이나? 젊을때 일치감치 떠났구먼. 미국도 난리이고 카나다도 난리이고 ~두곳에 친한 친구들이 살아서 소식은 듣고 있지. 암튼 한국보다 더 통제를 시켜서 힘들다고 하더라구~ 요즘 황창연 신부님 다볼 사이버 성당에 매일 다니고 있어~ㅎ 발빠른 황신부님~어찌 저리 훌륭한 신부님이 우리 곁에 계신지~감사할 따름.
올해 처음으로 옥수수를 땄습니다.
포구 동네라도 뒷산에서 종종 멧돼지가 출몰하기 때문에
옥수수와 고구마를 심기는 조심스럽습니다.
멧돼지가 옥수수와 고구마를 아주 좋아한다네요.
해마다 엄지 집 가까운 밭에 조금 심지요.
밤이면 멧돼지가 접근하지 못 하도록 지킨 엄지 덕분인지
허수아비 덕분인지 무사히 첫 수확을 했습니다.
다 따봐야 50개나 될까요.
그게 아주 달고 부드러운 홋카이도 스위트콘이지요.
어제 여문 것 몇개를 따서 쪘습니다.
언제나 하는 것처럼 아끼는 그릇에 담아 차려 놓아둡니다.
머리를 조아리고 빌거나 그러진 않습니다.
제단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냥 탁자 위에.
우리 어머니가 그러셨듯이
첫 수확을 했거나, 색다른 먹거리를 했을 때
같이 먹지 못 하여 아쉽다고 먼저 한 접시 차려놓는 겁니다.
내 마음의 위로이고 결국 먹는 사람은 나입니다.
올해는 옥수수를 한자루 더 놓습니다.
지난 오월에 돌아가신 시어머니 몫이지요.
우리 친정부모님 하나씩
시아버지, 시아주버니, 조카 하나씩
.찐옥수수 그릇을 가운데 놓고 우리 엄마가
아이쿠! 안사돈 오랜만입니다..
에구~ 찬정이 부모님이 하늘에서 얼마나 좋아하시겠어? 잘 하는구먼. 제일 중요한것이 마음이지. 아무리 커다란 성당이나 교회에서 돈 많이 내고 미사를 드린들 거기에 부모님 생각하는 애틋한 마음이 없다면 아무 소용없는 짓이지. 문득 문득 돌아가신 아버님 생각이 나면 혼자 중얼 중얼 죄송해요~ 한단다. 살아계실땐 모시는것이 그리도 지루 했는데 돌아가시고 나니 정말 못한것만 생각나는구먼.
자신을 소중히하고 남을 존중하세요.
나이가 들수록 현명하기 때문에
우리 모두는 다음의 것들을 천천히 알게 됩니다.
300불짜리 시계든 30불짜리 시계든
가리키는 시각은 다 같다는것.
300불짜리든 30불짜리든 지갑이나 가방안에
일정금액의 돈을 그안에 넣는다는건 다 같다는것.
15만불짜리 자동차나 3만불짜리 자동차나
가는 길도 거리도 같고 결국 같은 목적지에 도달한다는것.
300불짜리 포도주나 10달러짜리 포도주나
숙취를 느끼는건 같다는것.
300평 집에 살든 3,000평집에 살든
느끼는 외로움은 같다는것.
당신은 당신 내면에 진정한 행복이
이 세상 물질로부터 오는게 아님을 알게될 것입니다.
일등석이든 이코노믹석이든 비행기가
추락한다면 모두 같이 추락하죠.
그러므로 당신이 동료든 막역한 친구든 평범한 친구든 형제자매든
만나서 떠들고 웃고 말하고 노래부르고
온갖 것들에 대한 얘기할 수 있다는게
진정한 행복이란걸 아시기를 희망합니다.
---좋아서 이곳에 합당해서 퍼옴 ---
봄님들은 어찌 생각하시나요?
지인의 얘기
그의 친정 막내 여동생이 결혼 안 하고 어머니와 내내 살았어요.
막내 나이가 59세라지요. 젊은 애들적에는 경제활동을 했는지 모르지만
나이 들면서는 친정 어머니 수발이나 들며 둘이 살았나봐요. 아버지는 20여년전 돌아가시고.
