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범이의 일기 11 (가엾은 울 애기....)  2006.09.06 19:02:55

좀 일찍 퇴근하게 되어 은범이네 들렀다.
가보니 아무도 없고 조용하다.
애를 데리고 밖에 나갔거니 하며 아줌마한테 전화를 걸었다.
아줌마가 애를 데리고 산책을 나가 탄천에 있다고 한다.

그냥 집으로 가려다가 정말 탄천에 있는지...
어디 딴곳에 있는지 싶어 그곳으로 찾아가 보았다.
탄천 큰 다리밑에 시원한 그늘에
동네 애보는 아줌마들과 간병인들이 다 나왔는지
왁자지껄하다.
울 은범이는 그 사람들 많은 속에서 한귀퉁이 유모차에
파묻혀 눈을 두리번 거리고 있었다.
내가 손을 내미니 반색을 하고 안긴다.

아줌마는 심심하니 산책삼아 시원한데 나왔겠지만
그곳의 광경은 가히 목불인견이다.

90쯤 된 노인들이 간병인 손에 끌리어 걸음마연습하는데
잘한다고 애기보는 아짐들이 손뼉치고 웃고 난리였다.
애기들은 뒷전이고 즈이덜 수다에 정신이 없다.
울은범이는 시끄러운 소리에 눈을 휘둥그레 뜨며
입을 삐쭉거린다........

아~! 정말 속상했다.
세상에 한참 좋은 것만 보여 줘야할 내새끼를 이 난리통에서
저 아짐한테 맡기고 난 신난다하고 돌아 다니니....
그렇다고 내가 봐주지도 못할거면서 잔소리하면 싫어할까봐
잔소리도 못하고....

울딸 그만땐 안고 다니며 좋다는것 다 보여주고 이집저집 엄마들과
애기들 만나게 해주고 말도 가르치고 노래도 가르치고 했는데......
저 아짐 수준에 맞춰져 자랄 생각을 하니 가슴이 떨릴 지경이었다.

그래도 어쩌랴~?
좋은 소리로 아짐을 앞세우고 내가 은범이를 안고 걸으며
"저~기 어린애들 축구하는거나 보여주세요...
아줌마 심심해서 나온건 어쩔 수 없지만 기왕이믄 애 좋은것 보여주세요...!"하고
들어 올 수 밖에 없었다.

오늘도 점심 때 쯤 전화 걸어보니 집에 없다.
어딨는지 물어보려다가 그냥 관두었다.
물어보믄 워쩔낀데......

그~시끄러운 속에서 애처로이 유모차안에 파묻혀 있다가
날보고 허우적 안기던 그얼굴이 떠 올라 학원을 작파할 생각도 잠시 했었다.

워쩌랴~!
봐 준다고 허다가 또 손발드는 사태가 생길까봐 말도 못꺼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