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

 

 

사망권세 이기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합니다.

부활 당시의 상황에 대해 증언하고 있는 요한복음 20장을 소리 내어 천천히 읽습니다.

말씀을 깊이 묵상하며 그 장면을 그려봅니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그 때의 일들이 떠오릅니다.

 

이른 새벽. 아직 동이 트지 않아 사방이 어둑한 길을

무서운 줄도 모르고 부지런히 걷는 여인이 있습니다.

그녀는 사랑하는 선생님의 무덤을 찾아가는 길입니다.

예수께서 참혹한 십자가에 달려 물과 피를 다 쏟고 돌아가시는 것을 보고

가슴을 쥐어뜯으며 울었던 여인,

진심으로 주님을 따르고 사랑했던 막달라 마리아입니다.

예수님 발에 향유를 붓고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정성껏 닦아드렸던

그녀의 심정은 지금 무어라 표현할 수 없이 슬프고 착잡합니다.

그리도 사모하던 주님의 시신에 바를 향료를 준비해 가지고 그녀는 부지런히 발길을 재촉합니다.

 

무덤에 도착한 그녀는 깜짝 놀랐습니다.

앞을 막아 놓았던 돌이 옮겨져 무덤이 훤히 열려 있는 것이 아닙니까?

그녀는 황급히 사람들에게 달려가 알렸습니다.

베드로와 다른 제자가 달려와 보니 무덤 속에 있던 예수의 시체는 간데없이 사라지고

그를 쌌던 세마포만 놓여 있었습니다.

이때까지는 제자들도 부활에 대해 잘 몰랐기 때문에 이상하다 여기면서 그냥 돌아갔습니다.

남자들이 다 돌아간 후에도 여인은 무덤 밖에 서서 울며,

몸을 구부려 무덤 안을 들여다보았습니다.

예수를 뉘었던 무덤 안에 있던 흰 옷 입은 두 천사가 그녀에게 왜 우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녀는 사람들이 내 주님을 옮겨다가 어디에 두었는지 몰라 우노라고 대답하며 계속 울었습니다.

예수님의 주검조차 지키지 못한 자책과 회한 때문이었습니다.

 

그 때 문득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져 돌아보니 어떤 사람이 거기 서 있었습니다.

그가 물었습니다.

“여자여,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

그녀는 그가 동산지기인 줄 알고

예수님의 시신을 당신이 옮겼거든 어디에 두었는지 자기에게 일러 달라고 간청합니다.

자기가 모시고 가겠노라고 말입니다.

그 사람이 바로 예수님인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예수께서 “마리아야” 하고 부르시니

그제야 비로소 다시 살아나신 주님을 알아보고 반가워 펄쩍 뛰게 됩니다.

그녀는 단숨에 달려가 이 기쁜 소식을 모든 사람들에게 알렸습니다.

예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노라 외쳤습니다.

덕분에 부활 사건이 오늘까지 전해져 온 것입니다.

 

 

여기까지 읽는데 문득,

내 마음 속 깊은 곳에서도 그 음성이 또렷하게 들려옵니다.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고 물으시던 주님의 음성이 내 귀엔 다른 의미로 들려옵니다.

이미 부활 사건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네가

어찌 빈 무덤 앞에서 울고 있는 마리아처럼 여태 그러고 있느냐는

준엄한 꾸지람으로 들립니다.

이제 그만 자리를 털고 담대하게 달려 나가

부활하신 주님을 많은 사람들에게 증거 하라는 당부로 들립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갈 2:20)

 

부활절을 맞으며 이 말씀을 떠올립니다.

말씀이 검이 되어 무뎌진 제 심령과 골수를 쪼개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사도 바울의 고백처럼 저도 그렇게 살고 싶습니다.

앞으로는 더 이상 허탄한 것에 마음 두지 않고 하늘의 신령한 은혜를 사모하며 사는 자가 되겠노라,

땅 끝까지 이르러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겠노라고 담대히 외치고 싶습니다.

 

구주와 함께 나 죽었으니 구주와 함께 나 살았도다.

영광의 기약이 이르도록 언제나 주 만 바라봅니다.

온 마음 다해 이 찬양을 주께 올려 드립니다.

 

 

 

                                                                                                       

                                                                                                            김 희재 권사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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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글은 대전 천성감리교회 4월 20일자 주보에 실린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