2남 3녀를 둔 어머니는 막내을 뺀 나머지 네명의 자식이 30만원씩 내고
어머니의 기초노령연금 30만원을 보태어 두사람 생활비로 쓴다고 합니다
89세인 어머니가 건강이 나뻐지고 있다나봐요.
그 어머니 생각에 지금은 어머니를 위해 자식들이 30만원씩 내놓지만
당신이 죽으면 막내는 뭘 가지고 사나 걱정이 되겠지요.
자식들이 오면 그런다네요. ' 내가 죽더라도 막내 생활비를 대줘라. 그 아이가 나를 수발해 준 덕으로
느그들이 편히 살지 않았느냐.'
저의 지인은 언니니까 그리고 친 동기간이니까 그러마 했고 그럴 형편도 되지만
올케들은 어머니의 그런 부탁을 귓등으로도 안 듣는다네요.
나이 들어가는 오래비가 머지않아 은퇴인데 구구장장
손발 멀쩡한 동생 생활비를 댄단 말이냐고 제 손으로 벌어서 쓰라고 한다네요.
그런 얘기를 들은 우리들도 올케 말이 틀린 말 아니라고 했어요.
어머니 수발을 위해 다니던 직장을 그만 둘 수 밖에 없던 것도 아니고,
어머니 보살피느라 결혼을 못 한 것도 아니고.
아뭏든 어머니 모시고 사느라 힘들었다 하지만 그거 유세할 일 아니다.
여태까지 어머니 덕에 일 안하고 공짜로 산 거는 왜 모르냐.
그 이야기 들은지 두어 달 되었는데 남의 얘기지만 난감한 숙제라는 생각이 듭니다.
듣고 있던 한 사람이 ' 제일 좋은 방법은 짝을 지어주는건데.'
각자의 살아온 경험이 다르고 이런 얘기는 정답이 없기 때문에 아마 의견이 다 다를것 같아. 짝을 찾은 방법이 젤 좋을것 같기도 하지만 그것도 본인이 혼자 사는 것이 더 좋으면 못하는거구~ 자연스럽게 좋은 사람이 생겨서 결혼하면 몰라도 돈때문에 하는 결혼은 행복할거 같지도 않네. 살던 집이 있을텐데 그걸 모신 동생 주면 되는데 그것도 여의치 않은가 보네. 여유 있는 사람은 주던 대로 주면 좋고 강제 사항이 아니니 안주면 못받는 거지. 그런데 내 친구 20여년 전에 망해서 빌딩 넘어가고 계속 어렵게 사는 애가 있는데 살만하다네. 집 없고 차 없으면 나라에서 굶어죽지는 않게 한데. 병원비도 거의 대주고 기초연금은 아들이 있으면 못받지만 어디갈때 택시를 부르면 사는 도시 내에선 무조건 1000 원이래. 정부에서 보조해주는거래. 친구가 아파서 입원했다 퇴원하는데 내가 너무 딱해서 퇴원시켜주러 병원에 가겠다니까 택시 천원이면 오는데 뭐하러 기름값 없애고 파주까지 오냐고 못오게 해서 그때 알았지. 암튼 사족이 길었지만 아직 안돌아가셨잖아~ㅎ 미리 걱정하지마라 해. 닥치면 다 어찌어찌 돌아가게 되있고 주면 받고 안주면 또 방법이 생겨 그리고 60이 안됬으니 본인도 일할수 있지. 돌아가신뒤에도 계속 형제들 돈 바라고 있는것도 안된다는 생각.
이제 수다방도 문 닫아야 할라나? 컴 열기가 귀찮은지 잘 안들어오네. 에어컨 틀어놓고 수박 잘라 놓았어. 어여들 들어와~ㅎ
안되요.
경로당도 복지괸도 다 문 닫았는데
壽茶房 마저 문 닫으면 너무 쓸쓸해요.
저도 오늘
옥수수를 한 소쿠리 쪄놓을테니
화림 언니가 쪼개놓은 수박하고 옥수수 드시러
어여 어여 오세요.
옥수수와 수박이 있으니 문전성시를 이룰것 같은 예감.
얼음 동동 띄워 냉커피까지 타 놓았어요.
녹기 전에 어여들 오셔요.
