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재회

 

김 희 재

 


  

평생 처음으로 대중가수 펜 카페의 회원이 되었다.

여태껏 좋아하는 연예인에게 팬레터 한 번 보낸 적이 없는 내가

이 나이에 누군가의 열렬한 팬이 된 것이다.

어느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한 참가자가 부른 천상재회라는 노래를 들은 것이 발단이었다.

아주 평범한 대중가요를 장엄한 명곡으로 만들어 낸 그의 시원한 목소리와 섬세한 감성에 내 영혼이 반응했다.

사랑했던 그대를 천상에서 다시 만나서 못다 한 사랑을 영원히 하고 싶다는 가사도 마음에 들어와 깊이 박혔다.

유튜브에서 그 노래를 찾아 들을 때마다 눈물이 났다.


숙이는 자신이 생존율이 낮은 담도암에 걸렸고, 며칠 후에 수술하게 되었다고 친구들 단톡방에다 고백했다.

단톡방엔 100명 넘게 여고 동기동창들이 들어와 있었다.

다들 무척 당황하고 놀랐다.


수술 후 3년 동안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며

그녀는 암세포와 싸우기도 하고 살살 달래기도 했다.

투병 생활 내내 친구들을 버팀목으로 삼았다.

거의 매일 자신의 몸과 마음 상태를 일기 형식으로 솔직 담백하게 써서 단톡방에 올렸다.


나는 그녀에게 자주 전화를 걸었다.

자잘한 일상 이야기를 나누며 되도록 유쾌하게 웃고 떠들었다.

내일 일은 내일에 맡기고, 하루에 하루 어치씩만 살아내라고 말해 주기도 했다.

그렇게 하루씩 연장하며 살다 보면 30년은 거뜬히 버틸 수 있다고 말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입에 발린 위로였는데 그녀는 언제나 그러겠다고 약속했다.

하루에 하루씩만 더하는 것이 뭐 어렵겠냐

너보다 오래 살 테니 두고 보라고 호언장담도 했다.

그 목소리가 너무 명랑해서 더 짠했다.


그녀의 정신력은 누구보다도 강했다.

긍정의 힘으로 모든 순간을 견뎌냈다.

지레 겁먹고 슬퍼하며 낙심하기는커녕 언제나 의연하고 씩씩했다.

나는 점점 응원을 넘어 존경하게 되었다.


마음과는 달리 그녀의 몸은 하루가 다르게 약해졌다.

마침내 항암제도 방사선도 신약도 듣지 않게 되었다.

도저히 참기 힘든 통증이 찾아왔고, 복수(腹水)가 찼다.

만삭의 임산부처럼 배가 빵빵해졌다.

강력한 진통제 외엔 아무 치료법이 없었다.


그래도 그녀는 포기하지 않았다.

계속해서 복수를 빼내고 진통제를 맞으면서도 삶의 끈을 놓지 않았다.

곁에서 지켜보기 안타까울 만큼 마지막까지 치열하게 버텼다.


결국, 숙이는 작년 12월 초에 우리 곁을 떠났다.

단톡방에 있는 친구들에게 고통 없는 꽃동산에서 다시 만나자는 인사를 남긴 후

호스피스 병동에서 조용히 돌아갔다.

진작부터 예견된 일이었는데도 막상 부고를 접하게 되자 너나없이 당황하고 허둥거렸다.

나는 그녀의 영정 앞에서 한참 동안 소리 죽여 오열하였다.

윗세대 어른들을 배웅할 때와는 결이 다른 슬픔이었다.

마치 몸의 일부를 잃는 느낌이었다.

 

 

진이는 여고 동창생 중에서 손꼽히는 멋쟁이였다.

환갑이 지나서도 플라잉 요가를 하며 건강하고 날씬한 몸매를 유지하는 친구였다.

재작년부터는 드럼도 새로 배우기 시작했다.

멀리서 언뜻 보면 아가씨같이 날씬하고 예뻐서 친구들의 부러움과 시샘을 한몸에 받곤 했다.

동창회 임원인 그녀는 숙이 장례식 때도 끝까지 유족들과 함께 있었다.


진이 부고가 동창생 단톡방에 떴을 때, 나는 오타가 난 줄 알았다.

상주 이름을 망자로 잘못 표기한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그녀에게는 우리 나이에 흔한 지병도 하나 없었다.

그렇다고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며칠 호되게 아프지도 않았다.

교통사고를 당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평소처럼 저녁 잘 먹고 잠들었다가 깨어나지 못했다.

그것도 하필 크리스마스이브, 숙이 장례를 치른 지 2주일 만에 말이다.


사인은 심장마비였다.

아무 예고도 없이 그녀의 심장이 툭 멎은 것이다.

다들 기가 막혀 어찌할 바를 몰랐다.

이렇게 기습적으로 가는 건 반칙이지.”


사실 따지고 보면 그녀는 죽는 복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 타고난 사람이다.

아프지 않고 잘 살다가 순식간에 후다닥 하늘나라로 돌아갔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건 남은 자들에겐 못할 일이었다.

미처 준비할 겨를 없이 닥친 일이라 마음을 추스르기가 몇 곱절 더 힘들었다.

아직 해가 중천인 줄 알고 있었는데 덜컥 밤중이 된 셈이었다.

느닷없이 막을 내린 그녀의 무대를 보며 나는 많은 생각을 했다.


죽음은 생각보다 더 가까이에 있다.

세상에 오는 순서는 있어도 돌아가는 순서는 없다는 말처럼 누가 먼저 갈지 아무도 모른다.

나는 죽음을 소멸이 아닌 회귀(回歸)라고 믿는다.

모든 생명체는 정해진 때가 되면 마땅히 가야 할 곳으로 돌아가야 한다.

이것은 섭리다.

그러니 너무 두려워하지 말고 담담히 자연스럽게 맞이하는 게 좋겠다.


이렇게 덤덤히 말하지만 사실 나는 아직도 영이별이 슬프다.

내 머리와 가슴이 따로 노는 모양이다.

이 슬픔은 오직 언젠가 천상에서 다시 만날 것이라는 소망으로만 다독일 수 있다.

가까운 친구들이 가고 나니 저세상이 내 곁으로 성큼 다가온 것 같다.

만사가 귀찮고, 허망하다는 생각이 자꾸 든다.

내 가슴 속에 커다란 눈물주머니 하나가 또 생겼다.

 

울고는 싶은데 영 눈물이 나오지 않아 답답하던 차에 천상재회를 들었다.

진심을 담아 부르는 그의 목소리에 눈물이 줄줄 쏟아졌다.

꽉 막혔던 배수관이 뻥 뚫린 것처럼 속이 아주 후련해졌다.

가득 찼던 눈물주머니를 비우고 나니 우울감도 많이 사라졌다.

젊은 그대, 고맙소.

 


 

김희재; 수필가. 계간수필 천료 (1998).

            저서, 산문집 <죽변 기행> 러시아와 북유럽여행기 <끝난 게 아니다>

              4인수필집<이상한 곳에서 행복을 만나다> 외 공동수필집 다수.

            계수회, 수필문우회, 한국문협, 국제PEN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