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이어령 배재대학 석학교수님 팔순잔치 신문뉴스에서 발췌)
신혼 단칸 셋방 시절, 연탄불을 꺼트린 방안에서 살얼음 속 화석처럼 박혀 꼼짝 않는 어항 속 금붕어를 살려내던 체험이다. “금붕어의 어항이 그것들이 태어난 강물과 바다로 이어지면서 지구 크기의 생명권으로 번져나간다”는 구절 뒤에 그는 썼다.

 “‘자살’이라는 말도 거꾸로 읽으면 ‘살자’가 된다는 강렬한 모국의 언어로 감지한 목숨, 그때까지 숨기고 살아온 내 굳은 생명의 살점을 만져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하얀 입김과 함께 튀어나온 말이 유레카였다.”

 가무악단이 선창한 ‘아리랑’을 따라 부르던 손님들은 호암아트홀 로비에 마련된 잔칫상으로 자리를 옮겨 잔치국수를 먹으며 이어령 선생의 장수를 축원했다.

 “(이 책을) 조금 일찍 쓸 걸 그랬나 봅니다” 체념하던 노장은 아직 “두 번, 세 번 생명의 바다로 뛰어들 기회는 있습니다”고 운명을 감수(甘受)한다. 서구 금융자본주의의 황혼을 생명자본주의로 깨치고 나가자는 그의 묵직한 음성이 금붕어의 비늘을 흔들며 퍼져나갔다.

글=정재숙 문화전문기자
사진=강정현 기자

◆이어령=1934년 충남 아산 생(실제 1933년). 서울대 국문과와 동대학원을 졸업. 문학평론가·소설가·시인·희곡작가·에세이스트·문명비평가 ·언론인 등으로 활동했다. 1956년 한국일보에 ‘우상의 파괴’를 발표하며 기존 문학판을 뒤흔들었고, 63년 펴낸 『흙 속에 저 바람 속에』는 베스트셀러가 됐다. 82년 『축소 지향의 일본인』을 써 일본인이 인정한 일본 문명 비평서로 현재까지 손꼽힌다. 88년 서울 올림픽 개·폐회식과 2000년 밀레니엄 기념식 ‘새 천년 생명과 희망의 탄생’을 기획했다. 1991년 초대 문화부 장관, 이화여대 석좌교수를 지냈다.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결합한 ‘디지로그’라는 신개념을 만드는 등 한국 문화계의 아이디어 뱅크로 불린다.

생명의 시-미친 금붕어   이어령


어머니 저는 금붕어들이 미쳤으면 합니다.

날치처럼 어항에서 튀어나와 일제히

양자강 넓은 하류에 흐르는 강물로

노자가 말한 소리 없이 흐르는 강물로

어머니 저는 금붕어들이 지느러미를 세우고

하늘을 날았으면 좋겠습니다.

어머니 저는 금붕어들이 미쳤으면 합니다.

옛날 낚시 바늘에 걸려 팔딱거리던

붕어였으면 합니다.

그물을 찢고 강으로 되돌아가는 힘센 붕어였으면

좋겠습니다.

어머니 금붕어에 밥을 주다가 이 녀석들이 이빨로

내 손가락을 물었으면 좋겠습니다.

그 큰 눈이 하늘을 향해 있는 것을 보면

어느 날 몰래 어항을 깨고 용처럼 승천하려는

음모를 꾸미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정말 그런 날이 오면 저는 어머니

모른 척하고 문을 열 것입니다.

넌 빨래를 거두라고 아내에게 이를 것입니다.

금붕어들의 자유로운 비상을 위하여

나의 비상을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