ㅎㅎㅎ
겁나서 들어왔어요
저는 어린시절 옥수수랑 수박먹고 한번 체한후론
보기도 싫어서 안 먹었는데...
그 바람에 수박을 좋아하던
남편도 맘껏 못먹고 여름을 지냈어요
내가 싫으니 안 사니까요
아이들이 크면서 같이 먹다보니
괜찮아져서 잘 먹게 되었어요
화림언니 ~
많이 먹어도 되죠?
저는 언니가 다섯인데
언니가 다섯이다보니 2살 많은 바로 위 언니 한테는
깔보고 언니 소리를 안하고 컸어요
그러니 언니는 얼마나 억울했을까요?
제가 철이 들었는지
이제라도 언니라 불러줘야겠다고
열심히 부르는데
언니는 매번 자기를 부른다는걸 모르고
누구?
하고 되물어요 ㅎㅎ
지금 부천중동 바로 요 언니네 와 있어요
형부는 자청해서
앞 치마 두르고 고무장갑 끼고
정성껏 설겆이 마치고
마른 빨래 정리하고 계시고
언니랑 나는 놀고 있어요
오랫동안 못 만나던 언니들과 마음껏 정을 나누고 계시네요.
수박도 드시고 옥수수도 드시면서 느긋하게 즐기세요.
근디 이 점방 쥔 아지매는 요즘 토옹 볼 수가 읎네요.
이삿짐 풀어놓고 슬그머니 나가드만 깜깜.
요즘은 어델 가나 전화번호 적어라, 주소 적어라 허니께
수배하려구 들믄 반나절도 안 걸려 연행되어 오것지만
뭐 그럴 건 읎구요.
암튼 수국을 보러 어드멘가 갔더라는 정보가 있으니
머잖아 점방에두 한븐 들르것제요.
바람 난거 딱 걸렸네 ㅎ
제가 요즘 길바람 났어요.
눈 뜨면 무조건 걸으러 나가고 싶어요.
주향이가 말하던 걸생눕(누)사 ~
제 좌우명이 되었어요.
요즘은 책도 보기 싫고 글도 쓰기 싫고
그냥 걷고만 시포요. ㅋㅋ
호중이 노래 들으면서,
팬텀싱어 해설방송 들으면서 걸으면 행복해요.
머리 속이 깨끗이 정리되니 좋고
다리에 근력이 생겨 걸음이 가벼워져 좋고
대책없이 자꾸 불어나던 뱃살을 정리하니 더 좋고 ~
그래도 요기는 한순간도 잊지 않고 있으니 염려 놓으셔요.
화림온니 ~
난 수박 2쪽, 옥수수 3개 챙겼어요.
찬정이가 기른 옥수수라니 욕심이 발동, 헤헤헤 ~
코로나로 아직은 조심스런 강화나들길을
작년 이만때에 시작해서 춘선언니맹키로
걷다보니 생긴 근력에 가벼워지는 내몸에
심쿵해서는 함께 하게 해주신 그분들이
너무 감사했던 기억으로 지금의 언니의
바람에 박수를 보냅니다.
우리 12기에서 따로 또 함께 매일 만 보 걷기 하는 거 아시죠?
처음엔 가볍게 시작했는데 이게 아주 본격적인 일이 되어버렸어요.
많은 친구들이 알아서 적절한 시간에 걷고 되도록 같은 앱을 깔아 그 결과를 저녁 때 단톡방에 올려요.
거의 만 보 정도 걷는데요, 요즘엔 거의 15000보 정도 걷더라고요.
매일요.
그 중에 이 분위기를 탁 잡고 하루도 거르지 않고 꾸준히 걷고 있는 친구들이 있는데
대표적인 사람이 제주도 혜숙이와 춘선이에요.
더 많은 친구들이 있는데 우리 봄날에서는 두 사람이 대표예요.
내 기억에 두 사람은 하루도 빼먹지 않은 것 같아요.
혜숙이가 걷는 거 취미 없었던 거 잘 아시죠?
과거는 소용없어요.
완전히 걸음 달인이 되었고, 이제는 다리도 아프지 않대요.
비가 와도 걷고, 해가 떠도 걷고, 제삿날도 걷고.....
아마 걸으면서 뭐라고 규정할 수는 없지만 각자 뭔가 느끼는 바가 있었을 것 같아요.
