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봄날 단체방에 미선 선배님이 사진 한 장을 올려주셨다.

순간 까맣게 잊고 있던 시간의 화살이 내 가슴으로 들어와 박히는 느낌이 들었다.

 

박정희 할머니 화가

순애 선배님의 어머니이자 우리들의 어머니

 

내가 한국 방문을 하던 그해 친정어머니는 요양병원에 계셨다.

가을 무렵이었는데 어머니를 윌체어에 태워드리고 감나무 우거진 병원 마당을 산책하던 날 친구 인애에게서 전화가 왔다.

-금재야, 화실에 가자.

-느닷없이 화실은 왜.

-그림 구경 가자고.

 

이렇게 시작된 그날 우리는인천 화평동에 자리한 박정희 할머니 화실에 가서 그림 구경을 하고 그림도 몇 점 사고 할머니 살아오신 인생 이야기를 들었다.

아버지는 한글 점자 창안자 송암 박두성 선생

남편은 소문난 양심 의사 유영호 박사

예순의 나이로 수채화가 데뷔

 

박정희 할머니의 육아일기는 아이 가진 엄마들에게 교과서 같은 책이란다.

 

세상에 보고 느끼는 것이 모두 아름답고 과분할 만큼 행복해서 그림을 그리지 않을 수 없었다, 는 할머니의 고백을 들으며 과연 나는 저런 열정으로 글을 쓰고 사진을 찍어 디카시를 쓰는지 자신에게 물어본다.

 

특별히 여성들에게 자신의 삶을 살라, 고 하신 그 말씀이 장미꽃 그림 위로 비쳐온다.

죽을 성 싶던 장미 나무를 다치지 않게 캐내어 그림으로 다시 살려내는 그 정성

 

한국전쟁 때 피난와 인천에 뿌리를 내리고 이십 여 명이 넘는 대가족 살림을 하셨다는데 나도 한때 둘째 아이를 낳고 여덟 명 살림을 할 때 늘 불평하던 그 시간이 떠올라 스스로 반성해본다.

 

박정희 할머니

천국에서도 모든 일을 즐겁게 하시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