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중나온 큰딸 진아를 만났다

불과 며칠만인데 왜 이리 느낌이 다르던지

태풍의 영향으로 비람은 세차고

바로 짐을끌고 렌트하러 갔다

경차 레이를 렌트해서 이삿짐에서 낙오되었던 냄비셋트와 카펫 글구 내 케리어를 실었다

맨날 큰 스타렉스를 몰고 다니다가 경차를 타니 땅바닥에 주저앉은듯 편치가 않다

운전석은 불편하고

빗줄기는 세차고 길은 낮설고

날은 점점 어두워 가고

이래 저래 긴장이 된다


진아의 코치를 받으며 이마트로 중고용품점으로 다이소로 하나로마트로

시내를 몇바퀴 돌고 또 돌고

드뎌 심히도 궁금했던 집에 도착했다


어둠이 칠흑같이 내리고 

감귤밭 사이에 있는 오렌지빌리지라는 빌라 한 채가 마치 귀곡산장처럼 으시시하게 느껴진다

이곳에서 혼자 어찌 살려고

가족을 등지고 이 먼곳까지 떠나왔는지 한숨이 난다


대강 짐을 풀고 

운전하느라 얼마나 진땀을 뺏는지 식욕도 떨어져

토스트 한 조각과 포도 몇 알이 입에 쓰기만 하다

이리 뒤척 저리 뒤척 잠이 안온다


9월 18일 지난 목욜에 씩씩하게 아듀를 외치며 떠났던

진아 얼굴이 단 며칠만에 수척해졌다

자기가 이쁘게 다 꾸며놓으면 엄만 짠 하고 나타나

여행만 즐기고 가라던 애가

엄마 빨리 오라고 항공권을 보내왔다

지 방도 하나 제대로 못 치우고 직장만 다니던 것이

제법 넓은 집을 혼자 치우고 살림 장만 하려니

모든 것이 엄두가 안 나고 힘들었나보다


가구 배치를 어찌 해야 할지 엄청 찌들은 창틀은 어떻게 닦을지

이것 저것 고민에 일찍 깨버려 오랫만에

봄날에 이리 끄적여 봅니다


엄마가 늘 갖혀 지내는걸 보면서 자유를 꿈 꾼 것일까

여행을 즐기고 늘 입버릇처럼 지방에 가서 살거라더니

나이 스믈아홉에 과감히 인생 턴을 하게 된 진아의 속맘을

에미인 저는 이직 다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7월말 사직서를 내고 이십여일 동유럽 여행길에 올랐었죠

 헝가리에서 주제원으로 있다 남자를 만나 결혼 해서

지금은 폴란드에 살고 있는 절친 집에서 며칠 있을거라는 말에

제가 왈 너 그리 집 떠나고 싶어하니 그곳에 직장을 잡든지 한인교회서

남자를 소개받아 친구처럼 결혼 하든지 둘 중 하나 숙제 해서 오라고 하며 보냈었습니다


그렇잖아도 그곳 엘지 한국지사에 근무하고  있는 친구가

직장을 소개해 주겠다는걸 거절하고 왔다더군요

그러더니 추석 세고 바로 담주에 제주에 내려와 집 구해놓고

속전속결 우리 곁을 떠나왔네요

뭐 해먹고 살건지  전 아직 모릅니다

난 그 나이에 애를 둘이나 낳았었는데 

잔소리 한다고 들을것도 아니고

믿음을 가지고 기도하는 자녀니 그 신뢰감으로 묵묵히 지켜보려고요


제가 남편에게 그랬네요

우리 제주도에 별장 생기는거야~~

아빠가 신학하고 목회 한다고 고생만 시킨 딸에 대한 미안함에

힘들어 하는 남편을 위로하고자 제가 객적게 던진 말입니다


여행을 좋아하고 사람을 좋아하는 딸이니

어쩜 자기가 행복할 수 있는 길을 찾아 떠나온 것일 수 있단 맘이 들어

어느 순간 평안이 밀려오더라고요


열명은 자도 될 만큼 큰방이 두개고 각방에 화장실도 붙어 있고

아마도 인천서 보다 더 북적거리며 살란가도 모르겠습니다

벌허 오겠다는 예약손님(?)이 많아서요

선배님들도 오실라면 말씀 하세요

진아가 그러네요

엄마 손님은 안 받아!


아직도 창가로 빗소리가 들립니다

오전에 대강 청소 하고 오후엔 제주 투어좀 해야겠네요


엄마!

 난 엄마 없인 못 사니까

끝까지 엄마 옆에 붙어있을거니까 걱정 마

이렇게 말해주는 막내딸 은혜가 있으니 위로를 받아야 하나요?


진아는 벌써 지난 주일 교회가서 밥도 먹고 이웃에서 파스타도 해다 주고 천부적인 친화력의 소유자니 걱정 붙들어맬렵니다

저도 가끔 훌쩍 떠나 올 곳이 있다는 것에 위로 받으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