그야말로 자기만의 시간, 차오르는 자신감......
춘선이는 실제 50대에는 아주 몸이 좋지 않았는데 지금은 새 인생을 살고 있어요.
춘선이는 거의 매일 2만 보 가까이 걷고 있어요.
씩씩하게 익숙한 혹은 낯선 공간에 스며들며 걷는 혼자의 이 시간이 앞으로의
춘선이의 생을 빛나게 해 줄 것 같아요.
저는 게으름뱅이에다 감정 기복이 심해서 걸었다 말았다 해요.
사실 우리동네는 걷기에 좋아요.
그런데 아무리 걸어도 만 보 걷기가 쉽지는 않아요.
같은 코스를 더 반복하고 싶지도 않고.
힘차게 칠천 보 정도 걸으면 저는 됐다 싶더라고요.
그래도 만 보 가까이 걸으려고 노력은 해요.
순전히 혜숙이 때문이에요.
얘들아 오늘은 이만큼 걸었어 이렇게 말하며 혜숙이가 올리면
에구...... 나가자 나가자 하며 엉금엉금 기어 나가요.
혜숙이 맛있는 거 사 줘야 하겠지요?
난 안 걸으면서도(이번 일주일은 여러 일이 겹쳐서 정말 안 걸었어요.) 친구들이
타다다닥 걸음수 올리면 다행이다 이런 생각이 들어요.
오늘 아침엔 오랜만에 인왕산 올라갔다 왔어요.
힘들어서 죽을 뻔 했는데 다녀오니 9000보 정도.
봄님들~
우리 같이 걸어요. 서로에게 힘을 주면서요.
힘이 안 날 때는? 엎어져 자지요 뭐.
맨날 엎어져만 있겠어요?
일어나겠지요.
그걸 믿으며.
정말 대단하다할 일이네요,
제주도 혜숙언니가 걷는다는건요.
비슷했던 1봄님으로 감히 말씀드리면
곁에서 독려하고 걷기의 힘을 알게해준
분들에게 혜숙언니도 저만큼 고마울거예요.
전 10기 권칠화선배님과 강복희선배님덕에
걷기의 매력과 그저 걷다보면 걷고있는
나를 발견한다는 걸 알았을 때 참 고마워서
찔끔찔끔 했거든요.
요즘은 밭에서의 묵언명상에 빠져서
걷기가 매일은 아니지만 기회만 되면
걷게되더라구요.
동네 슈퍼도 차로 가던 제가요.
~~
와우~ 대단한 동생들~ 혜숙이는 안걷기로 소문난 앤데~ 정말 대박이다~ㅎ 제주의 맑은 정기가 몸을 움직이게 하나봐 난 그저 똘똘이 산책 시키느라 하루 30분 정도 걷고 들어와. 주향이도 그러구 모두 어려운 시기를 잘 극복하고 있네.
점 보러 왔습니다
박찬정
쭈빗 쭈빗, 주춤주춤
친구가 내 등을 떠민다
영험하시다는 소문 듣고 왔습니다.
-왔으면 앉아 봐
한참이나 아래로 뵈는데 말부터 쫙 까는 ㅇㅊ보살
내어준 종이 한 장에
가족 생년월일을 종합적으로 썼다
1927년생
-소용없는 사람 사주는 왜 봐.
보살이 제켜놓는다.
15년전 돌아가신 시아버지
1929년생
ㅇㅊ보살 한숨부터 쉰다.
-살았댈 수도 없구 죽은 것도 아니구. 사람 진을 빼는구먼.
6년째 치매 앓는 시어머니
-제 뼈골 빼서 밥 먹고 사는 사람, 기댈 데는 없어두
평생 사는 데는 문제 없어.
남편
-부모 턱 바치고 살 자식은 아니야.
외국에 사는 아들
저는요?
-여자 팔자 들춰 뭐 하려구. 그냥 묻어가면 되지.
크게 아쉴 것도 없는 사람이 이런데 왜 왔어?
어머니가 편찮으셔서~ ~ 차마 하고 싶은 말을 끝까지 못 했다.
-돌아갈 노인네 갈 때 되면 어련히 갈까봐 물어쌌고 다녀.
