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귀화한 외국인들  (다문화아카데미원장 이현정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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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이씨는 베트남 왕자 이용상이 황해도 옹진으로 망명함으로써 얻은 성씨다.
당시 베트남의 이태조가 하노이를 수도로 정하면서 쫒기는 신세가 된 이용상은 고려로 망명했다.
당시 고려는 고종 40년 몽골왕이 서해로 들어와 성을 함락시켰는데 이때 이용상은 침략군들을 물리치는데 앞장서기도 했다.
이에 고려고종은 이를 크게 치하하고 이씨성을 하사했다.
현재 황해도에 기적비. 등이 유적이 있다고 한다.
이씨왕조 8대를 모신 사당은 지금도 베트남국민들이 신성하게 여기는 곳이다.
베트남 동전에도 새겨져있을 정도라고 한다.
여기서 화산이씨 종친회장이 제사를 지냈던 우물을 발견하기도 햇는데 이 우물에서 제기가 출토되어 전설로 내려오던 이야기와 딱 맞아떨어졌다고 한다.

 

임진왜란때 부산에 상륙한 22세 젊은 일본인 장수 사야가.
그는 부하들에게 약탈을 금하는 군령을 내리고 침략에 뜻이 없음을 알리는 글을 써 붙였다. 3000병력을 거느린 고위 장수였다.
그는 망설임없이 강화서를 조선의 병마절도사에게 건냈다.
조선의 문물을 흠모해 귀화한 사람은 처음이었다.
간혹 목숨을 지키려고 귀화한 사람은 더러 있었다.
그러나 그는 오랑캐로 태어나 오랑캐로 죽는 것보다 이곳에 귀화하는 것이 의미있다고 말하면서 기다렸다는 듯이 귀화해서 조총제격술과 사격술을 가르쳤다.
더구나 왜군을 치고 조총기술을 조선에 전수했다.
도원수 권율은 그에게 조선이름을 내려줄 것을 요청하여 사성 김해김씨의 시조가 되었다.
김충선으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달성군 가창면 우록마을에 터를 잡아서 이때부터 사서김해김씨의 집성촌이 되었다.
그는 정2품까지 오른다. 지금의 녹동서원은 그를 기리는 사당이다. 이괄의 난과 병자호란때도 역할을 다한 인물이다.
현재 한일우호관을 건설중이고 매년 일본인이 천명정도 오고가고 있다.

중국 허난성 싱양현 판야오춘은 (판)반씨 집성촌이다.
우리나라에서 희귀성씨다. 바로 반씨. 시조는 반충. 광주반씨다. 이분 역시 귀화한 분이다.
고려 때 지식인층을 포함해 고려 초 20만명을 귀화시켰다.
개성을 중심으로 거주시켰다. 포용과 우대의 선정을 베풀었다 .<송사. 고려전>에는 이런 글귀가 있다.
“고려왕성에는 중국사람 수백 명이 있었는데 복건성 사람들이 장사를 위해 배로 건너간 경우가 많았다.
비밀리에 그들의 재능을 시험해보고 벼슬을 주어 유혹하거나 체류시켜 일생을 마치도록 강요했다. “
의식주까지 베풀었고 신경을 써주었다.
적극적인 귀화정책을 폈다.

세종실록지리지에 250성씨가 나오고 동국여지승람에는 277성씨가 있다. 이중 귀화성씨. 신라 40여성 고려 60여성. 조선 30여성이 새롭게 등재한 것이 보인다.
즉 귀화성씨는 국내 성씨의 절반에 가까운 숫자이다.
혼혈민족들이 분리를 요구할 때 문제가 생기는 법이다. 그런데 고려때는 분리주의가 나타나지 않았다.
이렇듯 순수단일이란 있을 수 없다. 다 혼혈이고 혼합이다. 우리역사도 마찬가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우리나라는 전체 58개국 중에서 문화적 개방성 52위이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