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포는 굽힐 줄 압니다

                      정일근


폭포가 떨어집니다.
곧은 물줄기가 하늘에서 땅으로 떨어집니다.
물은 늘 겸허하게 낮은 곳으로 흘러가는 줄만 알았는데
저렇게 한 번 물의 힘을 펼쳐 보입니다.
쏟아지는 폭포 곁에 서 있으면 몸은 서늘해지고
마음은 뜨거워집니다.

노자가 말했습니다.
나무는 휘어지기 때문에 꺾이지 않고 안전하며,
자벌레가 몸을 구부리는 것은 장차 곧게 펴기 위함이라고 했습니다.
땅이 우묵하게 팬 곳이 있어야 물이 채워지고 옷은 낡아야 새 옷을 입는다고 했습니다.
수가 적으면 그 중에서 무엇이 좋은지 쉽게 찾을 수 있지만
많이 가지면 어느 것이 좋은지 가려내기가 어렵다고 했습니다.

휘어질 줄 알고,
구부릴 줄 알고,
팰 줄 알고,
낡아질 줄 알고
그리고 적게 가지고 사는 것이 사람답게 사는 것이라 했습니다.

그대.
고백하자면 저는 불혹의 나이를 지나서 굽힐 줄 알게 되었습니다.
서른 즈음,
사는 일이 곧은 힘으로만 되는 줄 알고 곧게 살려고만 했습니다.
사랑하는 일도 그런 것이라 알고 있었습니다.
누군가를 마음 속에 가두고 한없이 뜨거워지는 것이 사랑인 줄 알았습니다.
그러다 불혹에 꺾이고 말았습니다.
삶에,
사랑에 힘이 가득 들어가 있어 저는 더 크게,
더 아프게 꺾어지고 말았습니다.

작은 한 방울에서 시작한 물이 휘어지며 굽어지며 마침내 폭포를 만듭니다.
물은 폭포가 되어 물의 힘을 보여 주기 위해서 낮은 곳으로 굽힐 줄 아는 물의 길을 달려왔기 때문입니다.
그대.
저도 저 폭포처럼 한 번 힘차게 쏟아지기 위해 여름에서 가을로 겸허하게 몸을 숙여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