들고 있던 볼펜으로 좌탁을 콕콕 찍으며 목청이 커진다
돈 쓰고 야단 맞고 신통한 소리도 못 듣고 내가 여기 왜 왔지?
모른다 하기 뭣하니까 야단이나 친 것이겠지.
용하기는 개뿔.
복채로 곰탕이나 사먹었으면 속이나 든든했겠다.
이제와 생각해 보니 내가 듣고 싶은 말을 못 들은 것일 뿐
틀린 말은 아니네.
갈 때 되면 어련히 가는 것을 ~
화일 정리하다 보니 이런 글이 있어서
어제 순영언니가 핸폰에 쓴 글이 여기에 있네~ㅎ 재미있어~ 찬정이가 쓴 글은 언제나 동치미를 마시는것처럼 시원하고 톡 ~ 쏴. 갈때 되면 어련히 가는것을~그 귀절은 아버님을 모시면서 힘들었던 내 마음에도 찔리네. 난 한번도 점을 보지 않았다. 친구를 만났을때 성당에서 신부님이 점 보지 말라해서 못보는데 실은 점집에 가보고 싶다고 궁금하다 했더니 친구가 그럼 자기가 가끔 점보러 가는데 생년월일 알려주면 지가 대신 가보겠다 해서 알려줬었다. 다녀와서 뭐라 얘기 해줬는데 워낙 몇십년전 이야기라 지금은 내용이 기억 안난다. 지금 생각하니 그게 내가 간거나 마찬가지인거였다~ㅋ 과거는 지나간 건데 점쟁이가 맞추면 뭐할꺼고 미래는 나의 사고, 의지, 행동에 달린건데 그걸 왜 점쟁이한테 맡기나~ 그리고 인간이기에 부족한 부분은 하느님께 맡기니 얼마나 편한가~ㅎ 요즘 아주 좋은 책을 읽었다. 제목은 더 해빙 (The Having) 나의 의식을 항상 있음에 맞춰 감사하고 나를 채우고 넘쳐서 상생의 마음이 되는것. 해빙의 가장 높은 단계는 상생이라는것. 힘들게 죽순을 따서 부쳐주는 찬정이는 상생을 너무 잘해서 이쁘다는 생각을 했어. 자기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만큼의 상생~그것이 아름다운 삶의 모습이야.
Stage 3로 넘어가면 식당이나 많은 상점들이 문을 열고,
위축된 경제가 살아난다고 하는데요.
저희동네나 토론토시 주변과 나이아가라일대는 아직도
.Stage 2에 묶여서 울상들입니다.
그래도 모두들 7월 말경에는 모든 가게들이 문을 열고 장사를 할수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에 젖어있습니다.
부페식당이나 춤을 출수있는 레스토랑은 아직도 요원한 상태이구요.
새상을 뒤바꿔놓은 코비드-19
정말 대단한 놈이지 않습니까?
그래도 바이러스에 안걸려서, 죽지않고 살아있슴에 감사를 드립니다.
요즘의 유일한 놀이는 골프장에 가는 일입니다.
사회적 거리두기와 수퍼에 갈때면 마스크 착용은 필수!
7월 14일의 전세계의 감염자는 13.1 밀리언 명이고,
사망자는 573,000 명이라네요.
전혀 줄어들 기미는 없고 매일 숫자가 늘기만하니...
카나다 순희가 울동네까지 왔었는데 어째 그걸 지금 봤디야~
지금 전화해보니 일주일 있다가 지금 수지로 간다는구먼.
가기 전 까지 볼 수야 있것지만은 만나기 가깝고 좋았는디~
암튼 어디 있던 즐겁게 지내고 가기전에 만나야지
정모도 언제 할 줄 모르고~뭔 이런 세월이 있다니~
인선이는 골프 실력 엄청 늘것구먼~ 골프장이라도 갈수 있으니 다행이여.
화림언니 ~
어제 전화주셔서 감사했어요
순영언니 미선언니 화림언니
다 근처에 계신데...
