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여름도 채 보내지 못한 9월 초순인데 벌써 추석입니다.

예년보다 너무 일찍 찾아 온 탓인지 마음만 바쁘고 명절 기분이 잘 나지 않습니다.

아니, 제 마음이 아직 명절을 즐길 여유를 찾지 못했나 봅니다.

 

올해, 우리는 너무도 가슴 아픈 일을 많이 보았습니다.

텔레비전을 켜는 것이 두려울 정도로 애통하고 기가 막힌 일도 겪었습니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 사건과 사고 속에서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습니다.

가슴이 답답하고 먹먹하여 큰 소리로 웃거나 즐거워할 수도 없고,

참담하고 슬픈 심정은 분노로 변하기도 했습니다.

위로를 받고 싶은데 어디 가서 위로 받을 데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더욱 낙심되고 절망하였습니다.

어떻게 여름이 왔다 갔는지조차 느낄 수 없던 터라 더욱 더 추석이 실감나지 않습니다.

 

추석은 신라시대부터 전해 내려오는 민족의 큰 명절입니다.

중추절(仲秋節), 혹은 중추가절(仲秋佳節) 이라고도 하니

가을의 한가운데, 곧 가을 중의 가을인 셈입니다.

농경사회에서는 농사지은 것들을 거두어들이는 가을이 가장 여유롭고 풍성한 으뜸절기였습니다.

 

신라시대의 추석은 갓 추수한 오곡백과로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놓고,

온 마을 사람들이 다 함께 둥근 보름달을 보며

밤낮으로 먹고 마시고 춤추며 흥겹게 즐기던 큰 축제였습니다.

그러던 것이 고려, 조선을 거쳐 내려오면서 문중 단위로 조상님께 차례를 지내고 성묘하는 날로 변형되었고,

지금은 가족 중심으로 보내는 3일 연휴 국정공휴일이 되었습니다.

 

기독교인들에게 추석은,

직장 따라 뿔뿔이 흩어져 살던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여 서로의 안부를 확인하고,

무탈하게 지켜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한국판 추수감사절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추석이 되면 가족들과 함께 감사예배 드리러 고향에 갑니다.

 

그런데, 우리가 찾는 고향은 단지 태어나고 자란 장소를 일컫는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낳고 길러주신 부모님이 곧 고향입니다.

그래서 객지든 병원이든 상관없이 무조건 부모님 계신 곳으로 달려갑니다.

아니, 요즘은 고향이 움직이기도 합니다.

오가는 교통편이 너무 복잡하다 싶으면 부모가 자식들 집으로 가기도 합니다.

간혹 긴 연휴를 이용해 온 가족이 큰 맘 먹고 다 함께 여행을 떠나기도 합니다.

모두가 한 자리에 모여서 정성껏 예배드릴 수만 있다면,

저는 그곳이 어디든 상관없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 안에서 가족들과 함께 휴식과 충전의 시간을 갖고,

공유할 수 있는 좋은 추억을 만드는 것도 귀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번 추석엔 특히,

가족들이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는 시간을 많이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모로 어려운 시간을 겪어내느라 지친 마음들을 따스하게 감싸고 어루만져서,

치유와 회복의 역사가 일어나도록 말입니다.

모두 모였을 때,

누구는 종일 분주하게 종종걸음을 치고

누구는 비스듬히 누워서 심부름이나 시키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명절증후군>이 생기지 않게 서로 돕고 배려해야 합니다.

아이들과 어른이 함께 어울려 할 수 있는 재미있는 놀이를 준비하면 더 좋습니다.

상대방 입장을 헤아리지 않고 아픈 곳만 골라 꼬치꼬치 캐묻거나,

생각 없이 남의 속을 지르는 말은 삼가 해야 모두가 즐거운 명절이 됩니다.

 

기성세대와 신세대 간에 막힌 담 없이 원활하게 소통하고,

말씀 안에서 감사하며 즐겁게 보내는 것이 기독교식 추석보내기입니다.

온 가족이 모두 모여 고단한 일상을 다 내려놓고,

하나님께 감사예배 드리며 영육 간에 기쁨을 재충전하는 기회로 삼는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올해 유난히 추석이 일찍 든 것도

상처받고 허허로운 우리 마음을 속히 채워 주시려는 하나님의 섭리인 것 같습니다.

 

                                                                                                                                             김 희재 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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