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김용순   2006-04-21 04:59:29  |  (7.김병숙이 해외지부에 쓴 용순이 글을 퍼왔음)

  이모! 나 결혼할 때 아무것도 안해줘도 되는데 결혼식 때 울이모가 와주면 안될까?
이모!  꼭 참석해 줘. 응?

  언냐! 나 이혼했다.  가정법원에서 까닭없이 터지는 웃음에 킥킥거리다
판사한테 신성한 법정에서 더구나 지금 이 순간이 어떤 결정의 순간인데 웃느냐고 야단맞았다.
나 언니옆으로 갈 수 없을까?

아버지 돌아 가신후 그렇게 슬펐던 때도 없었다.
빚으로 시작한 세탁소, 애 봐 주는 사람도 없이 첫돐 지난 사라와 여섯살 된 죠셉 데리고,,,,,
나 살기도 힘들었지만 내 아픔과 고통은 저 만치 물러갔다.
그 때 만해도 카나다 이민이나 여행법이 까다로와 수소문 해 봤지만 길이 없었다.

애들 생각하면 좌판이라도 벌리고 싶은데, 집안체면에 가문이 걸려 아무것도 못한다.
전화로 들려온 동생의 목소리만 귀에 울리고,  땅을 보아도 하늘을 올려다 보아도
눈에 들어 오는 모든것이 그저 슬프기만해서 울고 또 울었었다.
이 세상에 그토록 많은 슬픔이 숨어 있는지 몰랐었다.

미국에 도착해서 얼마후
언냐! 나 애들 보고싶어 미치겠다. 자반 고등어에 물만 말아 먹고 살아도 애들만 옆에 있으면
좋겠어 불쌍한  내 딸 고은이가 눈에 너무 밟힌다.
야! 조금만 더 참고 기다리면 만날 수 있는데 희망가지고 참는 김에 조금만 더 참아! 하니
내 마음 아무도 모른다 몰라!하며 전화 꾾었다.
그 다음핸가?? 내가 집공사 때문에 여름방학 두달간 애들 한국에 떼어 보내 놓고,
애들이 보고파서 네 마음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하니
백분의 일이라도 알아주니 고맙다던 장하고 굳굳한 내 동생아!
  어느 잡지에 태평양을 오간 모녀의 편지가 실려 많은이의 심금을 울렸었지.
세 식구 미국에 모여 열심히 사는 모습이 얼마나 보기 좋았던지, 가끔씩 선친들께 자랑스럽게
보여 드리고 싶었다.
나는 애들한테 죄 많고 할 말없는 엄마라면서 멋진 아들 용준이 장가 보내고
예쁜 딸 고은이 마저 시집보내는 내 동생,
언니보다 먼저 계급장 다신 노나라공주 영자마마! 경하드리옵나이다.


  사랑하고 마음껏 자랑하고픈 내 조카딸 고은아!
새로운 여정을 떠날 차비하는 너에게 해 주고픈 말이 있다.
아마 사라에게도 똑 같은 말이 될지도 모르겠다.
오늘의 고은이가 있도록 축복 해 주신 주님께 찬미와 감사드린다. 네가 가진 과거의 경험과
추억은 값진 보물들이다. 앞으로 살아가면서 그 보물들은 너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고 위로하며
네 노력 여하에 더욱 빛을 발할꺼야
이모가 학창시절에 은사님들께는 청개구리였지만 그 청개구리 마음 깊히 새겨진
인일의 교훈중에" 생각하며 일하는 여성"은 이모의 결혼과  이민생활에 버팀목이 되었다.
이모의 자부심과 자긍심의 원천이였다고나 할까?
꾸밈없고 당당하게 모르는 듯 없는듯이  네 곁에 있는 누구라도 너와 함께 해 줌에 감사하고
무조건 주어라. 이건 가훈쯤으로 생각하면 좋겠다.
   예쁘고 자랑스러운 내 조카 고은낭자와 어느 누구보다도 훌륭한 명근도령의
결혼을 축하하러 이 이모 떠날 준비 끝냈다.
하고은! 사랑한다. 아자아자 화이팅! 한국에서 만나자.