아 ~ 현숙후배도 있네요
저희 부천 언니집에
딸이랑 사위가 병원에 근무하고
어린 아이가 있어서
코로나에 무척 예민하더라고요
그래서 외출 삼가하고 집에서
재밋게 지내다 왔어요
그래~ 나도 남편이 몸이 안좋으니까 다른 사람보다 조심하고 있어. 나는 괜찮은데 남편이 약하니까 걸릴까봐~ 독서모임은 ~요즘 책읽고 한달에 한번 모임에 나가는게 낙이 됬지뭐야~ 다른 모임은 다 스톱하고 있어. 다들 갈증이 나서 나오긴 하는데 마스크 쓰고 건너 띄어 앉고 그래 암튼 수지에서 잘 지내고 눈치봐서 만나자~ㅎ
올해는 손바닥만한 뒷뜰에
토마토와 마늘, 파와 작년의 들깨에서 터진 씨앗으로 나온
공짜 들깻잎만 무성하다.
마늘은 왠지 쫑도없이 잎이 노랗게 햇빛에 익더니만 잎이 다 쓰러졌다.
한개를 살짝 캐보니 작지만 꽤 영글었다.
잎들이 녹아나 흔적도 없을까봐 다 캤는데 수확이 신통치 않았다.
이유를 그놈의 코비드 땀시...로 돌렸다.ㅋㅋㅋ
잡초를 뽑아주다보니 지난해에 모종값도 못한 고추가
모종만큼씩 대여섯개가 보여서 얼른 캐서 여기저기 심었다.
고춧잎이라도 가을에 무성하면 나물이라도 먹을 심산으로...
설합을 뒤적이다가 여러가지가 섞인 상추씨 봉투를 발견했다.
사람들이 상추에 꽃이 피어서 뽑아내고
새씨앗을 심었더니 다시 싹이 나온다는 말을 들은바 있어,
씨앗봉투를 들고나가 마늘 뽑은 공터에 솰솰 ~~뿌려댔다.
ㅎㅎㅎ뭔가 큰 일을 치루고온 뿌듯함에 한껏 기분이 업업업~ ~ ~!!!
"뭐했어?"
음 ~~상추씨 뿌리고왔지...함서 내민 봉투를 들여다보던 남편이
"이거 지나도 십년도 넘은 씨앗이다!"
과연 상추가 나올까요 ~~안나올까요?
인선아 ~
나도 전에 섬에서 십년 넘은 채소 씨를 뿌려서 키워본적이 있는데
싹이 잘 나서 요긴히 먹었어
아마도 상추 잘 자랄꺼야
여긴 밤새 비가 엄청나게 쏟아지더니 아침부터 좀 잦아들었어
지금은 수지 조카집에 있는데
여기 조카가 태어나던 순간
대학 4학년이었던 내가 혼자 병원에 있었던 인연인지
다른 조카들보다 정이 많이 들어서
아주 잘 지내고 있어
코로나 때매 행동 제한을 받으면서도
틈틈히 구경 잘 하고...
다음주 초엔 부천 언니 가족이랑 강원도 정선에 가서 며칠 지내기로 했고
그 주말엔 둘째딸 혼사 준비로 서산에서 올라오는 사돈 만나기로 했어
지난해에 결혼한 우리 작은 며느리가 큰딸인데
코로나 때매 아들과 며느리가 카나다에서 올수가 없어서
10월 서울에서 치루는 혼삿날엔 나 혼자 참석해야할 형편이 되었어
암튼
끝까지 망설이다 온 서울인데
'오길 참 잘했다' 하며 지내고있어
가을에
코로나가 싹 물러가서
우리 졸업 50주년 모임을 할수 있다면
옛 친구들 다 만나고 갈수 있는데 ...
인선이도 오고
나의 바램이지
궁금하면 오백원...이란 수다방도 있었지요?
'수지' 가 최순희의 조카이름이 수지...인지,
아니면 지명이 '수지'인지 헷갈려서요.
ㅎㅎㅎ'고거이 알고접다' ???
저는 김상중 탈렌트는 아니지만 궁금해서요.
순희야 ~~여고졸업한지도 벌써 50 년이 되어온다고?
한국이던 어디던 갈 수가 없는 상황이 아니것남?
2 주일의 자가격리도 필요하고...
나같은 경우는 더욱더 머물곳이 마땅치않으니까...
우리 바램은 ~~
상추씨가 싹을 틔울지 나도 그것이 궁금하구먼 2년 지나면 버리라는데~ㅎ 순희는 그런데로 잘 지낸다니 다행이다. 큰맘먹고 온거 다니고 싶은곳 다 다니고 만날사람 다 만나야할텐데~ 강원도도 잘 다녀오고 ~ 강원도는 아무리 자주가도 질리지 않는곳이야. 정선 좋아 시간되면 정선 5일장도 구경하고~ 요즘도 열라나 모르겠네. 요즘은 못다녔지만 예전엔 새벽에 떠나면 당일로도 다녀올수 있었어. 암튼 잘 지내고 있거라~ㅎ
유순애가 이제 밖으로 나온다 해서 반가워서 7기에 들어가 봤어요. "가장 행복한것이 별 의미없이 지나간 일상이었다"는 귀절이 가슴을 촉촉히 적시네요.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는 시귀절이 생각납니다. 힘든 시기 보내고 일어선 순애의 손을 꼭 잡아주고 싶네요.
오늘, 26일 주일이 중복이라네요.
진작에 알았더면 생닭을 사와서 삼계탕 끓여먹고,
몸보신이라도 해얏을것인디... 했더만 ㅎㅎ
남편이 삼계탕을 먹느니 차라리 통닭구이가 더 맛나다고 하네요.
그래서인가 오늘 날씨가 굉장히 덥네요.
체감온도 40도도 넘을듯 싶어요.
중복을 맞아 봄날님들 ~~
그날이 중복날이던가, 말복날이던가
암튼 복날은 복날이었어요.
저녁 여덟시가 넘었을 때 단톡 동기방에서
복날이라 오리 백숙을 끓였다느니
나가서 삼계탕 한 그릇씩 먹고 들어왔다느니
저마다 복달임한 얘기로 재재거렸는데
한 아이가 자기는 나가기도 귀찮아서
딸과 같이 먹으려고 치킨을 시켜놨다고 했어요.
그 문자가 마지막이었지요.
그 치킨을 먹긴 먹었을까?
나중에 들은 얘기로는
밤 열시경 머리가 아프다며 딸에게 샤워기로 찬물을 머리에 뿌려달라고 했다지요.
그러다가 병원에 실려갔고, 의식을 잃고, 다음날 돋을 볕을 못 본 채
돌아올 수 없는 먼 길을 떠났지요.
벌써 사, 오년 된 것 같습니다.
복날이면 복달임보다 그 아이가 먼저 생각납니다.
우리 친구이자 봄님이었던 정혜숙이요.
나도 생생하게 생각이 난다.
너무 황망해서 갈팡질팡하며 대전에서 인천까지 한달음에 달려가
영정 속 혜숙이에게 작별인사를 하며 소리 죽여 울었던 기억.
허망하다 허망하다.
산 사람은 살기 급급해서 이리 쉽게 잊고 지내는구나.
복날 복달임 이야기 속에 묻어둔, 공유하는 슬픔이 되었구나.
에효 ~
매주 목요일마다 한국인들 16명..58살 ~80살까지
여자 10명, 남자 6 명이 모여서 골프를 치는데...
코로나바이러스로 골프후엔 각자 손 흔들고 집으로 집으로 ~~
지난 금요일부터 Stage 3 가 발동되어 식당이 문을 열지요.
오늘 골프후에 3 분이 빠지고 모두들
월남식당으로 가서 맛난 저녁식사를 하고 담소하다 왔지요.
특히 집에와서 저녁식사 준비를 안해도 되니까
그것이 제일 신나는 일이지요. ㅎㅎ
솔직히 한국식당은 값도 비싸고 깔끔하질 못해서 갈 마음이 없어요.
맛난 짜장면을 그리워 하면서도 발길은 월남식당으로...
그러면 안되는데 참 ~! 그렇게되질 않네요.
모두들 몇 달만에 모여서 식당에 앉아 얘기도 나누고
식사를 하게될 줄은 몰랐다고 감격까지는 아니어도
다들 감개무량하고 흐믓하고 행복한 마음들였어요.
늘 당연시했던 것들이 규제받다가 해제되니
다시한번 모든것에 감사해지는 마음였더랬어요.
글쎄 말입니다. 그 빈말도 못 하는지 모르겠어요. 돈이 드는 것도 아니고
품이 드는 것도 아닌데. 암튼 쓸데없이 정직하다니까요.
인선 언니 부군을 흉 본 거 아니고 우리집에 그런 사람 하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